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브리 Feb 12. 2024

알고 보니 그가 내 첫사랑이었다

그때, 그 시절 우리는

우리의 만남은 특별하지만도, 하지만 평범하지만도 않다. 학창 시절에 만나 결혼하는 것은 아주 흔하지는 않아도 종종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가 조금 색다른 이유는 각자 한국과 미국에서 태어났음에도 정작 만난 곳은 생뚱맞은 아프리카의 한 국가였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수도에서 국제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9학년 초 (중학교 3학년), 부모님께서 시골로 이사하시기로 결정하셨다. 이사 가는 지역에는 내가 갈 만한 마땅한 학교가 없었고, 맏딸로서 항상 행동력이 강했던 나는 부모님의 반대도 설득해 가며 스스로 기숙학교에 입학 신청서를 냈다.


모든 것은 빠르게 진행되어 나는 바로 두 달 내로 바로 짐을 싸 기숙학교로 향했다. 오는 사람 많지 않은 학교인 데다가 학년 중간에  갑자기 전학 온 나는 온갖 주목을 받았다. 한편 그는 부모님이 학교 선생님으로 계셔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서 자라온 학교 토박이였다.


내가 그와 처음 만난 곳은 과학실이었다. (이 때문에 “과학실”은 후에 그의 이상한 애칭이 되어버렸다. 엄마와 수다를 떨 때마다 친구들이 이름을 알아들을까 그를 ”과학실“로 칭했었다.) 학교 첫날, 그와 우연찮게도 생물학 수업에서 옆자리에 지정되었는데 당시에 옆자리에 앉은 그가 귀엽다고 생각은 했고 그도 나에게 관심을 표했지만, 그때 그 나이 때의, 나름 복잡한 사연으로 인해 잠깐의 썸이 있으려다만, 그 정도 사이로 그치고 말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일 년이 흐르고 나도 점차 학교 생활에 적응했을 무렵, 우리는 같은 영어 수업을 듣게 되었다. 학기 도중, 그가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나의 옆자리로 와 앉으며 우리의 관계는 다시 시작이 되었다. 그렇게 사춘기 시절의 드라마를 같이 겪으며 우리 사이는 돈독해져 갔다.


집안이 양쪽 다 엄한 편이어서 우리는 둘 다 스마트폰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그때 그 시절, 아날로그 감성을 되찾아야만 했다. 와중에 그의 집은 나의 집보다도 더 엄격해서, 그는 11학년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연애 금지였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그의 부모님의 감시망을 피해 매일 편지를 주고받았다.


우리의 접점은 영어 시간 밖에 없었는데, 그때마다 무슨 첩보원이라도 된 것 마냥 은밀히 편지를 건네었다. 아주 가끔 몰래 만나기도 하였지만, 둘 다 워낙에 규칙을 잘 지키는 모범생들이라 무지 마음을 졸이며 만났던 기억이 있다. 말은 한마디도 나누지 못하고 편지만 건네고는 돌아서는 날이 종종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렇게 지냈나 모르겠지만, 우리는 만남이 조금 수월해진 뒤까지도 (일 년 뒤, 11학년부터는 스마트폰 사용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했다!) 서로 매일같이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총 2년 가까이 학기 중 매일 편지를 주고받았다. 편지를 주고받을 수 없는 방학 때는 공책에 서로 못 전할 마음을 적기도 했다. 연락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하니 방학 때 혹여나 상대방의 마음이 변할까 전전긍긍하기도 했었다.


제대로 사귀고 난 후부터도 사실 단조롭기 짝이 없었는데, 말했던 대로 둘 다 재미없는 성격이라 도서관에서 공부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 산골짜기에 학교가 있어서 나갈 수도 없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일상 속의 즐거움을 찾아나갔지만. 실제로 남편은 고등학교 졸업 때 Valedictorian (전교 1등)으로 뽑혔었고, 웃기지만 졸업 앨범에도 나란히 “Most Academic (제일 공부를 잘하는)” 남녀로 뽑혔었다. 서로에게 한 눈 팔려 본분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소심하게 강조해 본다!


지금도 우리 집 옷장 위칸에는 커다란 상자가 있는데, 그때 주고받았던 편지로 꽉 차 있다. 몇 개는 구겨 넣어 놓아야 할 만큼.


내가 자타공인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인데 그때는 지치지도 않고 참 끈기 있게 관계를 이어 나갔던 것 같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때의 순수함을 간직한 채 매일 서로에게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지금보다도 더 어렸던 그때, 그만큼 순수하게 만남을 이어갔다. 돌아보면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의 첫사랑이었나보다.



본래 쓰던 매거진을 정리하며, 댓글이 너무 소중해 옮겨 담아본다
이전 01화 스물한 살에 국제결혼을 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