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가 대도시에 살아야 하는 이유
330일 차.
장인어른이 병원에 입원해 계십니다. 잠시 병원에 들렀다가 다른 곳을 또 가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문제는 병원이 지하철 역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어서 아무래도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았습니다. 어딜 가든 늘 지하철만 타고 다녔습니다. 세상에서 지하철만큼 편한 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제가 오늘 제가 사는 대구에서 몇 년 만에 버스를 탔습니다.
처음에 길 찾기를 검색했을 때 택시로 가는 방법이 있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깝게 허비하는 돈이 택시비라고 생각하는 저로선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택시를 타지 않는 게 철칙입니다. 다행히 약속 장소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습니다. 22개의 정류장을 거쳐 가는데 3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나오더군요.
시간에 딱 맞춰 갈 수 있다고 나오니 일단 얼른 집어 탔습니다. 밤에 보는 대구시의 야경이 눈앞을 스쳐 갑니다. 항상 지하철만 타고 다녔으니 제가 사는 곳이 아닌 다른 동네의 밤 풍경을 보는 것도 제겐 꽤 이색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어딜 가려고 해도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겠구나. 하고 말입니다.
이곳이 서울만큼 지하철이 여기저기 다 연결되어 있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서울과 부산 다음으로 대중교통이 잘 발달된 곳이 아닌가 싶더군요. 같은 광역시라고 해도 광주와 대전은 1호선밖에 없고, 심지어 울산은 아예 지하철조차 없으니까요. 저 같은 뚜벅이들에겐 이런 곳에 살아야 마음먹은 대로 움직일 수 있겠더군요.
제가 졸업한 고등학교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을 지나니 옛날 생각도 났습니다. 가끔 야간 자율학습이 하기 싫을 때 친구와 20분을 걸어서 그곳까지 왔다 갔다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그 친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 연락이 끊겨 버렸으니 알 길이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인맥 관리를 잘 못한 제 탓입니다.
공기가 탁하고 사람도 너무 많아 혼잡하기 짝이 없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가끔은 저 역시도 공기 좋고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을 먹을 때도 있습니다. 아마도 지금보다 더 나이를 먹게 되면 그 생각은 더 깊어질지도 모릅니다.
젊은 건 분명 아니나 늙었다고 말하기엔 애매한 나이인 지금, 아직은 운신이 자유롭고 편리한 이런 대도시에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사라고는 한 번도 지어 본 적이 없고, 소일 삼아 텃밭을 가꾸는 것조차 관심이 없는 저로선 대도시에 살아야 할 팔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왕 복잡한 대도시에 살고 있으니 지금처럼 누릴 수 있을 때 최대한 누려야겠습니다. 혹시 이삼십 년 뒤에 움직임이 불편해지면 그때는 또 시골 타령을 할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