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을 반기는 내가 쓰는 편지
5월.
너무 아름다운 달인 것 같아.
조용히, 가만히 서 있으면 여린 나뭇잎들이 술래잡기하는 소리와 같이 놀고픈 바람의 장난이 푸르른 향이 되어 코끝에서 춤을 추는 느낌. 그 느낌이 나머지 11개의 30일 동안 그리워. 이제 막 돋아나 이파리가 연두색으로 빛날 때 나무 아래서 쉬는 게 얼마나 낭만적인지. 잎과 가지 사이로 들어온 햇살도 모두와 도란도란 안부를 주고받나 봐. 알록달록 진달래와 터질듯한 벚꽃을 더 좋아했던 어린 날들에는 5월을 싫어했어. 온 세상이 녹즙인 것보다는 진한 분홍색 공주 같은 모습을 한 게 더 좋았을 때니까.
너는 5월이 싫다고 했어. 지렁이가 많아서. 5월이 가기 전에, 하루라도 더 5월 햇살 아래 있고 싶어서 땅속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곧 5월은 떠나가지만, 우리의 이별은 항상 내년의 만남을 기약하니까 슬프지 않아.
그날까지 풀어야 하는 수학 숙제를 학교에 두고 온 날이 있었어. 집에 오자마자 풀어도 시간이 모자랄 판인데, 학교에서 한다며 서랍에 넣어 놓고 그대로 집에 가버린 거야. 나는 다급한 마음에 헐레벌떡 자전거를 끌고 나갔어. 걸어서 10분조차 걸리지 않는데도. 횡단보도를 건너느라 어차피 자전거에서 내려 기다려야 하는데도.
귀에는 유선 이어폰을 꽂고 자전거 길을 따라가며 학교에 가까워졌어, 마치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노란 벽돌 길 위를 걷는 것처럼. 다른 게 있다면, 내 길은 빨간색이라는 것 정도? 자전거 길 옆에는 울타리가 있었는데, 그 너머에서 온갖 덤불들이 방금 파마하고 온 듯 무성하고 동그랗게 자라나 있었어. 작은 꽃이 내 눈을 사로잡았어. 나는 자전거를 멈추었지. 사과꽃의 동생처럼 하얗고 소중했지. 사과꽃은 꽃잎 가장자리에 핑크빛 물이 들었지만, 이 꽃은 아니었어. 시작부터 끝까지 보송보송한 눈처럼, 보름달처럼, 천사의 치맛자락처럼 새하얀 모습이었거든. 이름이 무엇이었을까, 자그마한 진주 다섯 개를 모아놓은 것 같았던 그 꽃은.
다른 덤불에는 개나리만큼이나, 아니, 그보다도 더 노란 꽃이 피어있었어. 모습은 애기똥풀을 닮은 것 같기도, 색은 민들레를 닮은 것 같기도 했고. 옆에서 큰 목소리로 엄마와 이야기하며 방방 뛰어가던 어린아이가 꽃이 된다면 분명 그런 노란빛일 거야. 보기만 했는데 나도 어린이가 된 것처럼, 기쁨에 찬 웃음소리를 울리며 거리를 누비고 싶었어. 뛰어다니다가도 친구를 만나면 또랑또랑 맑은 목소리로 손을 붕붕 흔들며 인사하고.
그렇게 꽃을 만날 때마다 꽃만 빤히 바라보다가 균형을 잃어 비틀거렸어. 심지어는 덤불 길이 되어버린 자전거 길을 따라가다가 길을 잘못 들기까지 했다니까. 자전거로는 5분이면 갈 거리를 빙 둘러 가는 바람에 집에 오니 5시가 되어있더라.
5월의 미모에 홀려서 한눈을 판 건 이때뿐만이 아니었어. 수업이 본래보다 일찍 끝나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창밖 풍경이 나에게 속삭였어, ‘나를 봐, 나와 함께 놀자. 나에 대한 시도 써 줘.’ 내가 그 유혹을 어떻게 뿌리치겠어? 창밖에는 나무 몇 그루가 있었는데, 오월의 초록색 손은 나에게까지 닿는 것 같았고, 그 손가락은 나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어. 고단한 학교 일정을 마치고 내 교실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그런 위로를 받을 줄이야. 초록 손가락에는 흰 반지 같은 꽃도 피어있어 정말로 5월을 만들어낸 이의 손 같았지. 손톱은 연노랑이 섞인 연두색이었고.
그 나무 옆에는 붉은 벽돌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건물 하나가 우뚝 솟아있었어.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지, 담쟁이넝쿨이 옥상까지 벽을 타고 손을 뻗쳤고, 건물의 빨간 벽돌은 넝쿨 숲 사이에 숨어 거의 보이지 않았어. 다시 보니 머리카락 같기도 했고, 커튼 같기도 했어. 빨간 벽돌은 어떤 비밀을 숨기기에 그렇게 넝쿨 뒤에 꽁꽁 숨어 있었을까? 어쩌면 담쟁이넝쿨에 묻혀 누군가 자신을 찾아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몰라. 넝쿨이 뒤덮인 바람에 그 누구도 그에게 관심이 없고, 그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걸까. 언젠가 내가 이름을 찾아주어서 ‘우리 학교 옆에 있는 건물 있잖아,’하고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어. 그렇게 한참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창밖만 바라보며 몽상하다가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에 생각의 흐름이 깨져서 정신을 차렸어.
너도 5월을 좋아하는 날이 온다면, 그러니까, 어린이날이나 석가탄신일 같은 휴일이 있어서 말고,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는 나뭇가지와 푸른 잎들이 서로에게 스쳐서 나는 조용한 소리 때문에 말이야! 분홍색 벚꽃이 핀 석촌호수가 아니라, 자전거 길, 둘레 길, 산책로에 있는 푸릇푸릇한 나무와 덤불을 더 자세히 보아주면 좋겠어. 등교하다가, 집에 오다가, 산책하다가, 아담하고 쪼끄마한 어린이 꽃을 보면 인사해 줘, 나는 너도 사랑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