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15일
그렇게 금요일 아침이 되었다. 조금씩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른 아침 말씀을 읽고 같이 사는 친구들에게 기도부탁을 했다. 대학병원에 가본 일이 없었기에 걱정이 되었다. 그때 같이 살던 동생 한 명이 “병원 가면 검사 뭐뭐 하자고 알려줄 거다. 검사하고 결과가 바로 나오는 거 아니고 시간이 걸리니까 걱정하지 말고 갔다 와.”라고 했다. 집에 나서기 전 친구들에게 저녁에 보자고 인사를 했다. 비가 내려서 평소보다 더 추운 날씨다.
4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지만 그날 내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 그 공기가 어땠는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동생이 작아서 못 입던 네이비색 니트, 발목까지 오는 청바지, 검은색 반스 슬립온에 베이지색 가방의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용산역에서 엄마를 만나 같이 순천향대학병원으로 갔다.
택시 안에서 엄마는 내 손을 잡으며
“너 검사 마치고 바로 짐 싸서 전주로 내려가자. 안 되겠다.”라고 말했고
나는 “무슨 소리야. 왜 내려가.”라고 퉁명스럽게 이야기했다.
엄마는 계속 내 손을 잡으며 “손이 왜 이렇게 차냐”는 말을 했다.
엄마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 목소리에도 '별일 아니겠지. 그냥 뭐가 조금 잘못된 거겠지..'라는 마음이었다. 어떻게 병원에 도착하고 접수를 하고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진료실 밖에서 대기하다가 순서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갔다.
동네 내과에서 받은 소견서와 혈액검사 결과지를 드렸다. 담당 교수님은 혈액검사 결과지를 보시고
라고 하셨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내 표정이 어땠더라? 엄마는 어땠더라? 사람이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때 알게 되었다. 큰 병원에서 검사를 하면 뭔가 다를 거라 생각하고 왔는데 검사를 하기 도전에 ‘백혈병’이 확실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일말의 희망조차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담당 교수님은 급성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입원해서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엄마는 고모에게 들었는지 혈액암 쪽으로 유명한 다른 병원은 어떤지 교수님께 여쭤봤다. 엄마의 질문에 교수님은 그 병원이 유명하고 좋은 건 사실이지만 진료대기만 몇 줄을 기다려야 하는데 지금 내 상태가 급성이기 때문에 치료가 지연되면 안 된다고 하셨다.
엄마와 나는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진료실 밖으로 나와 계속 울었다. 엄마는 아빠에게 그리고 나는 같이 살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백혈병이래. 지금 당장 입원해서 검사하고 치료 시작해야 된대...”
라는 말에 전화를 받은 친구를 포함해 옆에 있던 다른 친구들도 깜짝 놀랐다. 일하던 직장에도 전화를 걸어 담당자에게 사정을 말하고 퇴사처리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병원에 도착한 지 30분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나도, 엄마도 넋이 나간 상태였지만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병원을 결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다른 병원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이 병원에서 할 것인지...
병에 대해서도 병원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일단 치료를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 병원에 입원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그리고 다시 진료실에 들어가 이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겠다고 말씀드렸다. 담당 교수님은 간호사님이 입원 절차를 알려줄 것이며, 오후에 본인이 직접 골수검사를 할 거라 말했다. 진료실 밖으로 나오자 담당 간호사님이 1층 원무과로 같이 따라가서 입원수속 하는 걸 도와주셨다. 1층에서 수속을 마친 후 서별관 8층 간호통합 병동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