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수 있었던 이유
병동에 들어가기 전 간단한 신원 확인을 했다. 두꺼운 유리문이 열리고 간호사의 안내를 받고 병실로 들어갔다. 간호통합병동이라 보호자는 들어올 수 없어 혼자 들어갔다. 낯선 장소, 낯선 냄새, 낯선 사람들 온통 낯선 것 투성이었다. 간호 스테이션 바로 앞 4인 병실 가운데 자리로 배정을 받았다. 바로 옷을 갈아입은 후 병실 밖으로 나와 키와 체중을 쟀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입원한 거라 정리할 짐도 없었다. 바로 골수검사를 하기 위해 처치 실로 이동했다. 그저 무서웠다. 아마 점심시간 전후였던 것 같다. 원칙상 간호 통합 병동이라 보호자는 들어갈 수 없는데 병원생활이 처음이다 보니 상황을 배려해 주셔서 골수검사하는 동안 엄마가 처치실에 들어와 옆에 있어주었다.
주삿바늘을 연결하고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하고 엉덩이와 골반 사이에 국소 마취를 했다. 진통제와 마취주사까지 맞고 골수검사가 시작되었다. 엎드려 베개를 꽉 끌어안았다. 식은땀이 계속 났다. 살을 째는 느낌과 굵은 바늘이 들어가는 느낌이 그대로 느껴졌다. 말 그대로 골수 검사는 주삿바늘이 뼈까지 들어가 골수를 채취하는 과정이다. 굵고 기다란 바늘이 몸 깊이 들어가 골수를 뽑아 올리는 그 과정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베개를 끌어안고 아프다고 엄마를 부르며 엉엉 우는 게 전부였다. 약 20분 정도 지나 골수 검사가 끝났다. 검사를 해준 윤 교수님은 내가 이 병원에서 골수검사를 제일 잘하는데 그렇게 아팠냐며 머쓱해하셨다. 골수검사 이후에는 병실로 돌아와 모래주머니를 검사한 부분에 깔고 똑바로 누워 4시간 동안 지혈을 해야 했다.
지혈하는 동안 같이 살던 친구에게 노트북, 속옷, 로션 등 필요한 물건을 부탁해 전달받았다. 엄마도 병원에서 신을 슬리퍼와 물, 간식 등을 사다 주고 잠시 집에 내려갔다 월요일에 다시 오겠다고 했다.
나 홀로 병실에 남겨졌다.
마취가 풀리며 육체의 아픔을 느끼는 가운데 찬양 한 소절이 마음에 떠올랐다. “주님은 주시며 주님은 찾으시네 내 맘이 하는 말 주 찬양 합니다.”
영어가사: You give and take away My heart will choose to say Lord blessed be Your name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 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 지니이다 하고
골수 검사 후 지혈하는 동안 sns로 발병 소식을 전하며 기도 제목을 올렸다. 4시간 정도가 지나 지혈이 끝나자마자 양쪽 팔에 주삿바늘을 꽂았다. 한쪽에는 수액을 맞았고 다른 한쪽은 수혈을 받았다.
그 사이에 내 소식을 들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계속 전화가 왔다. 전화를 해서 우는 친구도, 담담하게 반응하는 친구도, 화를 내는 친구도 있었다. 반응은 제각기 달랐으나 나를 걱정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참 통화를 하다 보니 저녁이 되었다. 병원에서 맞이하는 첫날밤이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날 저녁 왼쪽에 계셨던 환자분은 보호자에게 전화해 간호사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니 데리러 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간호사가 그 환자의 보호자와 통화를 하며 항암약이 독하다 보니 간혹 이렇게 섬망이 오는 경우도 있다며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하는 게 들렸다. 처음 겪는 상황에 많이 놀라 멍하니 있는 사이 오른쪽에 계셨던 할머니께서 말을 걸어오셨다. 자신도 처음 입원했다고 하시며 서로 힘내자고 하시며 간식거리를 챙겨주셨다. 그렇게 낯선 침대에 누워 낯선 천장을 보면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며 친구들에게 “병원 갔다 올게. 이따 저녁에 봐.”라고 했던 말이 무색하게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군대를 가본 적은 없지만 마치 훈련소에 입소한 신병의 기분이 이럴 것 같았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어리바리한 신환(신규 환자) 그 자체였다.
헤모글로빈 5.0(정상범위 12~16), 적혈구 1.2 (정상범위 3.6~4.8), 혈소판 5만 (정상범위 13만 ~ 45만) 정상수치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혈액수치였다.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했던 친구에게 말해주니 친구는 기겁하며
“야!! 너 이 수치면 길 가다 쓰러져서 발견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수치야!! 너 정말 혈액 검사해 보자고 한 내과 선생님한테 감사해야 된다! 그냥 링거만 맞고 보낼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검사해서 발견되고 병원 온 게 다행이다!”라는 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