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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모 Mar 19. 2024

서평 사례

- 문학, 비문학, 청소녀, 아동, 그림책 등 다양한 분야

4. 어린이문학

『공평한 저울 세상』(홍종의 저자(글) · 달상 그림/만화, 샘터, 2023)

- 우리가 몰랐던 '형평사 운동'이야기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멋진 글로 세상과 사람들을 만나는 작가가 꿈이었다"는 홍종의 작가님은 작가등단후 27년 동안 이 책의 구성상 책의 말미에 '작가의 말'이라는 꼭지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작가로서 꼭 풀어내어 우리 친구들에게 알려 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어요. 일제강점기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일어났던 실질적인 신분제 폐지를 위한 귀중한 인권 운동인 형평 운동이지요. 그러나 어떤 형식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꾸밀지 고민이 많아 차일피일 미뤄 둔 커다란 숙제였답니다."(p.149)라고 소회를 밝힌다.


'달상'이라는 일러스트레이터님께서 아이들이 좀더 재미있게 이 귀중한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애니메이션 영상 같은 삽화를 그려주었다.


총 151쪽 분량의 이 책은, 열두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하여 역사 대대로 최하층민이자 가장 천대를 받았던 백정의 자녀인 우레와 들내를 통해,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평등 사회를 꿈꾸며 펼친 '형평 운동'으로 훌쩍 성장한 '강대성'과 '민정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등장인물 분석>

-우레(이대성/강대성) : 아이들에게는 '글자 버러지'라는 별명으로, 어른들에게는 '글자 귀신이 들렸다'라고 불릴만큼 글자만 보이면 읽고 쓰고 하며 배움에 대한 열망이 큰 아이. 백정인 아버지 이춘복의 자식으로 태어나 이름도 그냥 태어날 때 울음소리가 우렁차서 '우레'라고 지었다고. 후에 교회에서 곤경에 처한 우레네 가족의 편을 들어 주며 연을 맺게 된 '강씨 어른'의 도움으로 서당에서의 한 차례 입학을 거절당하고 면목없는 훈장이 지어 준 이름 '이대성'대신 강씨 어른의 호적에 올라 '강대성'으로 개명한 뒤 마침내 보통학교에 입학한다. 이후 형평운동의 취지를 알리는 알림 그림의 주인공이면서, '주지(主旨)'를 발표한다.

-들내(민정애) : 우레와 단짝이면서 그림 솜씨 좋은 아버지의 손재주를 물려 받아 수제 '가죽신' 제작 솜씨가 탁월한 아이. 요즘으로 치면 페미니스트 기질이 다분한, 남녀 성차별에도 민감해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후에 '차별 없는 좋은 나라'인 교회로 우레를 인도한다. 또한, 강씨 어른과 앨슨 전도사를 위해 손수 제작한 가죽신을 각각 선물한다. 그리고 우레네가 속한 지역에서 발생한 '형평 운동'은 금새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아버지를 따라 우레, 강씨 어른과 함께 기차를 타고 타지역 형평사 집회에서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자 토라져 기어이 알림 그림에 자신이 들어가겠다고 우겨대는데...

-이춘복(우레 아버지) : 백정으로서 푸줏간을 운영한다. 신분은 백정이지만 부(富)를 이루어 주변 상가들의 주인이었다. 요즘으로 치자면 건물주인 셈이다. 그러나 백정이라는 천한 신분을 아들 우레에게만은 물려주고 싶지 않아 서당 훈장에게 돈까지 주며 우레를 받아줄 것을 청했으나, 끝내 입학을 거부당한 사실에 속상해하던 중, 아내의 권유로 찾아간 교회에서 호형호제할 아우 '강씨 어른'을 만나서 아들 우레를 '강씨 어른'에게 입적시켜 '강대성'이란 이름으로 보통학교에 입학시킨다. 후에 '강씨 어른'과 함께 '형평 운동'을 주도한다.

-지덕심(우레 어머니) : 아들 우레의 공부에 대한 열망을 알기에 서당으로 우레의 입학을 타진하러 가지만, 서당 머슴에게까지 백정이라고 무시를 당하고 급기야 훈장에게 입학 거절까지 당한다. 대신 남편 이춘복에게 받은 돈이 있으니 이름이나 지어주겠다며 생색내듯, '큰 대(大), 소리 성(聲)'이라는 이름만 받아온다. 들내와 함께 교회에 다니다가 차별없이 환대하는 앨슨 전도사를 만나서 아들 우레와 남편 춘복까지 교회로 이끈다. 아들을 강씨 어른에게 입적시킬 때에도 적극 나서서 남편을 설득한다.

-강씨 어른 : 신문을 만드는 사람. 백정이 천한 신분이라며 무시당하고 제대로 된 이름을 가질 수도,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도 없는 처지를 딱하게 여겨, 양반임에도 백정인 춘복에게 '형님'이라 부르며 깍듯이 대한다. 배움에 대한 열의가 넘치는 우레를 자신의 호적에 올려 보통학교에 입학시킨다. 후에 형평 운동을 주도하며 형평사 조직의 핵심적 역할을 한다.

-앨슨 전도사 : 서양인으로서 한국에 온 전도사. 당시 일제 강점기에 교회에서 하나님의 신도로 백정인 이춘복네 가족을 비롯한 백정들도 모두 한 예배당 안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다 똑같다'는 교리를 전한다.

-민덕삼(들내 아버지) :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는 딸이 때론 겁나는 들내 아버지, 민덕삼은 그림 그리는 재주를 발휘하여 형평 운동의 '알림 그림'(요즘으로는 포스터) 제작을 담당했다. 실사에 가까운 그림 솜씨로 우레를 주인공으로 하는 알림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지역에서 성공한 '형평 운동'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강 어른, 우레와 함께 달래를 데리고 기차를 타고 이동한다.

-삼칠이(동네 형) : 이춘복의 푸줏간 일을 돕는 백정. 시장통 아이들의 '백정'이라는 놀림에 하루는 무리의 아이들 중 한 녀석을 때렸다는 이유로, 나중에 째보를 포함한 아이들이 찾아와 보복하려하자 마침 손에 들고 있던 낫을 들고 위협을 하여 쫓아내기도 한다. 후에 형평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째보(김철기) : 우레보다 세 살 위인 형. 보통학교에서 우레와 같은 반이 되어, 처음에는 우레에게 시비를 걸기도 했지만, 시다마 담임 선생님에게 반 아이들 훈육의 본보기로 허구헌날 뺨을 맞는 등 폭행을 당한다. 형평 운동에서도 사람들에게 구호를 유도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우레와 돈독한 사이가 된다. 그러다 시다마 담임 선생님께 형평 운동 주동자로 지목된 강대성을 대신하여 또 뺨을 맞던 날 학교를 그만 둔다. 그러면서도 백정이라 놀리는 아이 이규철을 피가 나도록 때려 체포 대상이 되어 찔레덤불 깊숙한 굴에 숨어있다가 우레에게 아버지와 독립군에 들어가서 일본에게 나라를 뺏긴 조선을 되찾는 일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고 고백한다.

-철물점 아저씨(째보 아버지) : 이춘복에게 아들 철기와 함께 만주로 가서 독립군이 되어 조선 독립에 힘을 보태겠다고 고백하고 만주로 떠난다.

-시다마 담임 선생님 : 일본 유학파 출신 조선인. 반에서 동급생들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철기를 본보기 삼아 별 이유없이 폭력을 일삼는다.



이 책은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기에 줄거리보다는 인물 중심으로 분석해보았다. 이 역사동화의 중심 주제는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인권운동인 '형평 운동'이다. 학창 시절 국사 시간에 배웠던 것 같기도 한데 공부를 대충했던 탓인지 다소 생소한 개념이었다. 이런 독자들과 어린이 독자들을 위해 '덧붙이는 글' 꼭지에서 '형평사와 형평운동'에 대해 쉬운 언어로 설명해주고 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조선 시대의 신분 제도가 공식적으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신분 차별이 계속되었습니다.(...중략) 이런 상황에서 백정들은 더욱 평등한 사회를 꿈꾸었습니다. 그 결과, 1923년 진주에서 백정 신분을 해방하기 위한 단체가 설립되었습니다. 바로 '형평사(衡平社)'입니다. 저울 형(衡), 공평할 평(平). 말 그대로 저울처럼 공평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 단체이지요. 이 단체가 주도하여 '형평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백정뿐만 아니라 평민과 양반도 참여한 이 운동은 경남 지방에서 시작하여 전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농사를 짓던 사람부터 어린 청년들 그리고 여성까지 성별과 계층에 상관없이 이 사회 운동에 참여했지요."(본문 pp.146-147)

신분 해방 운동이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인권 운동인 형평 운동에 대해 어린이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었다는 저자는 "2023년은 형평사 창립 100주년이에요. 이 작품을 통해 우리 모두가 형평 운동의 진정한 의미를 알았으면 해요. 그리고 우리 스스로 어떤 조건과 환경에도 차별받지 않고 또한 차별하지 않는 공평한 삶을 누렸으면 좋겠어요."(p.151)라고 강조한다.


오늘날은 신분제는 사라졌지만 학력차, 빈부차나 성별차에 의한 차별은 엄연히 존재하고, 신체적·정신적 장애자에 대한 차별과 이주 노동자나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등 차별의 형태가 조금 더 정교하고 미세해졌다고 할 수 있다.

아직 이 책의 주요 독자층일 초등학생에게 세상의 많은 차별 사례를 일일이 열거할 순 없지만, 이 책을 통해서 우리 식탁에 오를 고기를 먹기 좋게 자르고 손질하는 일을 기꺼이 업으로 해오신 이 땅의 많은 이춘복님과 가죽제품을 손수 일일이 맞춤 제작하시는 민정애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함께 이야기하면 좋겠다. 세상에 함부로 무시해도 좋은 사람은 없다. 가정이나 사회에서 '인권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니 아이에게만 읽히지 말고 온 가족이 함께 보시면 좋겠다.




*하루 늦게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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