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신적 장애가 있다
우울증 약을 매일 먹는 것이 익숙해진 23년도 9월 무렵, 또다시 개강을 했다. 이 시기의 나는 내 우울과 불안이 외부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인식했다. 학교를 다니는 기간에는 학업에 대한 불안과 대인관계 불안이 날 특히 우울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복약 용량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통학기간과 방학기간 동안 오르내리는 주기적인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24년도 2학기까지 나는 내가 완치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공부가 너무 괴로웠다. 내 학습역량과 지식이 고등학교 졸업 수준에 멈춰있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공부에 시간을 쏟기도 어려웠지만 겨우겨우 정신을 붙잡고서는 책을 펴고 앉아있더라도 같은 페이지, 같은 문단을 몇 시간째 바라보았다. 돌아가 있는 시곗바늘과 변하지 않는 페이지수의 괴리가 자기혐오를 일으켰다. 한 챕터를 진흙탕에 빠진 트럭을 밀듯이 지저분하게 끝내고 나서도 머리에 남는 것은 없었다. 더 우울하고 더 불안했다. 이 시기의 나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기 위해 게임을 하거나 낮잠을 잤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하루동안 한 게 없다는 생각에 불안감과 자괴감이 심화되어 공부가 더 안되고는 했다. 특히 시험날에는 다른 사람들의 촉박한 펜소리를 들으며, 나 혼자 다른 공간에 있는 것 마냥 답안지를 멍하니 바라만 보다가 내버리고 도망치듯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무리에서 소외된다는 감각이 인간에게 그렇게까지 어려움을 주는지 몰랐다. 친구들과 인사를 하는 것도 무서웠고, 교수님이 출석을 할 때 얼굴을 기억하는 것조차 거부감이 들었다. 학교를 가는 것이 힘들어 일주일에 등교일이 최소가 되도록 시간표를 짜고서는 출석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등교를 하고서는 학식까지 먹고서는 그제야 출석하는 게 두려워 도망치듯 하교하기도 했다. 일주일 내내 학교를 안 가기도 했다. 출석을 하더라도 수업 중간에 도망 나오기 일쑤였다. 그럴수록 다음 출석 때 교수님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고는 했다. 출석일수가 F학점을 받기 직전까지 등교거부를 하려다가 일수를 잘못 계산해 F를 받았고, 다른 학점들과 함께 학사경고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학사경고 통지서가 집에 갈 것을 알았음에도 무력감에 해명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이 문제들이 내 잘못인 줄 알았다. 공부가 안되고 인간관계가 무너진 것은 내 역량부족과 나태함, 회피성향이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우울증에 걸린 뇌는 도파민 반응성이 떨어진다. 이는 행동의 동기가 약해지게 만들어 실행능력을 급감시킨다. 마치 시동이 걸리지 않는 차량과 같다. 지금은 이 사실에 대해 아주 잘 이해하고 있어 스스로에 대한 관용이 있으나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이 시기의 나는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정말 많은 것들을 해보았다. 명상, 운동, 심리상담, 수많은 영상물과 서적들을 보며 정신질환들에 대해 공부해 보기도, 뇌과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명상은 효과가 없었다. 운동은 자세가 교정되고 근육량이 늘기는 했으나 우울감은 나아지지 않았고 식욕을 늘려 살만 찌웠다. 심리상담은 이야기가 똑같은 지점을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만두었다. 정신질환과 뇌과학에 대한 공부는 그래도 도움이 되었다. 과거의 힘듦이 내 잘못이 아님을 알려주었기에. 그러는 동안 정신과를 다닌 지도 2년이 거의 다 되었다. 나는 그렇게 25년도가 되며 4학년을 시작하게 된다.
4학년이 되는 시점의 나는 이제 완치 불가능성에 대한 문을 열어두었다. 이전에는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어쩌면 나는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안고 가는 것이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우울증의 원인을 선천적, 유전적 요인으로 집중하여 보기 시작했다. 나는 힘들어서 우울한 것이 아니다. 우울해서 힘든 것이다. 그럼 왜 우울하지? 이유가 없었다. 원인을 찾아 없앨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저 그렇게 태어났을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는 'natural born unhappy' 일지도 모른다. 이상하게도 나는 좌절하지 않았다. 다만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을 뿐이다. 그와 함께 나는 작지만 분명한 안도감을 느꼈다. 마치 발표를 무사히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온 것만 같았다. 그제야 나는 스스로에 대한 관용의 태도를 그제야 갖게 되었다.
원인을 나에게서 떼어내자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지만, 동시에 바꿀 수 없다는 감각이 따라왔다. 나는 어떤 말로는 정신적 장애인일지도 모른다. 티가 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의 배려조차 받을 수 없는 장애를 갖고 있다면, 나라도 스스로를 배려해야 한다. 하지만 그를 따라오는 질문은 항상 '언제까지 그래야 하지?'이었다. 지금과 같은 삶을 계속 유지한다면 변변치 못하게 될 것 같았기에. 평생 나를 요양하며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과연 삶인가 관리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없다. 다만 나는 그 물음을 안고 4학년을 시작했다. 그저 흥미로 신청했던 철학개론 교양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