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14일
발열 증상이 있고 링겔이라도 맞아야겠다는 생각에 집 근처 내과를 갔다. 처음 방문한 내과에서는 링겔을 다 맞기까지 몇 시간이 걸리는데 병원 내부사정으로 바로 문을 닫아야 해서 처방이 어려우니 옆에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그 병원을 나와 맞은편에 있는 다른 내과를 들어갔다. 나이가 지긋하신 선생님이 어떤 일로 왔냐고 물어보셔서 증상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링겔을 맞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내 증상을 들으시고 꼼꼼하게 진찰을 하셨다. 눈동자 색깔과 핏기가 없다고 하시며 건강상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하셨고 최근 다른 이상한 점은 없었냐고 물어보셨다. 그래서 최근 부정출혈이 있었던 이야기를 들으시고
“처방을 해주긴 할 텐데 그전에 피검사도 좀 했으면 좋겠다.”라고 하셨다.
그날이 10월 첫째 주 목요일이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2-3일이 걸린다고 하셨다. 다음 주 월요일이 공휴일이어서 화요일 병원에 전화해서 결과를 들을 수 있냐고 물어봤다.
전화를 받은 간호사는 잠시 머뭇거리다
솔직히 그때부터 두려운 마음이 있었지만 애써 ‘설마...’ 하며 부정했다.
혈액검사를 했던 동네내과는 원장님이 연세가 있으셔서 (오전 진료 없이) 오후에만 진료를 했고, 나는 저녁 늦게까지 일을 했기 때문에 검사결과를 들으러 갈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그나마 일이 일찍 끝나는 목요일에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갈 수 있었다. 2021년 10월 14일 오후 세시에서 네시 사이. 지난주에 한 피검사 결과를 들으러 왔다고 말한 후 진료실로 들어갔다.
원장님은 한동안 말이 없으셨다. 그리고 조심스레 검사결과가 적힌 종이를 보여주셨다.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대충 이건 뭘 의미하고 저건 뭘 의미하는 건지 설명을 해주셨다. 그리고 어떤 부분을 짚어주시면서 조심스럽게
“이 부분에 체크가 되어있는 건 이상소견이 있어 추가검사를 더 진행했다는 거예요. 미성숙한 세포가 50% 이상이라는 건데... 백혈병으로 의심이 가요. 소견서를 써줄 테니 바로 큰 병원 가서 검사를 해보세요.” 라고 하셨다.
이때까지만 해도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검사결과가 잘못 나온 거겠지 큰 병원에서 검사하면 좀 다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정신으로 병원을 나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섭고 떨리는 마음에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지난주에 피검사한 거 결과 나왔는데 백혈병일 수도 있대. 큰 병원 가서 검사하래... 어떡해??”
펑펑 울면서 집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탔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애써 현실을 부인했다. 그때는 교회 친구들과 같이 살고 있었는데 마침 집에 있던 친구에게 “나 백혈병일 수도 있대. 큰 병원 가서 검사하라고 하는데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어.”라고 말했다. 방에 들어가 자리를 펴고 누웠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나를 엄습했다. 기독교 신자로 죽어도 천국에 간다는 확신은 있지만 지금 당장 죽는 건 무서웠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게 당장 내 일이 될 거라고 또 내일 당장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눈물만 뚝뚝 흘리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남편이 대학병원 교수로 있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나 백혈병일 가능성이 있다고 대학병원 가서 검사받으라는데... 뭐부터 해야 해?”라고 물었다.
친구는 엄청 놀라면서 진료 예약하는 방법과 어떤 교수님께 하라고 알려줬다. 그리고 진료를 예약하기 위해 대학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진료 담당 간호사는 이미 진료 예약이 다 차있는 상태인데 교수님과 확인 후 전화를 다시 주겠다고 했다. 10분 정도 지난 후 병원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그리고는 내과에서 받은 검사 결과지를 갖고 있냐고 물었고 이어서
“ooo라고 적혀있는 거 보이나요? 거기 숫자가 어떻게 되나요?”라고 물었다. 그렇게 검사 결과지에 적힌 몇 가지 항목의 수치를 확인하더니 다음날 오전 첫 번째로 진료를 잡을 테니 검사 결과지와 소견서를 갖고 오라고 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내일 대학병원에 10시에 진료가 있으니 용산역에서 만나 같이 이동하자고 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자... 아닐 수도 있잖아...' 불안감을 떨쳐야만 했다.
저녁에 교회 친구와 캠퍼스 전도 약속이 있었는데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갔다.
‘만약 내일 검사해서 백혈병이 맞다면 음식 제한이 많이 있을 텐데 햄버거나 먹자.’는 생각에
학교 앞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그리고 캠퍼스에서 전도를 하고 집에 왔다. 잠이 오지 않았다. 내일 나는 어떤 결과를 듣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