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병 강아지와 함께 살아내기
오늘은 비가 많이 내렸다. 평소의 나였다면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새벽이에게 심장약을 먹이고 바로 다시 외출해야 했다. 수면제가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새벽이가 심장병 진단을 받고 퇴원한 이후 이주일을 내리 울기만 하면서 보냈다. 낮에는 울면서 아이에게 밥과 약을 챙겨 주었고, 밤이면 잠도 제대로 자지 않으며 아이의 호흡을 확인했다. 그땐 ‘새벽이 가 숨을 멈추면 나도 따라 죽겠다’는 의지 외에는 별다른 욕구가 없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지내던 어느 날, 새벽이 가 가고 나면 나도 ‘간편하게’ 죽을 수 있게 자살 도구를 ‘온라인으로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다 떨어진 생필품을 채워야겠다는 마음만큼 가벼운 생각이었다. 그래서 당장 병원에 갔다.
일 년이 넘게 약을 꾸준히 먹은 덕에 내 상태는 호전되었다. 오늘도 정신과 선생님은 잘 지냈냐며 지난 한 달간의 내 상태를 물으셨다. 대체로 잘 지냈고 수면제를 반으로 잘라서 먹는 날도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의 하얀 마스크를 뚫고 나오는 커다란 미소가 보였다. 그럼 이번에는 내가 스스로 약을 잘라먹기 용이한 타입으로 처방해 줄 테니 조금씩 줄여 보라고 하셨다.
종종 오늘처럼 정신과 선생님의 얼굴에서 미소를 볼 때가 있다. 난 그 미소에서 의사로서의 효능감, 뿌듯함, 보람 등을 읽는다. 그 감정은 아마 번역가로 일한 내가 크레디트에 내 이름이 올라간 것을 볼 때, 혹은 학원에서 내가 가르친 아이들의 발전과 기쁨을 볼 때의 기분과 같은 것이겠지. 이런 생각을 하다가 새벽이의 주치의 선생님까지 떠올리게 되었다. 곧 죽을 것 같던 심장병 말기의 강아지가 거의 일 년이나 버티고 있는 모습을 보며 수의사 선생님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우리 아이의 건강도 선생님에게 보람과 뿌듯함이 되었을까.
따뜻하고 하얀 미소에서 시작한 사소한 생각이 종일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다들 일이니까 어쩔 수 없이 견디고 있겠지. 하지만 오늘 내 주치의 선생님처럼 환자가 더 나아졌다는 소식에 미소 짓는 날도 있을 거야. 어쩌면 새벽이도 수의사 선생님에게 그런 존재일지도 몰라. 마치 우리 학원 아이들이 나에게 그런 의미인 것처럼 말이야.
우리는 서로에게 해야 하는 일,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존재일 것이다. 그러니 더 힘을 내어 살아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