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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담 Nov 26. 2023

비 오는 날의 수채화

시골개 이야기 1

오후 4시 30분이 되면 개가 짖기 시작한다.

산책을 나가자는 거다.

시간을 어떻게 그리 정확하게 아는지,  오차는 전후 10분 내외다.

짖을 때마다 참 용하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덧 9달이 지났다.

공장일을 그만둔 뒤, 매일 저녁이면 같이 산책을 나가는 게 일상이 됐다.

산책 나갈 시간이 됐는데도 내가 나오지 않으면, 빨리 나가자고 '컹컹' 짖어대기 시작한다.

거실 창을 빼꼼 열고 밖을 내다보면, 눈이 빠져라 입구와 거실을 번갈아 보는 녀석이 보인다.

그리고 문소리가 나면 입구를 보고 있다가, 나를 발견하곤 이리저리 껑충껑충 뛰면서 기뻐한다.

저리도 좋을까?


한 번은 하루 종일 비가 온 적이 있었다.

비가 내리다 잠깐이라도 멈추면 산책 가자고 졸라대던 놈인데, 밖이 조용하다.

밖에 나가 봤더니 제 집 앞에 똥을 한 바가지 싸 놨다.


얼핏 듣기로, 진돗개는 제집에서 볼 일을 보지 않고 밖에서 본다고 한다.

산책을 나간 뒤로는 집 앞에 똥을 싸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계속해서 비가 오는 것을 보고 아마 포기를 했나 보다.


'젠장! 오늘은 산책 가기 글렀군!'


공식 이름은 '코코'. 나는 '뭐 멋진 이름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진풍'이라고 지어줬다.

진돗개와 풍산개를 교배시켜 태어난 아인데, 말하자면 '믹스견'이다.

그래도 족보 있는 두 집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믹스견'이라니..

품위를 지켜줄 겸 족보를 확실하게 밝히기 위해 '진풍'이라 이름 지어주고, 나름 귀족 이상의 지위로 대우해 준다.

비록 개줄에 묶여 집을 지키는 신세이긴 하지만...


풀이 죽어있는 것 같아 옆에서 한참을 같이 있어 줬다.

빗소리를 들으며 목과 머리를 쓰다듬고 몸을 토닥여줬다.

진풍이는 밥통에 밥이 있어도 산책을 갔다 오기 전에는 먹지 않는다.

밥그릇에는 엄마가 고구마와 밥, 국물과 반찬 찌꺼기를 버무려 만든 맛있는(?) 밥이 그대로 남아있다. 몸을 토닥이고 쓰다듬어 주니 그제야 밥을 먹기 시작한다.


조금 있다가 일어나려 하니, 들어가지 말라고 내 앞을 가로막으며 앞발로 내 몸을 톡톡 건드린다.

간절함이 담겨 있는 눈은 까맣게 빛이 난다.

심연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칠흑색의 눈동자.


"그게 아니야 임마, 니 똥 치우러 가는 거야~"


똥을 치우니, 질퍽하니 비에 절은 부분이 그대로 남아 있다.

진풍이는 내가 집으로 들어가려는 줄 알고 안절부절이다.

헉~, 그러더니 똥을 밟는다!!!!

그리고 똥 묻은 앞발을 치켜세우고는 내게 뛰어오른다.

'아뿔싸!'


가까스로 잡아 세우고는 개 집으로 다시 들어간다.

또 한참을 같이 있어줬다.

그제야 안심이 되는 듯, 내 옆에 와서 앉는다.

이제는 숫제 입구 쪽을 막고 앉아 있다.


지금 진풍이는 4~5살 정도.

앞으로 몇 년을 살 수 있을지 모른다.

애완견이 아니니 수명은 10년이 안 될지도 모른다.

기본적인 케어도 제대로 해주지 못해, 지금은 심장사상충 3기 진단을 받고 치료 중에 있다.


가끔 상상을 한다.

지금은 산책을 나갈 때마다 펄펄 뛰면서 나를 끌고 가려고 할 만큼 힘이 세지만, 나이가 들수록 힘이 달려 뛰지도 못하고, 숨 가빠하면서 터덜터덜 걷기만 할 이 아이의 모습을...

그것을 상상하면 몹시 슬퍼지지만, 삶과 죽음이 하나의 수레바퀴 안에서 돌고 순환하는 것이 '세상살이'라는 것을 알기에, 지금 함께 하는 순간에 사랑과 애정을 주면서 진풍이의 의미가 되어주고 싶다.


잘 돌봐주지 못해 미안해, 진풍아~

앞으로는 예방주사 잘 맞혀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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