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구멍 이야기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
"NO."
쥐구멍에는 볕이 들 수 없다. 왜냐하면 이놈들은 보이지도 않는 은밀한 곳에 구멍을 뚫어놓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디 이것을 실증적인 증거를 내세우며 논리적으로 반박하지는 말기 바란다. 다만 감정이 개입되어 삐딱하게 보고 있음을 감안해 주시길.
오후 내내 쥐구멍을 찾느라 온 집안이 들썩였다. 창고의 물건들을 다 들어내고 구석구석을 살폈지만, 쥐구멍이 어디에 있는지 당최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정미기(벼의 껍질을 벗겨 쌀로 만드는 기계)를 살폈다. 안쪽을 살피고, 밖으로 연결된 호스로 쥐가 들어오는 것은 아닌지 꼼꼼히 살폈지만, 별다른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가만히 정미기 뒤쪽을 살펴보니, 한쪽 구석에 쥐구멍 하나가 보인다. 딱 호두알 하나가 들어갈 만한 크기다. 이놈들이 나무기둥 옆구리에 구멍을 뚫고 들락거렸던 것이다.
예전에도 쌀 창고에 쥐들이 드나들었는데, 쌀포대를 들어내니 쥐들이 이리저리 펄쩍 뛰면서 사방으로 도망을 가는 것이었다. 그때는 쥐 때문에 얼마나 곤욕을 치렀는지, 막대기를 가지고 들어가서 도망가는 놈들을 마구 때려잡았다. 막대기에 맞아 파르르 몸을 떨며 죽어가는 놈을 보면, 얼굴에는 '히스 레저'(배트맨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 역을 맡았던 배우) 뺨치는 기괴한 미소가 떠오르고, 마음은 마성에 사로잡힌 듯 한 조각 남아있던 자비로움마저 흔적을 감춘다.
얼마나 잘 먹고살았는지 포동포동 살도 많이 올랐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는 미래의 '라바저'(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에 나오는 약탈자)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약이 올라 새끼들을 모두 모아 물에 익사시킨 후, 보란 듯이 일렬로 정렬시키고 엄포를 놓았다.
"다시는 들어오지 마라!"
그러나 이놈들은 '흥! 칫! 뿡!'이다.
쌀 창고에 드나드는 쥐는 사방이 막혀 있어도,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 구멍을 뚫고 쌀을 갉아먹는다. 사람들은 곳간에 숨어든 쥐를 잡기 위해 덫을 놓거나 끈적이를 깔아놓기도 하고, 물 샐 틈 없이 막아 쥐가 드나들 가능성을 차단하기도 한다. 그래도 이놈들은 귀신같이 숨어든다.
사람의 영혼에도 곳간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곳을 선과 의로움, 진실과 믿음, 온유와 겸손, 자비와 사랑, 인내와 성실, 감사와 소망, 용기와 대범함, 섬김과 봉사 같은 덕목들로 채운다.
한편,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는 쥐와 같은 것들이 있다. 아무리 영혼이 맑고 천상의 빛처럼 아름다워도, 이들은 쥐처럼 곳간에 구멍을 내고 들어와 영혼을 갉아먹는다. 성경 속 잠언은,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마음을 지키라 생명이 이에서 남이니라.(4:23)"라고 하였고,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16:32)"라고 하였다.
오죽하면 살고 죽는 것이 마음에 달렸고,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성을 빼앗는 것보다 더 낫다고 할까. 그만큼 마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고도 어렵다는 소리겠다. 쥐구멍이 나기 쉽다는 소리다.
쥐구멍을 찾으려면 안에 있던 것들을 모두 끄집어내야 한다.
복잡하게 얽히고, 어지럽게 널려있는 것들을 말끔히 비워내야 그제야 보이는 것이다.
이 일과 저 일, 이 생각과 저 생각, 온갖 잡일과 잡생각이 얽혀있으니, 영혼을 어지럽히는 쥐구멍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잠시 멈춰 서서 하나둘씩 끄집어내고, 조용히 '응시'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알 수 없는 불안, 조급함, 공허, 수치심, 열등감, 분노, 미움, 우울, 무기력, 원망, 환멸 등 영혼을 갉아먹는 감정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감정에 휩싸이지 말고, 그것으로부터 잠시 떨어져 좀 더 객관적인 눈으로 관찰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구멍을 찾아내어 속히 수리해야 한다. 멀리서 볼 땐 푸르고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숲일지 모르나,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나무를 들여다보면, 수많은 벌레들이 나뭇잎과 가지를 갉아먹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 잠시 멈춰 서서, 달려온 길을 되돌아본다고 한다. 영혼이 따라오기를 기다리기 위함이다.
좀 천천히 가자!
그리고 비워내고 가볍게 가자!
쥐구멍을 잘 막으면 쥐를 잡을 일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