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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수 Feb 14. 2024

비 오는 날 아이가 우산도 없이 울면서 집에 왔다.

맞벌이 부부는 하교한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오후 2시, 국악으로 된 학교종소리가 흘러나온다. 우리나라의 것을 더욱 사랑해야 한다는 취지에서인지 어느 순간 학교 종소리는 국악으로 바뀌었다. 종소리가 국악인덕에 종소리가 길어졌다. 쉬는 시간도 선생님의 흰머리도 늘어났다.


집에 갈 생각에 들뜬 아이들은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한다. 선생님은 재빠르게 아이들을 다시 제자리에 앉히고는 알림장을 쓰기 시작한다. 알림장 맨 마지막은 항상 ‘차 조심! 사람 조심! 길 조심!’이다. 이제 하교송만 부르면 정말로 학교가 끝난다. 하교송이라는 건 말 그대로 하교하기 위해서 부르는 노래인데 곡은 한 달에 한번 바뀌고 노래는 선생님이 선택하신다. 선생님은 윤도현 밴드의 나는 나비를 가장 좋아하셨다.


나는 곧장 학교 도서관으로 향했다. 신발을 벗고 따뜻한 보일러가 되는 도서관에 들어갔다. 사서 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나서 잠시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다. 내 선택을 기다리는 수많은 책들 가운데 한 권을 골라 책장 사이 작은 노란 소파에 앉는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책을 읽다 보면 책이 끝을 보일 때쯤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구몬도 하고 영어 숙제도 하면 피아노 학원 갈 시간이 코 앞에 다가와있다.


피아노학원도 가고 미술학원도 가면 노란 영어학원 셔틀버스가 나를 데리러 왔다. 노을이 질 때쯤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출근을 하셨다. 학교가 일찍 끝나면 퇴근하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학원을 가지 않고 친구들이랑 동네탐험을 하기도 하고 온몸이 모래 범벅이 될 때까지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기도 했다. 분식집은 필수코스였다. 컵떡볶이, 피카츄, 떡꼬치, 순대범벅 정말 참새는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었다. 아닌 날은 학원 풀코스를 뛰었다.


그래도 나는 엄마가 아빠가 일하는 게 싫지는 않았다.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가 데리러 오면 좋겠다고 생각한 날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 찾아오는 엄마가 부러웠다. 하루는 비 오는 날이었는데, 우산에 신발가방에 책가방에 미술 준비물 가방에 들고 갈 것은 잔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미술준비물가방은 비에 젖어서 찢어졌다. 가방이 제 역할을 못할 때쯤 나는 모든 짐을 내팽개치고 울면서 집에 걸어왔다. 심지어 우산도 버리고 말이다. 쫄딱 젖고 물에 빠진 생쥐꼴로 집에 갔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단지 "다녀왔습니다." 하는 내 말소리만 사방으로 퍼져 사라질 뿐이었다. 그날 저녁 엄마랑 같이 짐을 찾으러 갔다. 나도 그날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냥 유난히 서러운 날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부모님이 맞벌이인 게 좋았다. 우리 엄마는 무슨 일 하고 우리 아빠는 무슨 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좋았다. 하교 후 맛있는 엄마의 간식도 좋았겠지만 친구들과 놀이터도 학원풀코스도 도서관도 좋았다. 나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좋아했다. 배우는 게 욕심이 많아서 정말 하고 싶다고 한 걸 다하려면 하루가 48시간 이래도 모자랐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에는 그때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피아노도 태권도도 바이올린도 원어민 영어학원을 놀면서 다닐 수 있는 것도 그때뿐이다. 나는 초등학생 때로 돌아가도 똑같이 학원 풀코스로 다녔을 것이다. 그때는 그때만 배울 수 있는 것을 배우는 것이 참 좋다. 그리고 그렇게 가르쳐 주신 부모님께도 감사하다.   


나는 학원이 성격에 맞는 아이였지만 그렇지 않다면 학교 도서관이 추천한다. 학교 도서관에서 쌓는 추억들은 커서도 책과 도서관과 친해지게 한다. 심지어 하교 후 학교 도서관을 이용하는 아이들이 별로 없기 사서선생님의 관찰 아래에서 안전할 수 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들도 정말 좋은 활동들이 많다.


나는 겁이 많았지만 조금 일찍 혼자 하는 것들에 대해 배웠다. 엄마아빠가 일하는 시간에 나도 이것저것 하며 알찬 하루를 보내고 엄마아빠를 맞이하는 것이 좋았다. 처음은 모두 두렵겠지만 아이는 잘 커갈 것이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동생을 키울 때도 엄마는 육아휴직을 할까 많은 고민을 했지만 나는 결사반대했다. 나는 일하는 엄마가 좋았고 충분히 잘 자랄 수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생각이상으로 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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