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20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아이들의 이름 외우기 2

by 다작이 Mar 12. 2025

솔직히 담임의 입장에선 만나기도 전에 이름부터 들어 알게 된 아이의 존재가 반가울 리 없습니다. 시쳇말로 문제아라고 일컬을 정도의 반열에 오른 아이는 이미 온 학교에 소문이 나기 마련이고, 거기에 그 아이의 부모님까지 응대하기 어렵다는 후설이 자자하게 되면, 본의 아니게 신학년 배정 때 신경전 아닌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한 학년에 한 반만 있는 소규모 학교라면 그 아이가 있는 학년만 피하면 되지만, 다학급으로 구성된 학교에선 결국 선생님의 손에 1년의 명운이 달린 셈입니다.


예를 들어, 모든 선생님들이 피하고 싶은 특정한 아이가 5학년이라고 가정하고, 제가 5학년을 맡게 되었다는 상황을 설정해 보겠습니다. 학년말 업무분장이 끝나고 신학년이 배정되면, 그 학년을 맡은 선생님들이 앞으로 나와 단상에 마련된 여러 장의 편지 봉투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만약 5학년에 여섯 개 반이 있다면 단상에 놓인 봉투는 모두 6개가 되는 셈입니다. 봉투 속에는 앞으로 자신이 맡게 될 학급의 모든 아이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고, 각 아이의 이름 옆에 별도로 마련된 비고란에 뭔가가 적혀 있습니다. 대체로 기초생활수급 가정의 아이, 한부모 가정의 아이, 다문화 가정의 아이, 도움반(예전에는 특수반이라고 많이 불렀습니다)에 소속된 아이, 그리고 생활지도가 곤란하다고 판단되는 아이 등입니다. 학부모님 입장에서 봤을 때 뭔가가 이렇게 별도로 기재된다는 게 꺼림칙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지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기초생활수급 가정의 아이는 각종 복지 혜택 시에 반드시 참고를 해야 하고, 한부모 가정의 아이는 생활지도나 상담 등에 있어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가령 어머니와 함께 해야 하는 과제를 제출하는 경우나 수업 시간 중 어머니에 대한 내용이 두드러지게 나오는 경우에는 이 아이가 상처받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을 써야) 합니다. 또 다문화 가정의 아이는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어머님이 아닌 아버님과 연락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기억해야 하고, 도움반에 소속된 아이는 정규수업 시간 중 국어와 수학 시간엔 도움반에서 수업을 받아야 해서 꼭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생활지도가 곤란한 아이는 왜 기재되어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이 아이가 전년도 담임으로부터 인수인계된 아이일 확률이 높다는 사실입니다.


자, 이제 다시 봉투를 뽑는 상황으로 돌아가 보는 게 좋겠습니다. 6개의 봉투를 뽑을 때 통상적으로는 담임으로 내정된 6명의 교사가 자체적으로 순번을 정해 선택하게 되지만, 대개 통합학급(대다수의 일반 학생 외에 도움반 학생이 포함된 학급)을 희망하는 선생님들이 먼저 뽑게 됩니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도움반 학생을 맡는다는 것은 일반적인 학생 서너 명을 가르치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의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관내에서의 타학교 이동 시에 가산점을 주는 제도가 있습니다. 전근 시 가산점은 자신이 희망하는 학교에 옮길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에 통합학급을 희망하는지 하지 않는지를 먼저 물어보게 됩니다. 물론 이 경우에 여섯 개 학급 모두에 도움반 학생이 있다면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여기까지 얘기했으니 이제 눈치를 챘을 듯합니다. 그 아이를 만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그 아이가 소속된 학급의 봉투를 뽑지 않는 것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봉투를 뽑기도 전에 그 아이가 어느 봉투에 들어 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복불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제가 앞에서 선생님의 손에 1년의 명운이 달려 있다고 말한 겁니다.


불운(?)하게도 그 아이를 맡게 된 담임은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그 아이와 관련된 정보를 모아야 합니다. 특정한 상황에서 아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아이를 자극할 만한 환경적인 요소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교과 수업 시간에 그나마 그 아이가 좋아할 만한 활동이 있는지, 그리고 특별히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과목은 무엇인지 등을 사전에 확인해야 합니다. 아울러 아이의 부정적인 특성이 발현되지 않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고안해야 합니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그 아이 자체의 행동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피해를 입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아이에게 동화되어 많은 부분에서 그 아이를 따라 하려는 아이들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정도까지 진행이 된다면 그 학급은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는 셈입니다.


유비무환. 어쩌면 이 거창한 사자성어가 여기에도 적용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위해 가장 확실하고 믿을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바로 전년도 담임선생님입니다. 아이를 맡게 된 새 담임은 전년도 담임을 찾아가 이런저런 조언들을 듣습니다. 물론 반드시 찾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그 아이를 지도할 때 꽤 많은 부분에서 팁을 얻을 수 있음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종종 우리는, 작년까지는 아이가 정말 대단했었는데 올해는 생각보다도 조용하게 지내는 걸 보니 그 반 담임선생님이 지도를 잘하신 것 같다거나, 작년엔 그다지 존재감이 없었는데 올해는 왜 그렇게 아이가 말썽을 일으키는지 모르겠다며 그 반 담임선생님이 생활지도를 하지 않는 것 같다는 등의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어쩌면 지나친 오해일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선생님도 자신이 맡은 반 아이의 행동(특히 문제행동)에 대해 교육적인 지도를 게을리하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생활지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1년 동안 꾸려가야 할 학급생활을 스스로의 손으로 망치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25년을 학교에 몸담아 온 제가 보기엔 선생님과 아이가 서로 결이 맞지 않아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논리인가 싶겠지만, 선생님과 아이 사이에도 엄연히 궁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작년과 올해에 각각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 아이를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들의 이름 외우기 1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