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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안 보기 vs 뉴스 안 만들기

2. 적을 위하여

by 흰둥이

차 안에서 보는 하늘은 지극히 평범하고 맑았다. 이 순간의 감상은 평안함이라고 생각했다.

남편과 아울렛에 가는 길이었다. 오랜만에 쇼핑을 할 겸 평일에 쌓인 피로를 나들이로 풀어보려고 멀리있는 아울렛을 향해 차를 몰고 있었다.

일상의 대화를 나누던 중, 남편이 내게 요새 세상이 참 재미있게 돌아간다는 말을 했다. 아침마다 뉴스를 보며 출근 준비를 하는 남편은 근래에 있었던 굵직한 사건들에 대해 내게 설명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네. 조용한 날이 없어 정말. 뉴스를 보고 싶어서 보기가 싫어."

그의 이야기가 듣기 싫었던 건 아니었지만 뉴스에 대한 운이 띄어지자마자 나는 인상을 찌뿌리며 거부반응을 보였다.

내가 거절했던 것은 현재 세상의 이슈 브리핑이 아니라 그럼에도 없었어야 할 탈이었다.

사람 모여사는 곳에 별 일이 있는 것이 당연한 이치겠지만, 그럼에도 이것만은 없었어야 하지 않느냐고 저항하게 되는 그 탈들말이다.


크고 작은 전쟁이 쏟아지는 비처럼 내려서 싹을 틔운 세상은 아름답고도 징그럽기 그지없다.

나에게 너는 적이지만 너에게 나는 악인이 되고, 너에게 그녀는 신념이지만 그에게 나는 불순물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끔히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 일시적이고 부질없는 선택들이 만든 지금이라는 결과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긴 공식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를 보면 때론 처참한 결과를 직면하게 된 기분이 든다.

고양이도 죽고 사람도 죽고 돈이 증발하고 나라가 붕괴되고 땅이 꺼지는 일들을 보여주며 그 원인은 무엇이라고 설명을 덧붙이는 걸 빤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저절로 입이 쭈욱 나온다.

그리곤 '그렇구나.' 생각하는 것이 전부인 채로 열심히 벌어 채운 아늑한 집 안에 포개어져 있다.


생각해보면 지구에서 인류가 살아온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세상의 이슈에 대해 고심하고 해결책을 찾아보았겠나.

그들도 완전히 해결해내지 못한 것을 보면 어쩌면 사실은 이 상태가 정답이지 않을까 깨름칙한 음모론을 떠올려보게도 된다.

갈수록 점점 인류애를 잃어가는 인류가 되어가는 것 같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 오만한 인간들의 세상이다.


언니와 간만에 만나서 안부를 물으려고 북적이는 서울 한 복판으로 간 날이었다. 서울은 미어터지는 인간들과 그들이 타고 다니는 차로 더 미어터져서 현명한 경기도인이라면 자차보다는 지하철을 선택해야 한다.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니까 괜스레 기분이 좋아져서 챙겨온 책을 꺼내어 읽었다. 요새 활발히 활동중인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쓴 과학에 관한 책이었는데, 큰 의지없이 손에 집히는대로 가방에 넣어온 도서였다.

꽤나 흥미로운 문체에 한참을 빠져서 책을 읽다보니 흐뭇한 포만감이 찾아왔다.

고개를 들어 마주한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 썩 마음에 든다. 휴일에 소중한 사람을 만나고, 그 소풍같은 길 위에서 취미를 행할 수 있음에, 누리며 채우며 사는 내 삶이 참 만족스러웠다.

마치 부지런했던 지난 며칠에게서 "성실상"이라고 쓰여진 상장을 받은 것 같았다.


만나기로한 장소는 규모가 큰 복합쇼핑몰의 입구였다. 지하철역안에 쇼핑몰 입구가 연결된 구조라서 구조적으로는 편의하지만, 커다란 통로가 무색할만큼 사람들이 바글대는통에 어깨에 힘을 주고 요리조리 몸을 비틀며 발을 옮겨야 했다.

입구에 다다랐을 때, 길 한켠에 남자 두 명이 제자리걸음을 하며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들의 뒤에는 작은 간이부스가 있었고 그들의 손에도 많은 것이 들려있었다.

아차. 큰일이다. 내게는 무척 피하기 어려운 장애물이 나타났다는 것을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여기에 스티커 하나만 붙여 주세요. 딱 30초면 됩니다."

한 남자가 불쑥 나타나 내게 엉성한 판넬을 들이밀었다.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었지만 나는 스티커를 받아들고 대충 짐작이 가는 곳에 붙여주었다.

"한 달에 몇 명의 아이들이 버려지는지 알고 계신가요?"

"아니요. 잘 몰라요."

한 봉사단체 소속의 그 남자는 나에게 굶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센터에 오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학대를 당하다가 버려진 아이들이라는 말을 할 때에는 목소리가 다소 크다고 느껴졌다.

'저도 알아요. 저는 동시에 네 곳의 봉사단체에 월 정액 후원을 한 적도 있는 걸요..'

말대꾸를 하듯이 그에게 내 호구력을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냥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것이 나을거라고 판단했다.


"죄송해요."

건조한 거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입이 열렸다.

"다들 외국에 있는 아이들을 돕지만 바로 근처에 있는 우리 나라 아이들은 돕지 않더라구요. 겨울에는 특히 더 상황이 좋지 않아요. 한번만 도와주시면 안될까요?"

그는 자칫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억울해 보이기도 했다.

문득 뉴스를 볼 때와 같이 기분이 불편해졌다.

처음 보는 남자 두명이 풍만했던 나의 소풍에 쫒아와 탈이 난 세상을 들이밀며 내 상장을 도로 뺏으려는 것 같았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후원 해주시면 저희 오늘 첫 개시입니다. 한 번만 부탁드릴게요."

참 희한하게도 그의 그 말 한 마디에 적대감 뒤에 숨어있던 마음 하나가 일렁였다.

후에 무슨 마음이었나 생각해보니, 어디 있는지도 모를 굶고 있는 아이들보다 일단 지금 내눈앞에 이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허접한 선의였었다.

"겨울만이라도 해볼게요. 아예 안하는 것보다는 몇 개월이라도 하는게 낫겠죠?"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짧은 설명을 들은 후 빠르게 신청서에 서명을 했다.

"힘내세요.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를 담은 인사를 건네고 빠르게 그들과 멀어졌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내 뒷모습에 인사를 하고 있었다.


언니와 즐거운 데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은 사람이 붐벼서 앉을 자리가 없었다.

처음에는 숨을 편하게 쉬기도 어려울 정도로 만차였지만 차츰 탑승객이 줄어들면서 금새 서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꽉 채워쓴 하루를 그 톤 그대로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에 피로한 눈을 꿈뻑이며 읽다만 내용에 집중해 보았지만 이미 에너지가 많이 고갈되었나보다. 글자를 인지하지만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내 책을 덮고 콘크리트벽을 쏜살같이 흘려보내는 창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뉴스를 안본다고 속상한 일들이 사라지지도 않고. 지금 이 시간에도 불행은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는데 나는 오늘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과연 내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게 맞을까.

연설가도 재력가도 분명 노력하고 있을텐데. 개인도 공동체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저쪽의 불행은 단지 빛 뒤의 그림자라고 받아들이고 쭉 살아가기만 하면 되는건가.

내가 오늘 한 후원은 의미있는 행동이 맞을까. 진정 옳은 방향이었을까.

충만한 복을 느끼는 와중에 그 생각만이 자꾸 암흑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모순된 감정을 느꼈다.

지하철안은 더웠고 밖으로 빠져 나오자마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모든 것을 씻어내듯 개운함을 느끼며 천천히 걸어 집으로 돌아갔고, 생각보다 무리를 했는지 그로부터 며칠은 몸살기운으로 끙끙 앓아야 했다.



설거지를 하면서 틀어둔 태블릿 화면을 슬쩍슬쩍 보고 있었다. 유퀴즈에 내가 읽던 책의 저자인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 회차를 찾아서 보던 중이었다.

그는 지독할 정도로 세상 모든 만사를 과학으로 풀어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방식의 콘텐츠 크리에이터였다. 그의 궤변아닌 궤변에 한참을 웃다가 언젠가 보았던 그의 인터뷰를 떠올렸다.

"몇 가지 뉴스를 본 국민들은 내 세금이 증발한다며 분통을 터뜨리지만, 사실 과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인류를 지키기 위한 고곤분투를 하고 있습니다.

제 노력을 인정받지 못하니 허탈했지만 과연 이 상황이 비단 국민들의 잘못일까 생각해보았는데 그것도 아니더라구요. 아무도 그들에게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과학자로서 제 책임임을 깨달았습니다.

과학은요. 사람과 인생이 담겨있습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과학이라는 방법으로 인류를 지키는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 앞에서 서서 이렇게 우스갯소리같은 과학을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는 분명히 사명감이 존재한다.

제각기 다른 형태의 그 감정은 스스로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양심이 될 수 도 있고, 사대주의가 될 수 도 있다.

어렸을 때는 물정을 모르니 나 하나 조금 양심적인 것이 뿌듯하고 희망을 느낄 수 있었는데, 손 쓸 수 도 없을 커다란 일들을 뉴스에서, 일상에서 보고 겪으며 결국 외면하는 것이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어른이 되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계속 해나간다면 그것이 위대한 일임을 그를 보며 다시 기억해내게 되었다.

나의 사명감은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이 조금 더 행복하길 바란다는 아주 작은 결심이라고 인정해보았다.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그 마음으로 뉴스를 다시 보기 위해서 뉴스거리를 안만드는 일에 일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복잡한 세상을 살다보면 언제 다시 이 마음이 흐려질까 영 자신이 없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때 화면에서 그의 진지한 목소리가 들렸다.


"인류가 만든 탐사선 중 가장 멀리 가 있는 보이저탐사선에서 지구를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창백한 푸른 점>에는 아주 작은 푸른 점이 하나 찍혀 있어요. 지구에요.

이걸 보면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우리가 얼마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더 아끼고 배려하고 사랑해야하는지. 이 점 위에서는 어떠한 철학도 어떤 정치 성향도 남자 여자 부자고 가난이고 의미 없다.

한 도트밖에 안되는 점안에서 살고 있는 똑같은 생명체일 뿐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이걸 보고나면 절대 누구에게도 무례하게 할 수 없어요.

모두가 이런 생각을 해야 세상이 바뀔 수 있어요."


부산하던 손을 멈추었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그의 과학을 믿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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