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글을 만나기 전까지
버스를 기다리던 중 근처에 서 있던 동료 직원이 보였습니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고 있으나, 버스정류장에서 자주 보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인사도 할 겸 근황도 물어보고 싶어 말을 걸었습니다. 순간 마치 벽을 보고 얘기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참 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주변의 차 소리가 어느 정도 크긴 했어도 제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한 번 더 말을 걸려다 문득 언젠가 아들이 제게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한테는 먼저 말을 걸지 마. 아무도 그걸 원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말은 안 걸더라도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혹시 나중에라도 사람을 보고도 모르는 척하더라,라는 말이 돌면 결과적으로 제게 좋을 게 없었으니까요.
두 번 더 불렀습니다. 여전히 대답이 없었습니다. 뭐지, 하는 생각이 들다 그 사람의 귀에 꽂힌 뭔가를 보고 말았습니다. 무슨 노래인지는 몰라도 인사하느라 조금 더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했던 제 귀에도 또렷이 들릴 정도였습니다.
‘아, 저러니 못 듣는구나.’
그 직원은 마치 처음부터 나라는 사람은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취급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려다 밑져야 본전인 셈 치고 한 번 더 불러보기로 했습니다.
"네? 뭐라고 하셨어요?"
그 직원은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갈 만큼 작고 하얀 뭔가를 귀에서 빼내며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네 번 만에 대답한 그녀는 무슨 말을 했냐며 제게 되물었습니다. 이쯤 되면 하고 싶었던 말도 쑥 들어가게 됩니다. 상대방이 저와는 그 어떤 대화도 나눌 준비나 마음이 없다는 걸 알았는데, 설령 할 말이 있었다고 해도 무슨 기분으로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아마도 이름이 ‘인이어’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공식 명칭은 저도 모릅니다. 하다못해 국어사전에 뭐라고 표기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알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그 하찮고 작은 것 하나 때문에 괜스레 사람 앞에서 얼마나 많은 좌절을 맛봐야 했었던가요? 그 빌어 먹을 인이어 때문에 기본적인 소통이 안 될 정도입니다. 그런데 정작 더 답답한 건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먼저 말을 꺼낸 제게 문제가 있을 뿐입니다. 말만 걸지 않았다면 전혀 문제가 될 것도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나중에 집에 가서 이 일을 얘기하고 난 뒤에 아들에게 싫은 소리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요즘의 세대는 인이어를 착용하는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로 나뉜다고 합니다. 물론 어딜 가나 이것을 착용하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형편입니다. 보기에 좋고 안 좋고 따위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건 사람을 대하는 기본적인 예의에 속하는 일입니다. 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저걸 착용하는 사람들은 그런 자신의 행동이 예의 없는 일이란 걸 모르고 있는 걸까요?
얼마 전엔가 어떤 회사에서도 인이어를 꽂고 업무를 보는 MZ 세대 사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상대방을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고 합니다. 왜 못 듣나 싶어서 옆에 가서 툭툭 치면 그제야 인이어를 빼고 알은체를 한다고 합니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그들도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는 있었습니다. 자기는 귀에 인이어를 꽂고 음악을 들어가며 일을 해야 집중이 잘 된다고 했습니다.
하긴 며칠 전엔 점심 식사 시간에 급식실에서 인이어를 귀에 꽂은 채 식사 중인 어떤 선생님을 본 기억도 났습니다. 옆에 자기 반 아이들이 버젓이 앉아 밥을 먹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들은 왜 그러고 있냐는 지적에도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입니다. 이건 아무래도 아니지 않냐고 하거나 대인관계상 도리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하면, 지적한 사람에게 오히려 개꼰대 취급을 당하기 십상입니다.
세상이 왜 이렇게 되어 가는 것일까요? 아무리 자기가 좋아하거나 호감이 있는 사람과만 소통하는 걸 선호하는 세대라고 해도 다 큰 성인이 왜 이 간단한 것 하나조차도 판단이 되지 않는 걸까요?
“당신과의 소통은 필요 없습니다. 저는 그걸 원하지 않으니까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그들은 마치 제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괜히 저만 민감하고 까탈스럽게 구는 것일까요? 적어도 학교 사회에서 아이들에게만 휴대전화 사용에 대해 얘기할 게 아니라, 어른들의 인이어 사용 문제도 한 번쯤은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