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여섯 살의 맥박이 30이라고?

by 디엔드


ep1. 심장박동기와의 첫 만남.







바랜 기억 위에 쌓인 먼지들을 털어냈다. 글을 쓰기 위해선 살아온 발자취를 따라가야 했고, 먼지에 묻힌 기억을 꺼내야 했다. 인생 첫 기억을 떠올리니 가장 선명하게 남은 것이 있었다. 그 기억의 이름은 “6살, 인생 첫 수술.” 남아있는 잔상을 따라가 보자.









네? 더 이상 수술을 미룰 수 없다고요?


부모님껜 폭탄선언 같은 말이었을 거고, 나에겐.. 입원 기간 동안, 투니버스를 제때 챙겨보지 못할 거라는 아쉬움 정도? 지긋지긋한 이 녀석과의 동행을 시작하게 된 건, 바야흐로 6살이 되던 해. 두 살 때부터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심장 검사를 받았고, 최대한~ 아주 최대한~~ 수술을 늦게 하자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왜냐고?

지금 새끼손가락을 하나 펴보길 바란다.


딱 이 정도 되는 크기의 기계를 몸속에 넣는 건데, 성인과 아이의 인공심장박동기 삽입은 방법이 다르다. 아이에게 넣는 게 훨씬 까다롭다. 어른은 수면마취하고 2시간이면 쇄골 근처에 기기를 넣고, 2~3일이면 퇴원이 가능하다.

근데 아이는 전신마취를 하고 가슴을 절개해야 한다. 이런 수고로운 방법을 하는 이유는 “성장기”이기 때문이다. 쇄골 쪽에 기기를 넣으면, 몸이 자라면서 연결된 리드선이 끊어지거나 불안정해질 수 있다. 당연히 보기에도 안 좋고? 훨씬 노출되어 있으니 다칠 위험도 늘고?..


/


6살. 이제는 맥박이 30까지 내려간다. 오노, 이러다 골로 가겠어요. 이제 심방과 심실이 제 기능을 못하니까 보조장치가 필요하다. 근데 당시에 지방에는 아이에게 심박동기를 넣은 경험이 있는 의사가 없었다. “아.. 경험이 없어서”, “부담스러워서..”라는 말이 돌아왔다. 서울로 갑시다!

이때 만난 주치의가 드라마 슬의생 김준완(정경호 배우)의 실제 인물이다. 고장 난 심장을 처음으로 고쳐준 사람.









전신마취 수술은 처음이라


12년이 넘은 일이고, 그땐 너무 어렸기 때문에 팩트체크는 안되지만 기억 속에 남아있는 장면들이 있다. 어떤 약을 마신 이후로 졸리고 몽롱했는데, 파란 옷을 입은 남성분이 나를 번쩍 들어서 안고 어딘가로 향했다. 수술실 흰색 복도였던 거 같다.



그 이후, 눈을 떠보니 목이 엄청 불편하고 말랐다. 양손은 묶여있어서 움직일 수 없었고, 상의 대신에 흰색천으로 몸이 덮여있었다. 초반에는 몽롱한 상태에서 잘못 건드렸다가 대참사(?)가 일어나거나 상처를 만져서 감염될까 봐 손을 묶어뒀다.

의료진들은 보호복을 입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한 간호사 선생님이 코코몽도 틀어주시고, 목이 마르다고 하니 거즈에 물을 적셔서 물려주셨던 게 가장 감사했다.


원래 기억에 오래 남는 건, 강렬한 감정을 느꼈을 때의 경험이다. 불안, 슬픔, 공포, 기쁨 같은 것들.









선택적 함묵증


수술 이후에 가장 눈에 띄게 변한 건,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거다. 원래 알던 사람들을 제외하곤 아예 말을 하지 않았다. 특히나 의료진에 대한 경계가 심했다.



가장 곤란했던 건, 통증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가슴을 절개했으니 아플 텐데 혼자서 꾹 참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드레싱을 할 때가 되면 폴대를 끌고 도망갔다고 한다. 6살 꼬맹이가 뭔 힘이 있겠나, 어른들의 손바닥 안이지. 소아과 병동 안에서 내 별명은 ‘얼음공주’였다. 어떤 애가 나보고 “어, 얼음공주님이다.”라고 한 적도 있다. 어디까지 소문이 난 거니?


병원만 가면 얼음공주 모드로 바뀌어서 한동안 미술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요즘엔 정보가 많는데, 12년 전엔 하나씩 다 전화를 돌려봐야만 했다. ‘6세 여아, 심장박동기 수술 이후 말을 안 함.’

정서적 후유증이 남았던 첫 번째 수술이다.









너는 최고의 친구였어
꼭 건강해야 해


나에겐 꼭 만나고 싶은 친구가 있다. 경초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 이 글이 그녀에게 닿을진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꼭 안부를 물어보고 싶다.


너는 어떻게 지내? 우리 곧 성인인데, 그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겠다. 지금은 건강하게 지내고 있었으면 좋겠어.


경초는 신장이 안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어릴 때부터 수술을 여러 번 받았고, 내가 첫 수술을 받았을 땐 그 친구는 마지막 수술을 받은 상황이었다. 병원에서 항상 같이 다녔고, 하루 종일 시크릿쥬쥬 노래를 틀고 춤추고 그림 그렸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가 없었더라면, 첫 기억이 참 슬펐을 거 같다. 심장박동기 삽입 후에 염증이 생겨서 2주간 입원을 더 했는데, 병원은 싫었지만 경초가 있어서 좋았다.


같이 그린 그림


내가 기억하는 경초는 엄청 의젓했다. 철이 너무 빨리 들어버린 친구. 인사성도 좋고 예의가 발랐다. “선생님, 안녕하세요?”하던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 경험상 몸이 아픈 아이는 또래보다 더 빨리 성숙해지는 것 같다. 다른 친구들이 맛없는 딸기맛 감기약을 먹을 때, 혈관도 안 보이는 팔을 붙잡고 주사를 찔렀고 수술대에 올랐으니.. 인생의 경험치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아과에 입원해 있는 아이들을 보면 조금 더 마음이 간다. 경초랑 나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5~7세의 아이들은 지금의 나처럼 12년이 지나도 장면들이 생생하게 기억날 테니, 이왕이면 주변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많이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병원은 환자도, 보호자도, 의료진도 힘든 공간이다. 그러니 더욱 서로에게 친절하길 바란다.









일찍 철든다는 것

과거의 나는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렸다. 주삿바늘을 그렇게 찔렀는데도 아프다는 소리 한 번 안 했고, 초등학생 때 심장 초음파를 하겠다고 윗옷을 걷고 숨 참으라고 할 때도 군말 없이 따랐다. 이래야지 서로 편하다는 걸 어릴 때부터 알았다. 어차피 해야 하는 거 조금만 참자는 생각. 잠깐만 불편하면 된다는 생각.


혼자 참는 것. 그건 나중에 커서 부작용이 따랐다. 마음이 부서질 것 같이 아픈 순간에도 혼자 참았다. 결국엔 혼자 참다가 버티질 못해 스스로를 부쉈다. 망가진 정도가 아니다. 나는 나를 박살 냈다. 이제야 좀 뭐를 붙여보겠다고 시도 중인데, 어렵다. 자꾸 어긋나고 다시 무너진다. 어떻게 조립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인생엔 왜 설명서가 없나요?


그리고 중학생 때부턴 혼자 심장내과를 다녔다. 처음엔 부모님이 바쁘셔서 혼자 왔다고 얘기를 했다. 의사, 간호사 선생님과 이미 알고 있는 사이였고 간단한 검진이었기에 “그럴 수 있지~”하며 넘어갔지만, 사실 그땐 같이 가줄 사람이 없었다. 갑자기 엄마는 집을 떠났고, 아빠는 틈만 나면 출장을 핑계로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무척 외로웠다. 그래서 그냥 더 일찍 철이 들었고, 조금 더 결핍이 늘었던 거 같다.












만약 이 글을 보는 어른들이 삶을 살아가다가, 일찍 철이 든 아이를 본다면, 더욱 사랑을 많이 줬으면 좋겠다. 성장을 했다는 건 그만큼의 성장통을 겪었다는 거니까. 아파서 못 잊는 기억들도 있지만, 힘들 때 느꼈던 다정한 기억들은 더욱 잊지 못한다.







그동안 받은 마음들은 잘 간직하고 있어요.

초코파이 포장지에 적혀있는 정(情)만 알던 제가, 덕분에 포장 없는 다정을 배울 수 있었어요.

아주 많이 고맙습니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1화인공심장박동기를 가진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