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가능성의 수용 이후 삶이 선명해졌다.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삶이 ‘부조리’하다고 한다. 이는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고자 세상에게 끊임없이 질문하지만, 세상은 그저 침묵한다는 것에서 발생한다. 카뮈는 그런 침묵하는 세상으로부터 삶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럼에도 그는 이 부조리에 저항하며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뮈는 자살은 부조리로부터의 도피로 생각했다. 그는 그저 깨어 있는 상태로 계속 살아가는 것을 부조리에 대한 ‘반항’으로 여겼다.
당신은 카뮈의 답변에 납득할 수 있는가? 나는 아니었다. 그가 이야기한, ‘부조리로부터 회피하지 않고 맞서 저항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는 주장은 내게 비약으로 느껴진다. 어째서 저항해야 하는지, 나는 설득될 수 없었다. 사실 계속 철학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삶의 이유를 철학에서 찾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철학을 공부할수록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카뮈까지의 탐구가 끝나자, 나는 철학이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려움을 느꼈다. 여기까지 도달한 생각이 내게 남긴 것은 절망감보다는 어지러움이었다.
그럼에도 세상이 굴러간다는 것에 대한 피로감.
타자들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견뎌내고 있을 고통들에 대한 안타까움마저 느껴졌다.
세상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 그저 내게 가치 있는 것은 ‘감각한다’는 것. 그것이 내가 철학에서 세운 유일한 결론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감각하는 것은 쾌보다 불쾌가 많았다. 불쾌가 감각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삶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유일하게 가치로 여기는 것이 부정적 감각만을 남긴다는 것은 삶을 내던져버릴 충분한 동기가 된다는 생각만이 남았다.
당신은 고통스러워 매일을 죽기만을 기다리는 말기
암 환자에게 살아갈 것을 요구할 수 있는가? 우리는 진정으로 그가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가 행복하기를 기대해야 할까? 나는 그러지 못하고, 그럴 이유를 티끌조차 찾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조차 그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려 하는 자들에게는 약간의 역겨움조차 느낄 것만 같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울증 환자에게도 비슷한 논리를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울증이 심해지고 완화되기를 꽤나 많이 반복해 왔다. 우울증이 심한 시기에는 의식이 있는 상태가 괴롭다. 그래서 정신을 잃고자 낮잠을 많이 자게 된다. 이 시기에는 생산력이 굉장히 떨어진다. 사회적으로 가치 있게 여겨지는 노동, 학업과 같은 활동들에 여력을 쏟을 수가 없다. 나는 마치 고문을 받으며 공부하기를 요구당하는 것 같았다. 뇌가 쪼그라드는 감각을 느끼며 공부하기란 쉽지 않다. 사회적으로 비생산적인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은 좌절감을 느끼게 한다. 인생을 말아먹고 있다는 인지는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시간을 허비하며 할 수 있는 게 없어 스크롤을 내리다 정신을 다시 잃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런 시기에는 매일같이 자살에 대해 생각한다. 죽음이라는 것이 번거로운 고통과 복잡스러운 준비과정을 요하지 않았다면, 마치 컴퓨터 전원을 끄듯 버튼을 딸깍 누르기만 하면 되었다면 나는 분명 스스로를 지워버렸을 것이다.
물론 내가 항상 죽음을 바랄 정도로 우울했던 것은 아니다. 견딜 만할 때도 있었고, 즐거움이 있을 때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런 시간 속에는 언젠가 사라질 성냥불 같은 평온함에 불안해하는 나 자신이 있었다. 여러 생각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은 내 죽음이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죽음에 대한 수용적인 태도를 취했다. 내가 죽는 것을 향해 열심히 다가가지는 않겠지만, 죽음을 거부하지는 않겠다. 삶을 끝낼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는 생각이 내 안에서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언젠가 그러한 순간이 온다면 나는 차분히 받아들일 자신을 갖게 되었다. 언제든 삶이라는 궤도에서 벗어나 스스로 소멸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내게는 기폭장치 같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마치 언제든 나를 품어주는 어미새의 품과 같이 느껴졌다.
자살에 대한 소극적 수용은 나를 솔직하게 만들었다. 돈, 인간관계, 체면과 같은 사회적 가치를 따지지 않게 만들었다. 불쾌의 증가는 내게 자살을 부추기므로 나는 내가 즐거운 일들만을 자연히 추구하게 되었다. 만나기 싫은 사람은 대놓고 거리를 두었고, 돈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게 되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따지는 체면보다는 실제로 내가 그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따지게 되었다. 결국 나는 나만의 쾌, 불쾌를 기준으로 어느 때보다도 명확하게 판단을 내리고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