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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이와 지덕이 Jan 17. 2024

데릴사위로 살게 될 줄 몰랐다

데릴사위로 살게 될 줄 몰랐다. 총각 시절에는 결혼하면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새로운 가정을 이루며 살 거라고 생각했다. 나와 아내는 나이 많은 40대 초반의 노총각과 30대 후반의 노처녀였다. 아내는 지인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다. 내가 40살이 넘어가자 부모님은 나를 초스피드로 결혼시키고자 했으므로 결혼에 대한 결정을 빨리 내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나와 아내는 결혼 전 미래의 가정생활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 나누지 못했다. 


여자친구를 서너 번 만난 후 부모님에게 집으로 한 번 데려오겠다고 말했다. 이 말에 아버지는 진짜로 데려올 수 있을지, 데리고 와봤자 결혼까지 갈 수 있을지 의심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나와 여자친구가 서로 이것저것을 재다가 진행이 흐지부지 될 것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40대 초반의 노총각이 될 때까지 둘째 아들인 내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결혼을 안 하고 있으니 부모 입장에서 애가 탔을 것이다. 


부모님의 바람과는 달리 결혼이 초스피드로 진행되지 않았다. 나와 여자친구는 부모님의 생각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더라도 서로 간에 알아가는 시간을 어느 정도 가진 후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름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으로 1순위부터 3순위로 우선순위 조건을 정하고, 교제하는 여자가 그 조건들이 충족되었다고 생각되면 결혼하려고 했다. 여자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적, 외적으로 내가 정한 조건에 해당된다는 것을 느꼈다. 아내도 처녀시절 나처럼 1순위부터 3순위 조건에 대한 범위를 정하고, 배우자를 선택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결혼 후에 나에게 이렇게 말할 때가 있었다. 


"오빠랑 결혼한 것은 내 눈에 콩깍지가 씌워져서인 것 같아요"


아내는 내가 회사에서 베트남에 파견 나가 은행 전산화 업무를 했었던 직원들이 일부 있었다고 말한 것을 내가 베트남에 파견 나가 일했으며 다른 직원들을 가르칠 정도로 유능한 인재였다고 생각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애 시절에는 나를 멋있게 보았는지 결혼식은 2010년 4월에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우리는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  


부모님은 나와 아내의 신혼집으로 부모님 댁으로부터 가까운 아파트에 전세로 살게 마련해 주셨다. 나는 아내와 부부가 되었으니 우리의 오붓하고 독립된 보금자리에서 알콩달콩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아내도 나처럼 부모님과 분가해 따로 독립해 살고 싶어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내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였다. 아내는 외로움을 자주 타며 친정엄마와의 소통을 하고 싶어 했다. 나와 여행을 다닐 때를 제외하고는 처갓집 식구들 생각을 많이 했다. 결혼 후에도 친정엄마와 함께 살고 싶을 만큼 의존도가 높았던 것이었. 


아내는 결국 결혼한 지 수개월이 지나자 친정엄마와 함께 살고 싶다며 간단한 짐들을 가지고 친정 집에 같이 가자고 말했다. 어렵게 결실을 맺은 신혼생활을 유지하고 싶은 나로서는 아내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시댁에서는 멀리, 친정집에서는 가까이 살고자 하는 것이 대부분 기혼여성들의 마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처갓집에서의 생활은 일시적일 줄 알았다.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처갓집 식구들과의 동거, 내가 데릴사위가 되어 아내 외에 장모님, 처남과 함께 살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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