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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브리 Mar 03. 2024

미국에서 셀프 웨딩 도전기

나의 로망을, 나의 손으로

2023년, 화창한 5월의 신부가 됐다.

만으로 스물한 살, 누가 봐도 어린 나이지만.


대학 졸업과 맞물려 결혼 준비까지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졸업 준비하랴, 결혼 준비하랴, 교수님들께 걱정 어린 시선을 받을 정도로 마지막 학기를 바쁘게 지냈다.


항상 직접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나이기에 결혼식 또한 혼자 해낼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약혼반지도 직접 디자인한 내가 아닌가!


내가 직접 디자인하여 수제 제작한 반지이다.


최대한 양가 부모님 도움 없이 우리끼리 결혼식을 진행하기로 했기에 경제적인 부분을 고려해서 내린 결정이기도 했다. 있는 돈을 탈탈 털어 그렇게 웨딩 플래너 없이, 미국에서 혼자 결혼식 준비를 시작했다.


미국은 보통 결혼식이 오후에 시작하여 밤에 끝나는 것이 보통인지라 준비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미 진지하게 결혼 이야기가 오가고 있던 차라, 드레스와 웨딩 장소, 케이터링, 그리고 사진작가까지 대략적인 큰 틀은 미리 잡아두었다는 것이다. 나름 계획적인 편인지라, 엄청나게 조사를 해서, 모두 정하고 나니 주변 모든 웨딩 장소와 케이터링, 사진가들은 꿰차고 있게 되었다.


고른 웨딩 장소 - 영어로 wedding venue라고 한다. - 가 유난히 마음에 들었는데, 처음부터 내가 바라는 굉장히 구체적인 이상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자연과 어우러진, 돌로 지어진 작은 채플’!


일반적으로 미국 결혼식은 농장을 예쁘게 꾸민 결혼 장소 (barn/farmhouse-style이라고 한다.) 나, 무도회장 같이 크고 호화스러운 장소가 인기라 내가 원하는 장소를 찾기 쉽지 않았는데, 그런 내가 첫눈에 반한 장소가 있었다.


나의 꿈을 그대로 실물로 옮겨놓은 듯했다.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채플이 아름다운 전경 사이에 놓여있었으며 리셉션장에는 멋들어진 샹들리에가 분위기를 제대로 잡아주었다. 내가 원한 모든 것을 갖춘 장소였다. 가격 때문에 오래 고민하다 잊히지 않아 결국 돌고 돌아 이곳으로 결정했다.


나의 로망을 완벽하게 실현 시켜 준 웨딩 장소이다.                             <이미지 출처: http://stonechapelnwa.com>


이어 하객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비는 시간 없이 틈틈이 이벤트를 준비했다. 몇 번 가보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너무 길어지는 결혼식에 진저리가 났기에 최대한 시원시원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했다. 오후 3시에 시작하여 8시에 끝날 수 있도록 - 믿기지 않겠지만 내가 여태 다닌 결혼식보다 2-3시간 정도 일찍 끝내는 상황이었다. - 1분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그렇게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 위주로, 75명 정도의 소규모로 진행했다. 그만큼 주변인들의 덕을 많이 봤다. 신부, 신랑 각 각 5명씩, 총 10명의 들러리 개념의 bridesmaids, groomsmen부터, 상담부터 주례까지 봐주신 교회 목사님, 결혼식 반주를 해준 친구, 미술 전공을 살려 청첩장을 만들어 준 친구, 화장을 담당해 준 친구, 리셉션 MC와 음악을 담당해 준 친구, 꿈빛 파티시엘도 울고 갈 만한 디저트를 담당해 준 친구, 그리고 영상을 담당해 준 친구까지. 다들 파격적인 일당만으로 흔쾌히 나서주었다.


친구가 만든 초코릿 딸기와 마카롱! 인기가 정말 많았다.

‘혼자 해내겠다,’ 하였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많은 도움과 사랑을 받은 결혼식이었다.


물론 혼자 머리를 싸매거나 발에 불나게 돌아다닌 시간도 그 값을 톡톡히 했다. 원하던 클래식하고 앤틱 한 데코레이션을 발품 파며 열심히 준비해 리셉션장을 연출하고, 주문했던 케이크와 부케도 부탁드린 그대로 도착하여 무척 기분 좋았다. 결혼식장 종사자 분께서 “여태 본 웨딩 중 가장 예쁘다”라고 (아마 서비스적인 멘트였을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진심이 담겼다 여긴다.) 칭찬을 해주셔서 우쭐해질 만큼 뿌듯했다.


결혼식의 분위기가 설명되는 사진 한 장!                                            소품 하나 하나 정성으로 골랐다.
케이크도, 부케도, 전부 기대 이상으로 예뻤다.

물론 아쉬웠던 점을 꼽으라면 억지로라도 꼽을 수 있겠지만, 완벽하지 않았던 부분도, 서툴었던 부분도 나에게 더 의미 있는 날로 만들어주었다. 손이 많이 갔던 터라 더 애정이 생겼나 보다.


참 감사한 날이었다.


일어나서 행복했고,

끝이 나 행복했던,

나의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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