댈러스 여행기 (2)
다음 날 아침이 밝고 호텔에서 간간하게 조식을 먹었다. 나쁘지 않은 평에 저렴한 호텔을 찾았던 터라 맛있지는 않았지만 먹을 만했다. 냉장고에 넣어뒀던 갖가지 음식들을 다시 가방에 넣고 차에 실었다. 호텔 비용 책정이 잘못되어 문의를 했었는데 반영이 안 되어 다시 한번 문의해야 했다는 것 빼고는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곧바로 댈러스 영사관에 들려 일처리를 마무리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어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전 날에 워낙에 배부르게 먹어 점심은 간단하게 주전부리로 때워도 되겠다고 결정했다. 예상보다 일찍 출발하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집에 도착하면 오후 세시, 아주 넉넉한 시간이었다.
남편과 라디오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넓디넓은 댈러스의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가던 중, 일이 터졌다. 달달 거리는 소리와 함께 차가 멈춰 선 것이다. 순간 마음속으로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어쩐지 너무 순조롭다 싶었다. 당황한 남편은 다시 시동을 킨 후 억지로 차를 몰아 갓길에 차를 세웠다. 비상등을 켜고 빠르게 의논했다. 남편은 많이 당황한 눈치였다. 평소에는 듬직한 남편이지만 이럴 때는 동생 기질이 스멀스멀 피어 나온다. 맏이로 커 온 내가 더 많이 참고 강단 있게 판단을 내릴 때이다. 갓길이어도 고속도로 위에 있으니 너무 위험했다. 서비스를 부르자니 장장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어 일단 시동을 다시 켜보라 했다. 다행히 시동이 켜지고, 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바로 앞에 출구였기에 갓길로 주행 후 안전하게 고속도로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주변 정비소를 검색 후 제일 가까운 곳으로 운전해 갔다. 인적이 드문 산길 안쪽에 위치해 있던 정비소였다. 조금 불안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래도 손님이 많은 것 같아 잘하는 집일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들어가서 사정을 설명하니 문제에 따라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한다. 당연한 얘기였다. 그래도 오늘 이내로 집에 돌아갈 수 있길 간절히 바랐다. 정비소 직원이 차를 잠시 살펴보더니 세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남편에게 우버를 불러 근처 휴게소에 가기로 했다. 냉동식품을 아이스백에 다시 정리하여 넣고 어제 먹다 남아 포장해 온 마라탕과 꿔바로우를 가지고 휴게소로 향했다. 솔직히 자동차보다 삼겹살이 상할까 더 걱정됐다.
가는 길 내내 남편의 기분을 풀어주려 애썼다. 정 안되면 근처에서 캠핑이라도 하자는 둥, 실없는 소리를 했다. 나는 예상치 못한 순간을 즐기는 편인 반면 남편은 조급해하는 편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나는 문제를 풀어보듯 흥미롭게 여기지만 남편은 해결하지 못할 상황에 부담감을 가지기 때문인 것 같다. 다행히 나의 위로가 이번에는 먹혔다. 어느덧 함께 웃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남편과 휴게소 구석에 마주 앉아 남은 마라탕과 꿔바로우를 먹었다. 냄새가 날까 뚜껑을 가리고 빠르게 먹었다. 어제만큼은 아니었지만 다시 먹어도 맛있었다. 사실 휴게소라고는 하지만 한국과 같은 개념의 휴게소가 아니라 ’ 트럭 운전자들을 위한 샤워실이 딸린 구멍가게’라는 개념이 더 맞겠다. 덕분에 오고 가는 분들을 관찰하며 내가 몰랐던 삶의 현장을 엿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시간은 더딘 듯 빠르게 흘러 정비소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는 쾌재를 부리며 다시 우버를 불러 정비소로 향했다. 차가 한 번씩 고장이 날 때마다 자동차가 우리 삶에서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매번 절실히 깨닫는다.
정비소 직원이 해맑은 얼굴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각오하고 갔는데 덤터기 쓰지 않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책정해 주었다.
크게 사고 날 수도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음에도 안전하게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던 것, 정말 가까운 거리에 정비소가 있었던 것, 하루 만에 차를 고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 합리적인 가격에 고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삼겹살을 비롯한 음식물이 상하지 않은 것까지 모두 감사할 일들 뿐이었다.
비롯 시간은 늦춰졌지만 우리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 음식을 정리하고 나니 꽉 찬 냉장고와 팬츄리를 보자니 괜히 더 든든했다.
우여곡절 많았지만, 그래도 성과 좋은 댈러스 나들이였다. 앞으로 한동안은 갈 일 없을 것 같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