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 하는 걸 본 적이 없기에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벙어리 박 씨라고 부르곤 했다. 아이들은 그렇다고 쳐도 실제로 성희 역시 그의 목소리를 들어 본 기억이 없다.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서른 안팎이라고 했다. 성희와 고작 댓 살밖에 차이 나지 않으니, 아저씨라고 부르기에도 사실은 좀 뭣한 나이였다.
그가 학교의 일을 잘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박 씨는 누구보다도 나무와 꽃을 잘 가꾸기로 소문이 나 학교에서 채용하게 되었다는 말이 들렸다. 워낙 말 수가 적어서 별명이 그렇게 붙은 것이지 실제로 벙어리일 리는 없을 터였다. 이건 분명히 이상한 학교 괴담과 함께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그런데 더 알 수 없는 건 그는 어딘가에서 많이 본 듯한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아무리 생각해도 성희와 박 씨와의 사이엔 그 어떤 접점도 없었다.
창고와 학교 건물의 딱 중간쯤에 서 있는 박 씨의 모습이 여느 때 같지 않았다. 어디선가 음산하고 기괴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어찌 보면 사람 그 자체로서도 그렇게 보일 정도였다. 가능하다면 마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지만, 저렇게 버젓이 길목을 가로막고 있으니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좋든 싫든 그가 선 뒤쪽으로 지나가야 했다. 말을 걸어올 리는 없을 거라는 확신은 들었다. 성희가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면 기껏해야 목례만 하면 될 뿐이었다.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지나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양손에 든 종량제 봉투의 무게 때문에 몇 번은 땅을 끌다시피 했다. 하필이면 그때 박 씨가 돌아보는 바람에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요란한 비닐 소리가 그의 신경을 건드린 탓이었다. 이제 성희는 대놓고 그를 외면할 수도 없었다.
‘귀신이 나온다는 창고, 점점 거세어지는 바람, 그리고 수수께끼 투성이의 박 씨 아저씨…….’
생각할수록 이상한 연결고리가 아닐 수 없었다. 뭔가 자꾸 얽혀드는 느낌이었다. 목례만 하고 얼른 지나갈 생각이었다. 갑자기 박 씨는 하던 일을 멈추고 성희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박성희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바람이 심한데 어딜 가세요?”
순간 성희는 그 자리에서 움찔하고 말았다. 당연히 그렇겠지만, 모두가 믿고 있는 것과는 달리 박 씨는 벙어리가 아니었다. 성희가 놀랐던 건 2년 동안 근무하면서 처음으로 박 씨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그는 멀쩡한 사람이었다. 전혀 어눌하지 않은 또렷한 목소리도 의외였으나, 백 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 중에서 성희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여태껏 단 한 마디의 말도 섞어보지 않았는데 말이다. 성희는 놀란 가슴을 가라앉혀야 했다.
“네. 안녕하세요? 쓰레기 버리러 가는 중이에요.”
어설프게 묶은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보던 박 씨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느닷없이 심각한 얼굴을 한 채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고는 마치 아무도 들어선 안 되는 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속삭였다.
“선생님은 저 창고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얘기도 못 들으셨어요?”
“예, 듣긴 들었지만 전 그런 거 안 믿어요.”
별로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아 말을 자르려 했다. 솔직히 말해서 벙어리일지도 모른다고 소문난 박 씨에게서 처음 말을 듣고 나니 모종의 무서움도 들었고, 평범한 보통 사람과 얘기를 나누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요? 만약 제가 봤다면요? 그래도 꾸며 낸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하세요?”
요즘 세상에 귀신이라니, 하며 무시하려던 성희는 며칠 전에 본 기린이 떠올랐다. 물론 정체불명의 노인과 그와 얽힌 묘한 이야기도 생각났다. 성희는 두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온갖 허풍과 과장된 몸짓을 섞어가며 얘기하던 몇몇 아이들의 말이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인가 싶었다. 이내 눈이 휘둥그레지는 성희의 모습을 본 박 씨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하하. 그냥 해 본 얘깁니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그깟 귀신 얘기를 믿겠습니까? 괜히 무거운 것 들고 가지 마시고, 그 근처 아무 데나 두세요. 이따 어차피 그쪽으로 가야 하거든요. 그때 제가 갖다 놓겠습니다.”
겁에 질린 듯 멍하니 서 있던 성희를 쳐다보며 박 씨는 한 번 더 호탕하게 웃었다. 박 씨는 화단으로 가 연장을 들고 다시 하던 일에 몰두했다.
말은 농담이라고 했어도 성희는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기 교실에서 나온 쓰레기를 아무리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박 씨에게 덜컥 맡길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건 분명 경우에 어긋나는 짓이었다.
성희는 종량제 봉투를 들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창고에 점점 가까이 갈수록 두려움이 이전보다 몇 배나 커지는 걸 느꼈다. 정말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금세 주변이 먹구름이 낀 듯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미처 쓸어 담지 못한 낙엽들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거센 바람에 심하게 날리고 있었다.
일단은 이 자리를 벗어나야 했다. 창고 옆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도착한 성희는 차곡차곡 쌓아놓아야 할 종량제 봉투를 더미들 위에 내다 꽂아 버렸다. 애써 묶은 비닐봉지가 벌어졌는지 땅바닥으로 쓰레기가 마구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애초에 성희는 다시 돌아가 쓰레기를 주워 담을 용기는 없었다. 마치 뭔가에라도 홀린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람?’
성희는 땀을 닦으며 얼른 교실로 돌아와 문을 잠갔다. 그러고는 전화벨 소리만 요란하게 울리는 교무실에 열쇠를 걸어 놓으러 갔다. 벽에 붙어 있던 열쇠 보관함에 교실 열쇠를 걸어 놓다 문득 아래쪽에 꽂혀 있는 특별실들 열쇠가 눈에 띄었다. 그중에서도 유별나게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동문 창고]라고 적힌 두 개의 열쇠였다. 학교에 있는 몇 개의 창고 중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바로 그 창고 열쇠였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을까? 그냥 무시하고 발길을 돌리려다 어쩐지 지금이 아니면 저 열쇠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성희는 혹시라도 교무실 안에 누가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그리고 잠시 복도로 나가 교무실을 지나가는 사람이 있는지도 확인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두 개의 동문 창고 열쇠 중에서 여벌 열쇠 하나를 고리에서 떼어냈다. 그 순간 몸 아래쪽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늘 몸에 붙어 있지만 자신의 것인지 아닌지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신과 하나가 된 엉덩이의 세 점에서 발산되는 열이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길거리에서 노인을 만났을 때에도 그랬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잠시 점이 있는 엉덩이를 더듬어 본 성희는 여벌 열쇠를 주머니에 깊이 밀어 넣고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