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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브리 Feb 19. 2024

6년 장기 연애, 18개월은 장거리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가더라

연애 2년 차 즈음에,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겼다. 그 이름도 유명한 코로나. 우리는 고등학교 졸업 시기에 코로나가 터져 어쩔 수 없이 장거리 연애를 1년 반 가까이하게 되었다. 기숙학교였던 고등학교는 제대로 된 졸업식도 없이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며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남편은 예정대로 미국으로 대학을 진학했고, 원래 나 또한 미국으로 대학을 가기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코로나가 터지면서 비자 발급이 어려워졌다.


하지만 입학을 지연시키기 싫었던 나는 다시 앞뒤 없는 행동력으로 미국에서 입학한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한국 대학교에 문의해 교환학생 신청을 하여 가게 됐다. 그렇게 우리는 총 11개월 동안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연애의 암흑기를 보내게 된다. 솔직히 헤어지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시간을 갖자’고 이야기해보기도 했다. 이역만리 떨어져 시차도, 환경도 달라진 관계가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곧 교환 학생으로서의 학기가 끝나면 미국으로 돌아갈 것이기에 억지로 연애의 끝을 붙잡았다. ‘미국으로 돌아가면 좀 낫겠지, 지금 헤어지면 후회할 거야.’라고 스스로를 되뇌며.


시간은 흘러, 한국에서의 학기를 무사히 마치고 다시 미국으로 갈 수 있게 되었지만, 장거리 연애의 끝은 아니었다. 다른 주에 있는 대학을 다니고 있던 남편과 얼굴 보기는 아직도 쉽지 않았다. 운전해서 왕복 스물두 시간이 걸리는 거리에 살고 있던 그는 이틀에 걸쳐 한 달에 한 번씩 거의 죽기 살기로 나를 만나러 오곤 했다.


처음 그가 방문해서 거의 일 년 만에 얼굴을 봤을 때, 나를 보며 무지 반가워하는 그와 달리, 나는 그가 너무 어색해 모르는 사람 같이 느껴졌다. 가벼운 포옹하는 것조차 민망할 지경이었다. 애틋하다 못해 초면이 되어버린 사이.


그렇게 열심히 오가며 다시 한 학기가 지나고, 남편은 더 이상 못해먹겠었는지 폭탄선언을 하였다. 바로, 내가 다니는 대학교로 편입해 오겠다는 것.


둘 다 덤덤한 성격 탓에 별 일 아닌 것처럼 일을 진행했지만, 돌아보면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아, 어쩌면 얘랑 진짜 결혼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보다 긴, 우리의 5년 반 가량 되는 연애기간이나, 그 와중에 거진 1년 반 동안 장거리 연애를 한 사실을 알게 된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헤어지지 않을 수 있었나 궁금해하기도 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당연히 쉽지 않았다. 나도 진지하게 헤어짐에 대해서 고민했었다. 생각보다 관계가 많이 무너지더라. 재회 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도 관계를 회복라며 다시 쌓아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관계가 발전해 나가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지금도 남편은 장거리 연애 시절 이야기를 꺼린다. 그도 그럴 것이 참 미성숙하고 불안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둘 다 장거리 연애라면 치를 떤다. 하지만 그 시간을 버텨내고 나니 서로에게 더 확신이 생긴 건 분명하다.  


특별한 방법은 없다. 실상은 그냥, 헤어지지 않고 버티다 보니 시간이 흘렀을 뿐.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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