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취업해서 다니던 회사를 재작년에 그만두고 나니 다시 많은 시간을 처갓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회사에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도 된다. 오전에 느긋하게 식사하고 동네 산책이나 친구를 만나도 된다. 지인 중에는 이렇게 생활하는 것이 처음에는 쉬니까 좋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돈을 벌지 못해 힘들어지지 않겠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삶이 무료해질 수 있어서 적당히 쉰 후 다시 새로운 직장을 찾아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별로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미 이러한 생활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13년 전에 첫 직장을 그만둔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을 계산해 보면 직장을 다녔던 시간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나와 생각이 많이 다르다. 부모님은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생활한다고 하면 무슨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걱정을 하신다. 앞으로 어떡할 거냐고 아내가 고생할 텐데 미안하지 않겠냐는 등 걱정을 하신다. 그리고 향후에 할 수 있는 대안이 있냐고 묻는다. 사실 부모님은 내가 직장 다니는 것은 그만뒀지만 다른 방법으로 어느 정도 돈을 벌고 있는 것을 아시는 데도 그렇게 말한다.
처가살이를 하고 있으면 직장을 그만뒀을 때처갓집 식구들이 가장 먼저 알게 된다. 나는 처가살이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이런 상황이 오면 그들의 반응이 어떠할지 궁금했다.
'직장 없이 집에서 쉬는 일이 지속되면 장모님이 재취업하라고 잔소리하지 않을까? 처남은 집에서 쉬고 있는 매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데 이러한 염려는 처갓집 식구들의 생활 방식을 보고 괜한 걱정임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우리 부모님과 달리 직장을 다니지 않고 집에서 쉬고 있는 나에 대해서 관대했다. 장모님은 오히려 집에서 쉴 때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이니 무언가를 배우라고 말했다.
처갓집 식구들은 우리 부모님과 달리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영어, 중국어, 일본어와 같은 어학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나와 장모님은 EBS 월간 영어교재인 Easy English와 한영(韓英)성경책으로 공부한다. 내가 먼저 교재 내용을 읽고 장모님이 따라 읽는 식으로 한다. 매일 공부하지는 못하고 공부하는 시간도 아침에 1시간 이하로 길지 않지만 이러한 시간에 동참함으로써 그들과 좀 더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처음 처가살이를 하게 되었을 때 이러한 처갓집 문화를 독특하다고 느꼈다. 각자 개인주의가 강한 우리 부모님과 형제들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러한 문화가 없었고 소통도 별로 하지 않았다.
이미 네이버 파파고번역기나 구글번역기가 외국어 번역을 해주며 스마트폰앱을 통해 외국인이 말하는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등 IT기술이 계속 진화하고 있어, 1대1로 대면하여 공부하는 것이 앞으로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처갓집 식구들이 단지 어학 실력 향상만을 목적으로 공부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은 공부를 통해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거나 친밀하게 하고, 좋지 않은 기억은 잊어버리고 삶을 재충전 하고자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