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 '실과'라는 과목을 처음 배우게 됩니다.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기술 가정과 흡사한 과목이지요. 아이들이 미래에 혼자서도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의식주 관련 지식과 컴퓨터 활용 능력, 건강과 안전, 여가 활용 방법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는 실용적인 과목입니다.
요즘 저희 반은 실과에서 식물과 동물 자원에 대해 공부하고 직접 식물을 길러보는 단원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방울토마토와 바질 중에 한 가지 식물을 골라 심고, 그 식물이 크는 과정을 관찰일지에 기록해야 합니다. 각자 식물을 심기 전 아이들에게 식물을 길러본 경험이 있는지 물으니 저마다 손을 들어 자기 집 베란다에 얼마나 많은 식물이 자라고 있는지, 우리 할머니가 얼마나 식물을 튼튼하게 기르고 계신지, 본인도 강낭콩이며 나팔꽃을 크게 길러봤다며 금손 식집사 자질에 대해 뽐내기 바쁩니다.
이런 저희 반 아이들과 달리 저는 식물을 길렀다 하면 저승길로 떠나보내는 똥손 중의 똥손입니다. 그동안 제 손을 거쳐 세상을 떠난 아이들은 다육이부터 비덴스, 스투키, 개운죽, 아메리칸블루 등입니다. 이 식물들은 대부분의 식집사님들이 말하길'기르기 레벨 0단계' 정도로 그냥 두기만 하고 잊어버릴 때쯤 물만 주면 된다고 호언장담하는 아이들입니다. 그러나 제가 아무리 신경 써서 물을 주고 분갈이를 해줘도 제 품에만 오면 시름시름 앓다 결국은 세상을 떠나버리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매번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제 저는 식물 기르기에 대한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져 다시는 식물을 기르지 않겠다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실과 시간에 아이들에게 배부하고 방울토마토 화분 2개가 남았습니다. 자기만의 화분이 생겨 신난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왠지 부러웠습니다. 저도 씨앗을 심고 예쁜 연둣빛 새싹이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은 욕심이 슬그머니 생겼습니다. 하지만 저는 두려웠습니다. 제가 손을 대는 순간 이 아이는 또 죽음을 맞이할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방울토마토 덕분에 자기가 축구경기를 보면 꼭 지는 징크스가 있어 그토록 보고 싶은 국가대표 대항전 경기를 보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백번이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심기는 싫고 방울토마토가 자라는 것은 보고 싶은 도둑놈 심보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중 저희 반 귀염둥이 한 명이 다가와 물었습니다.
"선생님 남은 거 제가 심으면 안 돼요?"
"진짜? 너 식물 잘 키워?"
"네! 저 강낭콩도 심어서 다 키워봤고 지금도 집에서 식물 기르고 있어요!"
"그래?? 굿!!!!"
저는 방울토마토 심기를 이 친구에게 일임하고 학급 아이들에게 공동으로 관리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환영했고 그렇게 5학년 1반인 우리 반의 이름을 딴 '오일이' 1호와 2호가 탄생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심어온 화분의 흙 부분만 조금 만지작 거리고 행여나 오일이가 저 때문에 잘못될까 마음으로만 응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일이는 씨앗을 심은지 며칠이 지나자 바로 예쁜 새싹을 틔웠습니다. 보드랍고 작은 떡잎을 살살 만져보았습니다. 비록 제가 심은 건 아니지만 뿌듯한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식물 기르기에 자신 있다던 우리 반 친구도 그것 보라며 자기 식물 잘 키우지 않느냐며 저에게 와서 턱을 추켜들었습니다. 저는 따봉으로 그 친구를 인정했습니다.
사실 중간에 아이들이 오일이에게 화분이 넘칠 만큼 물을 많이 주기도 하고 휴일이 있기도 해서 오일이의 미래가 불안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디작은 새싹이 씩씩하게 그 고비를 넘기고 이제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는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랍니다. 5월은 바람도 선선하고 햇살도 따스해 오일이에게 더없이 좋은 날씨인 거 같습니다.
요즘 저희 반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오일이에게 리코더도 불어주고 햇빛을 듬뿍 받도록 창문에 햇빛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화분을 돌려주고 옮겨가며 오일이 돌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아이들의 정성과 사랑을 아는지 오일이는 무럭무럭 자라는 것으로 우리에게 보답하고 있습니다.
저와 우리 아이들에게 날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자연과 생명의 경이로움을 선물해 주는 오일이가 고마울 따름입니다. 아이들은 벌써 오일이에게 열릴 방울토마토를 따먹을 생각을 하고 있으니 오일이에게 송구스럽지만 더욱 힘을 내서 건강하게 자라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