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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모 Mar 11. 2024

서평 사례

- 문학, 비문학, 청소년, 아동, 그림책 등 다양한 분야

3. 청소년문학

『페인트』(이희영 지음, 창비, 2019)

-곧 다가올 우리의 미래



  이 책의 제목만 보아선 미술에 관한, 혹은 화가에 관한 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첫장을 펼쳤는데 마치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올법한 주인공의 이름이 나왔다. '제누 301'

이 책의 중심화자이자 청소년답지 않게 세상의 이치를 너무 빨리 깨우친 아이.

어쩌면 지금의 '보육원'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NC센터(nation's children)'.

어쨌든 낯설고 어색했지만 이 또한 '상상 속 얘기'만은 아닌 것 같아 씁쓸하지만 몰입감은 최고였다. 


  NC센터는 크게 세 곳으로 분류된단다. 신생아와 미취학 아동을 관리하는 퍼스트 센터, 초등학교 입학 후 열두 살까지 교육하는 세컨드 센터, 그리고 열세 살부터 열아홉 살까지 부모 면접을 진행할 수 있는 라스트 센터로. 그리고 NC밖 세상. 이렇게 소설 속 세상은 둘로 나뉘어져 있다. 

가사도우미 역할은 AI로봇인 '헬퍼'가 있고 SF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던 화면 전체를 압도하던 모니터에서나 봤던 홀로그램 영상으로 대화 및 각종 신상체크-보디 체크와 같은 건강검진시스템-도 가능하고, 손목에 찬 멀티워치로 호출도 하고…

성도 고유한 이름도 없이 그저 NC센터에 들어온 날짜로 구분지워지는 아이들. 예를 들어, 1월에 센터에 들어온 아이는 남자는 제누, 여자는 제니, 6월은 준과 주니, 7월은 주노와 줄리, 10월은 아키와 알리, 11월은 노아와 리사…처럼. 뒤에 붙는 수형번호같은 숫자는 뭐란 말인가. 제누 301, 그의 룸메이트 아키 505.


  아기 낳기를 기피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 출산장려금, 양육보조금 지급 등의 여러 출산장려책도 소용이 없자 정부는 결국 아이를 맡아 키우겠다고 세운 NC센터. 정말 요즘의 우리나라 저출산율을 보고 있으면 한 자녀 가구인 우리 가족부터 반성하게 되지만, 결혼하고도 아이 없이 지내는 'No Kids족'들도 많은 현실을 감안할 때 이 소설 속 이야기가 전혀 비현실적이지만은 않은 듯하다. NC센터의 운영자 또는 지킴이인 '가디'들은 NC센터의 아이들과 '프리 포스터(pre foster)'라 불리는 예비 부모들의 만남을 아이들의 동의를 거쳐 일대일 만남-여기서는 '부모 면접(NC센터 아이들은 '페인트'라는 은어를 사용)'-을 주선한다. 숱한 만남을 성사시킨 가디들이지만 유독 '제누 301'은 페인트를 거부한다. 같은 방을 쓰는 아키는 노부부와의 페인트를 무사히 마치고, 그들과 가족이 되어 NC센터를 나갈날만은 기다리고… 제누와 동갑내기인 노아는 좀 더 자유로운 생활을 꿈꾸며 무난한 부모와 NC센터를 탈출할 기대에 부풀어 있다.

  한편, 제누 301은 지금까지 그 어떤 페인트에서도 면접 대상 부모들에게 후한 점수를 준 적 없었는데 제일 한심해보이는 젊은 부부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1,2,3차 면접까지 거치게 된다. 여자이름은 서하나, 직업은 퍼블리싱 회사의 에디터로 일하다 글쓰기를 위해 일 년 전에 일을 그만 뒀고, 남자이름은 해오름이고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을 했었단다. 자신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역시나 일 년 전에 일을 그만 뒀다고. 그러면서 결국 '정부지원금'을 받기 위한 목적도 있음을 서슴없이 내뱉는 솔직한 이 부부에게 말이다. 마치 작가님의 메시지처럼, "모든 어른의 가슴속에는 자라지 못한 아이가 살고 있다고 했다."(본문 p. 123)고 하며 제누 301은 어른스러운 면모를 보인다. 

나의 열일곱 살은 어떠했던가… 이제는 가물가물한 그 시절은 입시와의 전쟁길에 들어선 때라 각종 시험을 치르느라 늘 노심초사하고 부모님께는 받기만 하던 시절인 것 같은데...


  여하튼 1,2차 면접을 무사히 마치고, 3차 면접을 앞두고 잔뜩 기대에 부푼 아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늘어놓으며, 독백하는 301. :누군가를 알아 간다는 건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거야말로 부모와 자녀 사이에 가장 필요한 것인지도 몰랐다."(본문 p. 163) 어쩌면 이 말은 제누 301의 생각을 빌어 이 책의 저자인 이희영 작가님의 소신을 밝히신 것인지도 모르겠다. 


NC센터의 센터장 '박'은 가디 최와 선후배 사이이며, 어린 시절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불우한 가정환경 때문에 숱한 상처를 받은 어른이다. 아버지의 임종 앞에서 결국 그를 용서하기로 아니, 자신의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고 홀가분해지려고 잠시 NC센터를 떠나기로 한다. 그의 과거를 듣게 된 제누 301은 박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결국 3차 면접까지 마치고도 '부모-자식 관계'이기 보다는 '친구 관계'를 택한 제누 301은 하나-해오름 부부-로부터 마지막 선물인 자신의 초상화 액자를 받아들고 헤어진다. 

다시 돌아 온 박은 전보다 훨씬 편안해진 얼굴이었고, 이에 그간의 사연이 궁금해진 제누 301은 "박은 편안하고 차분해 보였다. 한편으로는 슬퍼 보였다. 우리 누구도 박의 마음을 엿볼 수는 없다. 어쩌면 박 스스로에게도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마주한다는 건 생각보다 큰 용기를 필요로 하니까. 박의 용기가 과연 그 자신에게 어떤 것을 가져다주었는지 궁금했다."(본문 p. 207)고 생각하며, 박에게 상담 신청을 한다. 

평소 제누 301답지 않은 서하나, 해오름 예비 부모와의 3차 면접의 에피소드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아직도 변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박의 정의는 40대 중반을 향해가는 나와 같은 어른이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세상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계급으로 나뉘어 있고, 엄연한 차별이 존재한다. 힘 있는 자들은 끊임없이 연약한 존재들을 짓밟지. 특권 의식을 누리려는 거다. 힘 있는 자들만이 아니다. 힘이 약한 사람들도 그런 특권 의식을 지니고 있어. 자신도 약하면서 자신보다 더 약한 존재들을 짓밟는 거다. 가난한 나라에서 이민 온사람들, 누구나 기피하는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차가운 시선 등이 다 여기에 포함된다.…"

-본문 p. 216~217-


  이 박의 말은 이희영 작가님의 사회적 시선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작가라고 해서 누구나 사회적 약자, 계급적 문화에 대해 공감하고 비판적 시각을 가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훌륭한 작품은 어떤 독자가 읽든 공감을 자아내고 완독 후에도 작품 속 훈훈함이 느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작품에 격한 공감과 여운이 길게 남은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감히 이 작품은 청소년들만의 필독도서가 아닌 '진정한 어른'을 꿈꾸는 모든 어른들에게 읽기를 권한다. 

  마지막까지, 작가님은 자신의 순탄치만은 않았던 인생을 되돌아보며, 아직 자신 앞에 놓인 여러 갈래 길에서 불안으로 방황하는 이들에게, "다만 어떤 길이든, 스스로 원하는 길이라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싶다. 전국의 수많은 제누들과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가는 그 길이 바로 정답이라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당신들 덕분에 이 사회가 존재하는 거라고(권말 p. 228)." 라며 격려도 잊지 않으셨다. 

  parent's interview와 발음이 비슷해서 '페인트'라고 불린다는 NC센터 아이들과 예비 부모(pre foster)와의 부모 면접, 과연 올해 열세 살-이 서평 작성 당시인 2020년 기준-인 우리 아이가 혹시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울 부부같은 부모에게 후한 점수를 줄까? 특히 주양육자인 엄마인 내게 최소한 제누 301처럼 85점까지 줄까? 짐짓 괴롭고도 가슴아픈 자문이었다.


  NC센터에 대한 이야기는 요즘 아동학대 뉴스가 빈번한 대한민국 현실에서 어쩌면 필요한 조직일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만일 현실이 된다면 쉽게 아이를 낳기만 하고 NC센터에 입소시키는 행태의 만연이 우려되기도 한다. 부디 "하나라도 낳아 잘 기르자"고 주장하고 싶다. 남편과 아내를 부와 모로 연결해주는 끈이 바로 자녀의 역할이기도 하므로.


*본 서평은 2020년에 작성한 서평을 블로그에 발행한 내용입니다. 

https://blog.naver.com/aimer96/22250357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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