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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무원파이어족 Jul 18. 2023

조기퇴직후 인생을 역으로 사는 묘미

공무원 조기퇴직후 보통사람들과 시간을 거꾸로 살아간다.

 조기퇴직을 하였지만 일은 여전히 내 생활의 중심이다. 하기 싫은 일로부터 은퇴한 것이지, 일 자체를 안하고자 하는게 아니다. 대신 현직에 있을 때처럼 일에 시달리거나, 스트레스 받는게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일만 선택적으로 골라서 하고 싶을 때만 하는 선택과 집중의 방식이다.


그러기에 일은 내 생활의 활력소이고, 살아가는 재미를 더 해주는 행복 요소중 하나이다.


 일주일 내내 일하기도 하고, 반대로 일주일 전부 쉬기도 하고, 주 2-3일 정도만 일하기도 한다. 일하지 않더라도 나처럼 낮에 일 안하는 부류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하루를 보내는 경우도 많다. 이런 만남이 있는 날 역시 조기퇴직자의 일과 상에는 일이 있는 날에  포함된다.


 내 스케줄에는 일하는 날, 사람만나는 날, 온전히 쉬는 날들이 적절히 안배되어 있다. 이렇게 스케줄을 내 맘대로 탄력있게 조절할 수 있다는게 주도적인 삶의 장점이다.


 일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는 스케줄을 제외하고도 1주일에 1,2일 정도는 그 누구에게도 방해나 구속받지 않는 완전한 나만의 자유 시간을 항상 만들려고 한다.


퇴직 전 바쁜 회사생활 할 때 그렇게나 가지고 싶던 온전한 자유의 하루다.





20년 공직생활중 13,4년 전쯤 본부(일반직의 시청)에 있을때가 가장 바빴던 시기였다.


3년 정도 근무기간 중 퇴근시간이 항상 10시가 넘었다. 일이 많아서 퇴근이 늦어질때도 있었지만, 그냥 분위기 자체가 부서별로 막내급들은 남아서 야근하는게 일종의 미덕처럼 여겨지던 때였다. 가끔은 회식이라도 이어지면 새벽에 들어가는 일도 빈번했다.


개인적으로 애 둘이 태어났던 시기라 일찍 가서 육아나 집안 일도 도와야 했기에 삶이 정말 정신없이 돌아갔다.


어느날 한창 바쁠 그 시기에 회사에서 정책 논문 쓰는 일이 있었다. 내가 대표로 뽑혀서 회사에 정식으로 3일 출장 결재를 얻어 관련논문을 참고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출퇴근했다. 그때 운좋게 이틀만에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나머지 하루 자유시간이 생겼다. 3일을 정식으로 출장 받아 2일만에 일을 끝냈다고 하루 일찍 조기출근할 만큼의 애사심이 내겐 없었고, 그냥 하루는 온전히 몰래 쉬기로 했다.


회사에는 마지막 출장날이고, 집에서는 그냥 일상처럼 회사가는 날로 속이고 비밀스런 나만의 자유시간을 갖기로 한것이다. 기억하기에 그날도 아마 일단 도서관으로 가서 소설 좀 보다가 종일 피씨방에서 게임했던 기억인데, 바쁜시기 정말 꿀맛같은 하루를 보냈다.





조기퇴직 후에는 이런 꿀맛같은 하루 휴식 카드를 원할때 언제든 꺼내 쓸수 있다. 문제는 어느 누구의 간섭도 없이 아무때나 남발하다 보니 꿀맛 같던 휴식도 지겨워진다는 것이다.


은퇴자 카페보면 퇴직후 자유시간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져 그게 지루함으로 이어져 삶이 무료하다는 글이 상당히 많이 올라온다. 일과 휴식의 발란스가 깨어지고 어느 한쪽으로 일방적으로 치우치다 보니 나오는 현상이다.


 조기퇴직자들은 넘치는 자유 시간들을 지루하지 않게 보내기 위해서 혼자놀기의 달인이 되어야한다.


등산을 가던, 도서관 투어를 하던, 여행을 가던, 취미생할을 하던 여러 루틴들을 잘 썩어서 혼자서도 지루하지 않게 하루를 밀도있게 보낼수 있는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


나도 조기퇴직한지 1년이 넘다보니 어느정도는 혼자놀기의 달인이 되었다.


이런 혼자놀기 루틴도 한가지 방식이 계속되면 금새 지루해지기 마련인데, 최근 내가 자주하는 가성비 높은 하루 혼자보내기 루틴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집에서 아침을 먹은후 애들 등교 시간에 맞춰 차를 몰고 지역에서 가장 풍광이 좋은 도서관으로 간다. 도서관에서는 고전소설을 읽거나, 브런치에 글을 쓰거나, 오늘처럼 강사 시연회 준비용 PPT를 작성하거나 마음 가는데로 시간을 보낸다. 무더운 요즈음 아침 7시부터 빵빵한 에어컨에 와이파이가 있어 노트북 하나 들고 가면 글적는 취미가 있는 사람에게는 천국이나 다를바 없다.


 약 3시간 정도를 도서관에서 보낸후 11시 30분경 도서관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내맘대로 이름 붙인 도서관 백수 정식이 5천원인데 맛도 양도 상당히 고퀄이다. 도서관측에서 지갑 가벼운 도서관 이용자들을 배려해서 싼값에 가성비 좋은 음식으로 위로해 주는 듯하다.

내맘대로 이름 붙인 "도서관 백수 정식"(5천원)



이렇게 오전을 도서관에서 보낸 후 오후에는 지역 외곽에 있는 엄청 큰 수영장이 딸린 온천 찜질방으로 향한다.


이 온천 찜질방은 생긴지는 25년으로 꽤 되었지만, 수백대의 주차장을 갖추고, 건물만 3,4백평은 됨직한 대형 목욕장이다. 아울러 한층에는 대형찜질방을 겸하고 있다. 온천 목욕장에는 큰 수영장과 10여 종류의 수압 맛사지 시설, 사우나 2개, 야외 사우나, 온탕, 냉탕 등을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찜질방 역시 초대형 시설로 남여 수면방, 산소방 등 6-7개의 개별 찜질방이 있다.


코로나 전에는 물놀이 좋아하는 애들을 위해 주말마다 자주 다녔었다, 주말이면 정말 많은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자주 갔었는데, 코로나 이후 거리두기로 자연스레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다.


 최근에 우연히 평일 낮에 갑자기 생각이 나서 한번 가봤는데, 그 넓고 쾌적한 시설은 옛날 그대로인데 사람이 너무 없어서 놀랬다.


 그 넓은 수영장과 온갖 수압 마사지 시설들이 전부 내 차지였다. 지상 낙원에 온것 같았다. 이 넓은 곳에 사람이래야 기껏 10명 내외고, 수영장은 항상 널널해서 내 전용수영장이나 다름없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혼자 물놀이하고 야외 온천탕에서 오늘 같이 비오는 날에는 쏟아지는 폭우를 맞으며 온천욕을 하는 느낌은 정말 힐링 그 자체다.


거품 수압 맛사지 받으며 눈감고 누워있다보면 이 시간만큼은 갓물주고, 대기업 회장이고 나발이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몸과 마음이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1층 온천욕장에서 한바탕 물놀이 후 2층 찜질방에 오면 역시 이 넓은 곳에 사람은 5명 내외가 전부다.

 10여평 되는 남성 전용 수면방은 100% 나혼자여서 넷플릭스  볼륨 최대로 켜고 누워서 편안히 영화를 시청한다. 졸리면 잠시 낮잠을 잘 때도 있다.


 그런 다음 몸이 찌푸둥하면 다시 2차로 다시 전용 수영장에 간다. 다시 찜질방에 와서 이번에는 만화책을 보거나, 멍때리면서 폰을 본다. 다섯시쯤 되면 마지막 3차로 전용수영장에 가서 목욕으로 마무리하고 나온다. 여기 오면 항상 세번의 온천과 두번의 찜질방 이용 루틴을 고수한다.


 오후 6시쯤 되면 퇴근시간에 맞추어 마치 직장인 퇴근하듯 차를 몰고 집으로 와서 저녁 먹는 것으로 보람찬 하루일과를 마무리한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는 비용이 점심 5천원, 찜질방 만천원 등 1만6천원이 전부이다. 오늘 하루 아무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았기에 이 1만6천원도 아까울수 있지만, 최근 주식에서 돈을 빼고 예수금을 cma에 넣었는데 하루이자가 공교롭게도 1만7천원이라 오늘 하루도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다.






이 도서관 + 찜질방 조합이 요즘 내가 자주하는 가성비 높은 하루살이 루틴이다. 집에도 친한 친구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말한적 없는 비밀스런 루틴이다.


주중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하느라 직장에 갇힌(?) 틈을 타서 텅빈 이 공간을 내 전용공간처럼 이용할수 있는게 바로 파이어족의 특권이다. 


이와 비슷하게 코스트코나 트레이더스를 주말에 이용할려면 주차장부터 벌써 몇 십미터 대기를 해야하고 마트안은 넘치는 사람과 카트에 부딪혀 항상 스트레스를 받는다. 역시 주말을 피하여 평일에 이용하면 한가하게 쇼핑할수 있다.


 사람 많이 몰리는 공원 또한 비슷하다. 주말에 유명 케이블카 타러가면 대기만 두어시간이 기본인데 평일에 가면 기다림없이 쾌적하게 이용할수 있다. 출퇴근 터져나가는 지옥철은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기다리지 않아 시간을 절약할수 있고, 사람에 치여 스트레스 받지 않아서 좋고, 교통비를 절감해서 경제적으로도 이득이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과 시간활용을 반대로 하면, 여러모로 편한 점이 많다.


이게 바로 조기퇴직자들이 누리는 인생을 역으로 사는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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