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서 더 무서운 걸까? 덜 무서운 걸까?
내 질문에 주치의 교수님은 완치율은 약 70%가 된다고 대답했다.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와야 더 정확하게 알겠지만 조혈모세포(골수) 이식까지도 생각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어 교수님은 유전자 검사 결과에 따라 조혈모세포 이식까지 해야 할 수도 있기에 동생이 올라온 김에 검사를 진행하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상담을 마치고 동생은 코디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검사를 받으러 갔고 나랑 엄마, 아빠 고모와 사촌 동생은 다시 병동 휴게실로 이동했다. 어떤 말도 꺼내기가 어려웠다. 엄마는 전도사로 사역하던 교회의 담임 목사님께 사정을 말하고 급하게 사직서를 냈다며, 오늘 병원 근처에 숙소를 알아보고 집에 내려가 짐을 싸서 다시 올라오겠다고 했다. 미안함이 커졌다.
얼마 후 동생이 검사를 마치고 올라왔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약 한 달 정도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가족과 인사를 하고 다시 혼자 병실로 돌아왔다. 점심을 먹고 오후 두 시쯤 중심정맥관을 삽입하기 위해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이동 침대에 누워 혈관조영실로 이동했다. 환자복만 입었지 크게 아픈 것 같지 않은데 이렇게 침대에 누워서 이동을 하니 환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술실 앞에 누워서 대기하는 동안 의료진은 신원확인을 하고 이어질 시술에 대해 짧게 설명을 해주었다.
곧이어 “이동할게요.”라는 소리와 함께 시술실로 들어갔다. 이동 침대에서 시술대로 옮겨지는 순간 온몸에 냉기가 돌았다. 의료진들이 바쁘게 시술을 준비하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 시술 전 혈압 및 산소포화도 등 간단한 체크를 했다. 의료진은 시술에 대해서 길어야 30분 정도 걸리며 마취할 때 조금 아플 거라고 설명을 했다.
설명이 끝나자 흰 천이 얼굴에서부터 상반신까지 덮였고 “소독할게요.”라는 말과 함께 차가운 알코올을 적신 솜이 오른쪽 쇄골 피부에 닿았다. 차가운 게 몸에 닿아서 나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마취할게요."라는 말과 따가운 주삿바늘이 오른쪽 쇄골 밑 살갗을 뚫고 들어왔다. 두려움에 주먹을 쥐고 바들바들 떨면서 끙끙거릴 뿐 움직이지도 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더 무서운 걸까? 보이지 않아서 덜 무서운 걸까? 당장이라도 몸을 일으켜 나가고 싶었다. 달그락거리는 기구 소리와 함께 “이제 관을 넣을 거예요. 들어갈 때 느낌이 조금 이상할 거예요"라는 말이 들렸다. 마취를 해서 통증은 없지만 살갗을 째고 그 사이에 뭔가 욱여넣는 느낌은 고스란히 느껴졌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아니 경험하고 싶지 않은 느낌이었다.
시술 자체도 아팠지만 갑자기 백혈병에 걸려 이런 일을 겪는다는 것 자체가 힘들어 시술 내내 눈물이 났다. “이제 끝났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 오른쪽 쇄골 밑에 약물을 투여하기 위한 장치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관 삽입이 잘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엑스레이 촬영까지 마친 후 병실로 다시 올라왔다.
2-3시간이 지나 마취가 풀리자 마치 화살을 맞은듯한 통증이 (맞아본 적은 없지만) 올라왔다. 상체를 전혀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이었다. 바로 콜벨을 눌러 통증을 호소하자 진통제를 달았다.
입원 4일 차. 모든 것이 바뀌고 무언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정작 당사자인 나는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일반적으로 고형암 환자들은 케모포트를 심는데 저와 같은 대부분의 혈액암(백혈병 포함) 환자들은 일명 히크만이라고 하는 중심정맥관을 심어요. 이전에 담당 선생님께서 이야기하신 바로 항암약이 워낙 독하다 보니 피부에 직접 닿으면 피부가 괴사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항암치료 전 관을 삽입하고 약물을 투여합니다. 병원에 따라 혹은 환자에 따라 처음 항암치료를 시작할 때부터 히크만이라고 하는 보다 두꺼운 중심정맥관을 삽입해서 조혈모세포이식을 마칠 때 가지 사용하는 경우도 있고요. 제가 치료를 받던 병원에서는 매 번 입원할 때마다 조금 얇은 C-line(의료진은 이렇게 이야기하시더라고요)을 삽입하고 퇴원할 때 제거했고, 조혈모세포 이식할 때는 히크만을 삽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