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7일 차.
휴대전화 케이스에 신용카드가 꽂혀 있는 채로 버스 단말기에 찍습니다. 대구에서 대경선을 타고 왜관역까지 왔으니 학교로 가는 버스를 이용할 때 환승 적용을 받아야 합니다. 얼마 전부터 카드가 꽂힌 채 단말기를 찍으니 인식이 잘 안 됩니다. 할 수 없이 카드를 한 손에 들고 버스를 기다려야 합니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단말기에 카드를 찍습니다. '삐익'하는 소리가 들리고 나면 다시 카드를 휴대전화 케이스에 꽂으면 됩니다. 그새 손이 굳었다고 해야 할까요? 카드 꽂이에 제대로 꽂지 못하고 아침부터 헤매고 있습니다.
난데없는 이 추위를 어찌 설명해야 할까요? 아무리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때라고 해도 이런 날씨를 기대한 건 아니었습니다. 만물이 파릇파릇하게 생동하는 봄이 어쩌고 저쩌고 하던 입이 쑥 들어가고 맙니다. 완연한 봄이 왔다며 두꺼운 옷을 장롱 속에 넣으려던 손짓이 멈추고 말았습니다. 때 늦은 추위, 이미 날씨는 한창 춥던 한 달 전쯤으로 되돌아간 느낌입니다. 누가 봄이 왔다며 설레발을 쳤는지 머리를 쥐어박아 버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과연 지금의 이 모습이 봄의 모습인가요?
아침에 대구역 대합실에서 TV를 통해 뉴스를 봤습니다. 몇 년 만에 폭설이 내린다고 난리입니다. 제주에는 강풍까지 예보되어 있다고 합니다. 거의 태풍급이라며 호들갑을 떨어댑니다. 그 호들갑에 기어이 지난주에 집어넣었던 내의를 다시 꺼내어 입었습니다. 바람은 제주에서 부는데 왜 대구에서 내의를 입었냐고요? 더운 것도 싫지만, 추운 건 딱 질색입니다. 행색이 꾀죄죄한 데다 몰골까지 볼품없는 참에 춥다고 덜덜 떨면서 다니는 건 제 마지막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일입니다. 내의를 하나 입고 안 입고의 차이를 실감합니다. 입고 다녀보니 아랫도리가 확실히 따뜻해져 든든할 뿐입니다.
날은 추워도 할 건 다 합니다. 그리 보람찬 하루를 보낸 건 아니라고 해도 오늘도 비교적 잘 보냈습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실험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온도와 열'이라는 단원인데, 온도를 어림하거나 온도계로 측정하는 활동을 배웠습니다. 알코올 온도계와 적외선 온도계의 사용 방법을 익혔습니다. 실험과 관련하여 안전 교육을 한 주간 실시했고, 탐구 활동 과정에 대한 이론 학습을 지난주에 마쳤습니다. 지루한 수업을 한 덕분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다소 소란스럽긴 해도 첫 실험 수업은 만족했습니다.
오후에 몇 가지 업무를 하다 보니 회의가 있다며 연락이 왔습니다. 요즘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현장체험학습에 대해 의논할 게 있다고 하더군요. 요즘 말로 답정너입니다. 이미 방향은 정해져 있습니다. 관리자도 아닌 일개 교사가 교장과 교감선생님의 생각을 돌릴 수는 없습니다. 다분히 형식적인 겁니다. 물론 그마저도 관리자에겐 면피용 조치입니다. 독단적으로 혼자 결정한 게 아니다, 다 너희들한테 물어보고 결정한 것이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결국은 갑니다. 사실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가는 게 맞습니다. 학교 생활이라는 게 뭐 별 것 있겠습니까? 친구들과 함께 이렇게 소풍도 가고 하면서 추억의 한 자락을 만드는 게 그들의 관심사일 테니까요. 다만 담임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영 불안함을 지우고 가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는 형편이 나은 편입니다. 제가 맡은 아이들이 없으니 저는 그저 가서 보조 교사 역할만 수행하면 될 뿐입니다.
날씨가 제 아무리 추워도 문교부 시계는 갑니다. 저도 물론 그 시절을 지나왔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