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병 강아지와 함께 살아내기
영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새벽이의 두 번째 췌장염이 도지고 말았다. 피를 토하고 혈변을 보는 아이를 데리고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갔다. 그곳의 수의사 선생님이 엑스레이를 보고도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가 어려웠는지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켜주셨다. 그래서 알게 된 곳이 지금 다니는 동물병원이다.
그때는 대표 원장이신 A 선생님 혼자서 진료를 보실 때였다. 의사 선생님은 한 분이셨지만 병원은 언제나 바빴다. 이 지역에 사는 반려인들의 신뢰를 크게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예약 없이 가면 대기 시간이 길었고, 예약도 빠르게 찼다.
정신없는 병원 분위기와 다르게 A 선생님은 차분하고, 간결하게 설명하시며 언제나 자신감 있어 보였다. 망설임보다는 빠르고 정확한 진단에 신뢰가 갈 수밖에 없는 타입의 의사 선생님이다. A 선생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은 ‘이런 경우엔 일단 두고 보는 게 좋습니다’인데, 이 말은 ‘이런저런 경우의 수가 있는데 이 정도 증상만으로는 단정할 수 없다, 게다가 증상이 경미하니 무리하게 검사를 진행하기보다는 조금 더 지켜보기를 권한다’는 뜻이다. 선생님의 저 말씀에서 과잉진료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병원 접수대에서 근무하시는 B 선생님 역시 믿음이 가는 스타일이다. 진료 예약을 누락한다던가 약을 잘못 주는 사소한 실수는 단 한 번도 없었고, 갈 때마다 아이의 이름을 외우지 못한다던가 다른 아이로 착각하는 경우도 없었다. 길게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이 선생님에게 ‘새벽이’와 ‘새벽이 보호자’가 정확하게 인식되는 느낌을 항상 받았다. 우리 가족이 B 선생님께 대단히 특별하다는 착각이 아니라 선생님께선 모든 보호자와 반려동물을 (결제하는 NPC가 아니라) 개별 주체로 정확하게 인식하신다는 의미다. 어느 날 이 선생님이 휴가를 다녀오셨는지 병원에서 보이지 않아 순간 진지하게 병원 옮길 고민까지 했을 정도로 마음속으로 신뢰하는 분이다.
하지만 가장 감사한 분은 지금 새벽이의 주치의이신 C 선생님이다. C 선생님은 A 선생님만 계시던 병원에 새로 오신 외과 전공의시다. A 원장님 진료 예약이 다 차서 C 원장님으로 진료 예약을 하고 병원에 방문했을 때 처음 뵈었다. 선생님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다정하고 조심스러운 말씨를 가진 분이셨다. 유난하게 친절한 태도 때문에 의대를 갓 졸업한 수의사 선생님이 새로 오셨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새벽이의 심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던 날, C 선생님은 아주 무거운 어조로 병명과 예후에 대해 설명하셨다. 아직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우리 부부에게 선생님이 자신의 전화번호가 있는 명함을 건네주셨다. 응급 상황이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 주시라고 말씀하시면서.
난 명함을 받으면서 선생님의 일상을 우려했다. 이렇게 커다란 호의와 책임감으로 아이들을 진료하는 수의사라면 병원 밖의 생활이 있기는 할까? 어떻게든 개인 전화번호로는 연락드리지 않으려 나름 애를 썼지만 악화하는 아이의 병증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순간도 있다. 그리고 선생님은 한 번도 곤란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시며 내가 기대한 이상의 노력을 기울여 주셨다.
이제 새벽이의 심장은 약에도 예전처럼 반응하지 못하고 있다. 유의미하다고 정해진 강심제 용량을 크게 초과한 채로 투약하고 있다. 두 수의사 선생님 모두 새벽이가 이렇게까지 견디는 것이 대단한 일이고 보호자 님들도 너무 잘하고 계신다고 말씀해 주셨다. 난 우리 동물병원 선생님들의 이런 배려가 좋다. 보호자에게 죄책감을 심어주지 않으려 말을 고르고, 오랜 간병 기간에도 불구하고 잘해주고 있다고 격려하시는 모습에 또 힘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