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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Nov 22. 2024

느리게 살아간다는 것

주제 1: 느림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할 때가 많습니다. 가령 이런 식의 논리가 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육상의 꽃이라고 하는 100m 달리기와 비교했을 때 42.195km라는 마라톤의 주행 거리는 무려 420여 배가 넘는 거리를 달리게 됩니다. 만약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이 찰나와 찰나가 이어지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면 마라톤이 인생에 비유되는 건 꽤 합당한 일이 아니겠나 싶긴 합니다. 그러나 마라톤과 우리의 인생은 근본적인 차이점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 마라톤은 쉬지 않고 달려야 합니다. 사점이라고 하지요? 데드포인트를 넘나드는 순간에도 어지간한 정도 이상의 고통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무시하고 달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아주 잠깐 쉬거나 멈추는 사이에 함께 대열을 이루어 달리던 무리에 있던 많은 선수들이 앞서 나갈 것이고, 심지어 뒤처져 있던 선수들도 앞지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우리의 인생은 쉬지 않고 달리기만 한다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쉬지 않고 달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필요한 순간마다 우린 잠시 그 자리에 멈추어 설 수 있습니다. 사는 것이 힘들어서 멈추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제대로 살고 있는지 확인하려면 반드시 멈추어야 합니다.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어디쯤인지 파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길에 들어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확인 절차가 끝이 나면 잠시 숨을 고른 뒤에 다시 달려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마라톤은 뒤를 돌아봐선 안 됩니다. 저는 단 한 번도 마라톤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실제로 주행 중에 뒤를 돌아보면 달리던 속도가 얼마나 줄어드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다면 종종 마라톤 경기 영상을 보면서 선수들이 달리다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때마다 중계 진행자가 그러면 안 된다고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앞만 보고 결승점까지 달리는 것이 그것이 마라톤이니까요.


그러나 우리네 인생은 앞만 보고 달려선 안 됩니다. 때로는 우리가 잘못 들어선 길인지도 모르고, 간혹 우리 앞에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장애물이 버티고 서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살다 보면 우회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전혀 다른 길로 접어들어야 하는 일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뒤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을 확인하고 앞으로 달려 나갈 길을 눈여겨봐 둬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마라톤은 과학적인 수단을 동원하든 혹은 때로는 비과학적인 힘에 의존하든 간에 어떻게든 빨리 달려야 하는 경기입니다. 그것도 그냥 빠른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최대한 빨리 달려야 하며 곡선길이나 오르막길 또는 내리막길 등에서 페이스를 조절해야 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 페이스의 초점은 최대한 빨리 달려야 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어야만 선수는 자신의 최고기록을 경신할 수 있게 되고, 이런 갱신의 과정들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때 권위 있는 대회에서 입상권에 진입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빨리 달려선 안 됩니다. 빨리 달린다면 그만큼 가속도가 붙어 우리가 원할 때 혹은 원하는 시점에서 급제동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멈춰야 할 그 지점을 한참 지나 서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최대한 천천히 달리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앞선 두 가지와 조합해 보자면 결국엔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므로 최대한 천천히 달리면서 뒤를 돌아보아야 하고, 또 원하는 순간에 그 즉시 멈출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느리다’는 말은 결코 긍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게 하는 말은 아닙니다. 동작이 느리다, 어떤 자극에 대해 반응이 느리다, 다변화하는 사회에서 사고방식의 전환이 느리다 등에서 이 ‘느리다’는 말은 어딘지 모르게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비치기 십상입니다. 그렇다면 혹시 이렇게 표현해도 될까요? 모든 것이 급변하는 세상에서 동작이나 생각이나 말 등을 빠르게 하면서 사는 건 허용된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우린 느린 삶을 지향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물론 여기에서의 ‘느리다’는 말은 절대적으로 그렇다는 말이 아닙니다. 바쁘다 바쁘다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건, 느릿느릿하게 살아가는 사람이건 간에 그 양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똑같습니다. 게다가 그 둘의 수명이 똑같다고 가정한다면 어떤 식으로 살아가든 그들은 같은 시간에 죽게 됩니다. 그 말은 곧 ‘느리다’는 것이 상대적인 개념이란 뜻이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슬로 라이프를 지향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느린 삶은 아니라는 말이 되는 셈입니다.


저는 느리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가끔은 뒤를 돌아보며 제 자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반문해 보고 싶습니다.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는지, 또 올바른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지를 몇 번이고 곱씹어 보고 싶다는 말입니다. 만약 아니다 싶은 순간이 오면 얼마나 멀리 갔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확인한 뒤에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나는 천천히 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뒤로 가지는 않습니다.


한때 천하장사였다가 우리나라의 예능계 MC의 최정상에 선 강호동 씨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천천히 가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뒤로 가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입니다. 퇴행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천천히 나아가도 된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인생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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