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뭔가가 꽉 막힌 모습을 보며 우린 흔히 융통성이 없다는 말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건 입만 열면 원리원칙을 따지는 경우에 특히 그러합니다. 약간의 틈이라도 있으면 조금은 더 쉽게 갈 수 있는데 왜 그렇게 답답하게 구냐는 뜻입니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데 뭘 그리 기계처럼 정 없게 그러느냐는 뜻으로도 들립니다.
이처럼 융통성 없는 일이 학교에서 종종 발생하곤 합니다. 지난달 1일, 즉 국군의 날은 임시공휴일로 쉬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냥 쉬면 되는 줄 알지만 우리에겐 꽤나 번거롭고 성가신 일을 한 가지 해야 합니다. 교육과정 계획에 대한 전반을 갈아엎어서 다시 제출해야 합니다. 연간시수표, 연간시간표, 교육과정 연간진도표 등을 수정해야 합니다.
작업 자체가 그리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건 아니지만, 고작 그 숫자 놀음에 빠져 아까운 시간과 정열을 낭비한다는 게 마뜩지 않습니다. 사실 이럴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방학시작일을 하루 뒤로 미루면 됩니다. 물론 이때에도 교육과정 수정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나마 가장 덜 번거롭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교에선 지난주 화요일부터 내일까지 매일 0교시에 한 시간씩의 수업을 배치하여 시수를 맞추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어떻게 하든 교육과정은 손을 대야 합니다. 저는 지금 0교시를 운영해야 하는 1주일 간의 고충을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교육과정 수정 작업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적으로 생각하자면 모든 게 교육과정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게 당연하겠습니다만, 사실상 그건 서류로서의 의미밖에 없다는 건 어럽지 않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가령 그때그때 주제에 따라 실시되는 각종 교내대회로 인해 최소 한두 시간씩은 교육과정 계획에 나와 있는 수업을 하지 못합니다. 그냥 했다고 치겠다는 겁니다. 눈 가리고 아웅, 언 발에 오줌 누기 격입니다.
정확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 나쁠 리는 없습니다. 어차피 모든 계획은 빈틈없이 맞아 들어가야 합니다. 계획이 정확해야 보다 더 좋은 혹은 바람직한 결과가 도출될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변동사항이 생길 때마다 왜 이렇게 의미 없는 일을 반복해야 하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이런 게 꽉 막힌 서류 행정의 한계일까요?
사실 융통성이 있다는 게 그리 좋은 의미로만 해석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건 곧 요령을 피운다거나 꼼수를 부린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게 판단이 된다면 그 어떤 일에도 융통성이 발휘되어선 안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런저런 사정을 다 고려하더라도 답답함을 떨칠 수는 없습니다. 속된 말로 장사 하루이틀 하나 왜 이래 따위의 생각이 들곤 합니다. 아마도 이런 탁상 행정의 행태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특히 우리나라라면 더더욱 그러하지 않겠나 생각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