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태하 Jun 12. 2024

서울 생활 10년, 우리집이 생겼다.

2편. 영끌, 수습, 아기, 공황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했던가. 대출원금 다 갚은 후 저축으로 돈이 쌓이니 투자욕심이 생겼다. 이전의 실패는 공부 부족이 원인이라 판단했고 투자 관련 서적 수십 권을 읽었다. 그때 당시 부동산이 뜨거워지고 있었고 이 흐름마저 놓치면 앞으로 기회는 영영 없을 것 같았다.


지금이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자동차도 팔아버렸다. 집값의 90%를 대출받고 10% 원금으로 부동산을 매수했다. 어차피 전세 대출이자 내면서 사느니 내 집에서 담보대출이자 내면서 사는 게 낫다 싶었다. 정부 대출 상품이라 이자율이 낮았다. 신용대출도 받았다. 이자는 감당 가능했다.


실거주하고 양도세 비과세로 매도했다. 이자 비용은 지출됐으나 예상보다 많은 시세차익이 생겼다. 순 저축으로 1년간 모을 수 있는 돈의 7배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역시 부동산이 최고다 싶었다. 거주 문제가 해결되는데 돈까지 벌 수 있다. 세상에 이것보다 더 좋은 투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투자는 부동산이다. 그때 당시 나의 결론이었다. 아내와 결혼을 약속한 상태였고 우리가 서울에서 출퇴근하면서 살기에 좋은 집이 필요해졌다. 당시 나 혼자 살던 집은 전용 10평으로 작은 데다 아내의 출퇴근이 편도 90분으로 직장과 거리가 너무 멀었다. 부동산 갈아타기를 하기로 했다.


부동산 공부를 하며 내가 내린 결론은 2가지가 있었다. 첫째, 부동산은 덩어리가 클수록 더 많은 돈을 번다. 그래서 레버리지를 많이 쓸 수 있는 선택을 했다. 그때 당시 주택 담보대출은 50%만 가능했고 전세를 주면 70% 레버리지가 가능했다. 입주는 나중으로 미루고 전세를 주기로 했다.


둘째, 부동산을 매수할 때 무리하는 게 낫다. 5억 아파트나 10억 아파트나 10% 오르는 비율은 똑같지만 상승액은 5천, 1억으로 차이가 크다. 그래서 기존 아내와 얘기했던 우리의 예산보다 초과되는 아파트를 계약했다.


부동산은 계속해서 오르는 줄 알았다.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고 이젠 잘될 것이라고 믿었다. 비싼 물건을 매수해서 불안하긴 했지만 잘했다고 자축했다. 인생의 큰 숙제인 내 집 마련을 이뤄냈다고 생각했다. 낙관적으로만 생각했다.


확신이 강할수록 예기치 못한 변수에는 취약했다. 부동산 계약 직후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됐다. 코로나 때 전 세계에 뿌려진 현금이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전쟁과 유동성으로 물가가 치솟았고 물가를 잡기 위해 연준과 한국은행은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잔금까지는 시간이 남았었고 전세가가 더 오를 거라 생각했다. 과신했고 오판했다. 세입자가 구해지질 않는다. 집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단다. 전세금을 낮춰도 사람이 없다. 시작부터 역전세를 맞았다. 잔금 20일 앞두고 겨우 세입자분을 모셨다. 전세 계약은 예상 전세금보다 10% 낮게 체결됐다. 예비비로 남겨두었던 돈마저 탈탈 털어려서 현금이 메말랐다.


신혼 생활은 취득세 할부로 시작됐다. 월급 아껴가며 어거지로 갚아냈다. 월급으로는 감당이 안 되어 추가 신용대출까지 받아야만 했다. 아기천사도 우리의 중압감을 느꼈는지 발걸음을 주저하며 다가오지 못했던 것 같다.


신혼집에 아무런 물건도 살 수 없었다. 혼자 살 때 쓰던 침대, 세탁기, 식탁, 냉장고를 써야만 했다. 이케아에서 50만 원짜리 3인용 소파를 구매한 것이 우리의 유일한 혼수였다.


취득세 할부를 힘겹게 끝내고 얼마 후 아기 천사가 우리에게 찾아왔다. 아내가 임신했다! 우리 아가도 엄마 아빠가 좀 더 마음 편할 때 와서 놀고 싶었나 보다.




아기가 생긴 행복 뒤로 다른 차원의 문제가 다가왔다. 부동산 하락이 시작됐다. 앞으로 더 오르거나 횡보하는 수준일 줄 알았던 부동산 시장에 역대급 한파가 찾아왔다. 전세가와 매매가 모두 -30% 이상 떨어졌다.


뉴스에서는 전세 사기범들이 판을 치고 있었는데, 나도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해 전세 사기범으로 내몰리게 되면 어쩌나 우려다. 세입자 돈도 내 돈만큼 소중하기에 되돌려줘야만 했다.


매매가 -30% 감소도 충격적이었다. 30%는 우리 부부의 전 재산이었다. 매매가 30% 감소는 우리 부부가 그동안 일해서 번 돈 전부가 사라졌다는 의미다. 집 팔아봤자 남는 건 되돌려 줘야 할 전세금과 신용대출뿐이었다.


대출금리가 엄청나게 상승했다. 원래 부담하던 대출 이자보다 2배가 올랐다. 이자는 많이 내야 하고 갚아야 할 돈은 많았다. 매수한 자산의 가치는 폭락했다. 최악이다.


우리 부부의 절약이 또 시작됐다. 취득세 할부만 끝나면 10kg짜리 통돌이 세탁기에서 드럼/ 건조기가 같이 있는 워시타워도 마련하고 식기세척기도 갖고 싶었다. 하지만 또 뒤로 미뤄야 했다.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잘 돌려주는 것이 우선이었다.


나의 무리한 결정으로 아내의 삶도 힘들게 만들었고 태어날 아기에게도 미안했다. 배 속의 아이는 삶에 희망과 기쁨을 주는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까지 주었다.


공황 증세가 왔다. 당시엔 공황인 줄 몰랐다. 사무실에 멍하니 앉아있는데 숨이 쉬어지질 않고 답답했고 시야가 희미해졌으며 식은땀이 낫다. 의식적으로 호흡해야만 숨이 쉬어졌다. 이런 증상이 한동안 지속됐다. 심리적 중압감에 짓눌렸다.


내가 하는 투자는 왜 다 이 모양일까. 정말 멍청하다. 자책도 많이 했다. 자존감도 많이 낮아졌다. 잘해보려고 하다가 왜 이렇게 다 엉망진창을 만들어버리는 걸까. 모두 다 나의 잘못이다. 술을 자주 먹었고 숙취로 하루를 몽롱하게 지내는 게 오히려 속이 편했다. 정신이 또렷해질수록 마음이 힘드니까.


주변 사람들에겐 자세하게 말할 수 없었다. 한 번 말하게 되면 처음부터 끝까지 길게 말해야 하기도 하고, 힘듦을 주변 사람과 나누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말하더라도 내가 느끼는 만큼 세세하게 알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자세하게 설명하는 법도 잘 모른다. 그래서 나름 괜찮은 것처럼 말하긴 했으나, 사실 몸과 마음은 문드러져 가고 있었다.


아내는 단 한 번도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잘 될 것이라고, 걱정하지 말라며 다독여줬다. 오빠 혼자 한 일이 아니고 우리가 같이 결정한 것이니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했다. 아내마저 나를 탓했다면 완전히 무너져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내는 생각보다 단단했고 나보다 잘 버텨냈다. 극도의 절약 상태에서 가끔 답답함에 눈물을 흘렸지만, 소소한 행복을 찾으며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했다.


난 본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업무 특성상 업무의 결과가 명확한데, 근무기간 중 최저의 과였다. 특히, 전년도에 최고의 성과를 달성해서 더 나락으로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회사에서 징계도 받았다. 사기꾼이 나를 이용해서 돈을 벌었고 이에 대한 책임은 내가 졌다. 사기꾼은 나를 이용해 몇 억 벌었고 나는 금전적 손해를 입었다. 징계 담당하는 인사과에 무고함을 해명하는 일은 보통의 스트레스를 뛰어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울 생활 10년, 우리집이 생겼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