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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브리 Mar 16. 2024

나를 차별하는 미국 시댁

시댁 <절망 편>, 그리고 저편의 희망

결혼에 대한 나의 관점은 꽤나 긍정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완벽할리가 있나.


나와 남편은 결혼을 준비하며 일 년 가까이 같은 문제로 싸웠다.


그 이름도 유명한 시댁.

나의 결혼도 피해 갈 수 없는 문제였다.

 

아무리 해외 생활을 오래 하셨어도 뼛속까지 미국인인 그의 부모님과 미국 토박이 친인척들은 때때로 세심하지 못했다. 그저 외적인 이유로 가족 안에서 은근히 이방인 취급 당하는 것은 나로선 용납하기 어려웠다.


남편의 친인척들은 그렇다 쳐도, 오랫동안 뵈 온 그의 부모님, 나의 학창 시절 선생님이셨던 시부모님께는, 존경했던 만큼 깊은 실망감을 느꼈다.


평생을 다국적으로 살아온 나는 인종의 다름을 크게 느끼지 못하지만, 결국 그들은 나를 정해진 틀 안에서 바라볼 뿐이었다.


그의 부모님과 친인척에게 서운한 점이 쌓이며 화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가족에 대한 문제다 보니 남편 또한 방어적인 태세를 취했고, 나는 고집스럽게 문제를 제기했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절대 기대하는 만큼 이해받거나 사랑받지 못할 것을 인정하는 것은 지금도 어렵다.


더군다나 남편의 부모님들은 학창 시절에도 엄격하기로 유명하셨는데, 자식들이 다 성인이 된 지금까지 이해하기 어려운 집안 문화와 분위기에 당황한 적이 많다.


아낌없이 자식에게 베푸는 나의 부모님과 달리 그의 부모님은 철저하게 개인주의시다. 내가 보는 시댁이란, 각자 부모라는, 혹은 자식이라는 역할에 충실하지만, 껍데기뿐, 알맹이가 없는 관계 - 이다. 겉으로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띄지만 속은 상처로 곪아있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자식들 간에도 사랑의 우위가 있으며 차별이 있다는 것. 그러니 며느리인 나는 유난히 더 차별을 받는다는 것이다. 사위들은 어려워하고 조심스러워하는 반면, 나에게는 두 분 다 본인 감정 그대로 내비치신다.


아무리 본인 아들이 더 좋다지만 미운 놈에게 떡 하나 더 주는 우리 집안과 달리 극명하게 편애하는 모습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남편은 좋은 남편이기도 하지만 좋은 아들이기도 하다. 당연히 그와 나는 경쟁 상대가 될 수도 없기에 별 수 없이 속만 상했다.


결혼 초기, 멋모르고 시부모님과 2-3주가량 지낸 적이 두 번 있었다. 해외에서 사시기에 미국에 계실 때 그래도 아들을 보여드리면 좋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이었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나의 자존감은 곤두박질쳤다. 나는 자연스럽게 시부모님과만 따로 있을 때는 말 수가 적어지고 생기가 사라졌다.


직설적으로, 있는 그대로 소통하는 나와 달리, 시어머니는 간접적으로 소통하시는데, 다 티가 나지만 꼭 돌려서, 의도를 숨겨 말하신다. 비꼼을 당하는 것은 당연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고집이 세셔서 절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시는 편이라 진실과 상관없는 주장을 끝까지 고집하시도 한다. 수학 선생님이신데.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논리 정연하고 정확한 것을 선호하는 내가 이해하기가 정말 어렵다.


결혼 후에는 점차 거리를 두며 나를 보호하는 방법을 배웠지만, 시행착오가 많던 결혼 준비 기간에 유난히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남편도 나도 참 많이 힘들었었다.


그즈음에 결혼 준비 상담을 받기 시작했는데 큰 기대 없이 갔다가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상담해 주신 분은 남편과 비슷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비슷한 경험담을 가지고 계셨다. 덕분에 본인의 부인의 입장에 비추어 나를 잘 이해해 주셨고, 남편에게 정확하고 객관적인 설명을 해주셨다. 나 또한 남편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며 그에게 공정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 시기에 우리의 관계가 안정화가 되고 발전해 나갔다.


결혼 후에도 비슷한 문제는 종종 생긴다. 다만 나는 전처럼 화를 내지 않으며 그도 전처럼 회피하지 않는다. 마찰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시부모님 또한 나를 위해 무던히 노력하신다는 것을 안다. 사실 나는 여태 투정을 부리는 아이나 다름이 없었다는 것도 안다.


그 어떤 문제 하나도 해결되진 않았지만, 나는 시부모님을 조금 더 이해해 보려고 한다. 그분들이 우리를 위해 (라고 쓰고 아들을 위해…라고 생각하지만 다시 정신을 다잡는다.) 신경 써 주신 것을 생각하면 그분들의 허물을 꼬투리 잡아 내세우는 것은 오히려 나의 문제일 수도 있다. 나는 무려 시댁에서 낮잠 자는 며느리인데! 시간이 지나며 내가 힘들었던 것만큼 나의 미성숙함 또한 깨닫는다.


인생의 어두웠던 시간도 극복하고 나면 추억이 남는다. 앞으로도 계속 조율해 나가야겠지만, 나의 초점을 어디에 두는 가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열 번 좋았어도 한번 속상했던 일이 내 전부가 되어버리지 않도록. 문제를 마냥 덮어둘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문제에 잡아먹히면 안 되니까.


생각해 보면 난 시댁과 만나서 힘들었지만 또 만나서 즐거웠던 시간이 더 많다. 정말이다! 이건 당연한 일이 아니다. 모두의 수고로 일구어진 일이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더 나아질 거란 희망을 가져보려 한다. 인생 모든 일은 양면이 존재하기에. 그러니 시댁 <희망 편>은 다음에 이어 써 보도록 하겠다.



본래 쓰던 매거진을 정리하며, 댓글들이 너무 소중해 옮겨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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