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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담 Nov 19. 2023

수탉 선생님

자부심, 자긍심, 자존심에 대하여...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겨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봤다.


※ 자부심 : 자기 자신 또는 자기와 관련되어 있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그 가치나 능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

※ 자긍심 : 스스로에게 긍지(자신의 능력을 믿음으로써 가지는 당당함)를 가지는 마음

※ 자존심 :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


사전적인 의미로만 보자면 다 긍정적으로 해석되지만, 나는 보통 자부심과 자긍심이 긍정적인 맥락에서 사용되고, 자존심은 부정적인 맥락에서 사용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자부심을 가져라!", "자긍심을 가져라!"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자존심을 가져라!"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자존심이 상한다", "자존심이 세다"라고 말을 하지만, "자부심이 상한다", "자긍심이 상한다"라거나 "자부심이 세다" 혹은 "자긍심이 세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자부심 혹은 자긍심을 가져라"라고 말하는 것은, 지금 개인이 처한 상황이 낙담하거나 우울한 상황, 자신에 대한 신뢰나 믿음 혹은 사랑이 결핍된 상황에서 사용된다. 즉, 부정적인 상황에 놓인 개인에게 긍정적인 어떤 것(자신에 대한 신뢰, 믿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자부심이나 자긍심은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반면, "자존심이 상한다"라고 말할 때는, 현재 가지고 있는 자신에 대한 믿음, 신뢰, 사랑이 뭔가의 위해를 받아 상처가 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평범한 소시민들이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사용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지위와 평판, 명성에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평소에 자신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하지 않고, 성숙한 인격을 갖추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에게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는 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힘쓰다 보니,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는 것, 나라는 존재가 한계가 있고 부족하고 모자란 것이 많다는 것을 잘 알게 되니, 나의 존재 가치를 허황되게 높게 잡지 않는 것이다. "자존심이 세다"라는 말의 어감 또한 '완고하다', '굳어있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부정적으로 들린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긍정적인 맥락에서 사용되는 말로, 자존심은 긍정과 부정의 양면에서 두루 사용되기는 하나, 주로 부정적인 맥락에서 쓰이는 말로 이해하고 있다.




나는 한때 자존감이 거의 바닥에 이르렀다고 느낄 만큼 암울한 때가 있었다. 바닥에 기어 다니는 벌레를 봐도 '나보다 낫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누가 나를 한 대 때려도 '그래, 나는 맞을 만한 놈이야.'라고 생각할 정도로,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수탉이란 놈은 원래 암탉을 보호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한 번은 닭장에 계란을 꺼내러 들어갔다가 수탉한테 머리를 호되게 얻어맞은 적이 있다. 이놈이 평소에도 유난히 까탈스럽게 굴어 빗자루를 들고 쫓으면서 계란을 꺼내러 가는데, 도망을 가는 척하다가 빙 돌아 내 머리를 발로 세게 후려치는 것이다. 어찌나 아픈지 머리를 만져보니 혹이 계란 반쪽 만하게 나 있었다.


계란은 꺼내지도 못한 채, 성질이 나서 닭장 밖으로 나와 막대기를 들고 수탉의 머리를 호되게 때렸다. 그랬더니 이놈이 나를 쪼려고 뛰어오른다. 그런데 닭장에는 그물이 쳐 있어 나에게는 닿지 않는다.

"호~ 이놈 봐라!"

또 때렸다. 또 뛰어오른다. 또또 때렸다. 또또 뛰어오른다.... 이렇게 한참을 투닥거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속에서 울컥하며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

'포기할 만도 한데, 이놈은 맞아도 뛰어오르고, 그물에 걸려도 뛰어오르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구나! 그런데 나는 닭장 밖에서 비겁하게, 그것도 일방적으로 때리고 있다니...비겁한 놈!!'


'니가 나보다 훨씬 낫다.'


그때부터 매일 5km를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3년을 뛰었다. 눈이나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실내에서 운동을 했다. 그리고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 도전했다. 그렇게 나는 바닥까지 떨어져 있던 자존감을 차츰 회복해 나갔다.


수탉은 내가 바닥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준 선생님이었다!!


자부심, 자긍심, 그리고 진정한 자존심이란 게 무엇일까? 나는 이렇게 정의한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특별히 뛰어난 능력이나 재능이 없어도, 특별히 이룬 성과나 업적이 없어도, 단지 '나'라는 이유만으로, 이 우주에 오직 하나뿐인 '나'라는 존재 자체만으로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는 마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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