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진단받기가 제일 쉬웠어요

우울증은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by 선지국호로록

내 우울은 어린 시절부터 나와 함께했지만, 명시적으로 '너 우울한 사람이다.'라고 결정된 것은 2023년 4월부터이다. 그때의 이야기를 좀 더 풀어보려 한다.


3월 초, 복학 후 자취에 대한 만족과 부푼 꿈, 그리고 새 학기에 대한 긴장과 불안이 공존했다. 수업을 들으며 코로나 때문에 일면식도 없던 복학생들을 하나 둘 만나게 되었다. 공대 남학생들이 처음 만나 대화하는 공통된 주제는 학과 수업과 군대 얘기 따위였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수업은 어려웠지만 따라가려고 노력했고, 군대 얘기를 나누며 가까워지려 했다. 그러나 나는 그다지 대중적인 것에 관심이 없었고 학교 수업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기 시작하며 친구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복학생들이 모인 큰 톡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중 외향적이던 친구가 자기와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모아 톡방을 개설한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 나는 없었다. 그 무렵 나는 대인관계 불안이 상당히 치솟아 있었다. 왜 나는 옷을 못 입고, 왜 공부를 못 하고, 왜 술도 못 마시고 말도 잘 못할까 같은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름 친한 친구들조차 나를 그곳에 초대하지 않았다는 것이 퍽 충격이었나 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초봄인데도 침대에서 땀을 흘리며 제발 잠들기를 바라고 있었다. 몇 시간이고 누워있다 새벽에 나가 고요한 동네를 서성인 적도 있다. 이때까지가 4월 초였다.

나는 이때 내가 불안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막연히 괴롭다고 느꼈다. 드는 생각은 자연히 '왜 이렇게 괴롭지?'이었다. 이는 '사람 만나는 게 왜 이렇게 괴롭지?'와 '수업 듣는 게 왜 이렇게 괴롭지?'를 중심으로 갈라지는 괴로움들이었다. 곧이어 나는 남들도 나처럼 괴로워한다면 세상이 이렇게 멀쩡히 굴러갈 리가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나는 큰 고민 없이 내가 정상이 아님을 고려하게 되었다. 신체적 문제는 아니니 정신적 문제일 것이고, 정신적 문제 중 누구나 떠올릴 만한 대표적인 것은 '우울증'. 나는 우울증 자가진단을 검색했고, 나오는 검색결과 중 하나를 들어갔다. '매우 그렇다'부터 '전혀 그렇지 않다'까지의 문항으로 나뉜 설문지를 작성했다. '이 정도면 정상 아닌가?'라는 생각도 순간 들었으나 결과는 '중증 우울증세'였다. '병원에 방문하는 것을 권장합니다.'라고 적힌 결과를 보고 절망했을까? 아니, 나는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았다. 순간 내가 겪은 대인관계 어려움, 학업부진과 자기혐오가 우울증 탓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잡았다는 약간의 기쁨과 함께 문제의 해결방법을 찾아 인터넷을 뒤졌다.

다음날 아침, 전날 밤에 카카오맵의 리뷰를 읽어가며 선정한 신림역 근처 한 정신과의 오픈만을 기다렸다. 9시가 되자마자 전화를 걸었고 친절하면서도 사무적인 목소리의 간호사가 받았다. 차분하고 부드럽지만 기계적이었다. 초진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증상이 무엇이느냐는 질문에는 약간 머뭇거리며 우울증 같다고 말했다. 진료대기가 많아 2주 후 초진이 가능하다고 했고 나는 알겠다고 했다. 날짜와 이름, 신분증을 가져와 한다는 설명이 끝나자 좀 멍하고 가슴이 답답했다.

나는 진료 전 2주가량을 정말이지 딱 이전만큼 괴롭게 보냈다. 같이 있지만 나에게의 흥미가 없는 동기들과 전혀 이해가 안 되는 수업들. 다만 달라진 것은 괴로움의 탓을 할 우울증이라는 대상의 존재이다.


정신질환의 힘든 점은 기다릴 일이 많다는 것 같다. 서울의 괜찮은 정신과는 대부분 초진은 2주 대기가 기본인 느낌이다. 이는 생각보다 인내라는 노력을 많이 요구하는데, 이쪽 환자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어찌 되었든 시간은 갔고 나는 생애 처음 정신과를 가게 된다. 대기실은 사람이 한 너머 한 사람 정도로 적당히 있었다. 평범해 보였다, 대부분은. 카운터에서 신분확인과 초진서류 작성을 마치고 얼마간 기다리자 들어가라고 안내를 받았다. 들어가자 나이에 비해 아이 같은 웃음을 지으시는 선생님이 계셨다. 웃으며 반겨주시는 모습이 내 문제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되게 할 것만 같았다. 의사 선생님은 밝은 얼굴로 어떤 것 때문에 오셨냐 물었다. 나는 여러 가지를 말했다. 밤에 잠을 잘 못 자는 날이 있고, 무기력하며, 괴롭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말하는 우울증 같다는 문장은 처음보다 정말 약간만큼 내뱉기 쉬웠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초진은 우선 심리검사를 몇 가지 받아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이미 찾아본 내용이라 알겠다고 하였고 이어 카운터 옆의 분리된 방에서 심리검사의 빈칸을 채우거나, 동그라미를 체크하거나 했다.

심리검사지를 다 채울 때쯤 간호사가 들어와서 완성된 검사지를 가져갔다. 대기실에 다시 앉은 지 좀 시간이 지나 내 이름을 불렀다. 다시 만난 의사 선생님께서는 우울증세가 있던 것이 단순히 최근만은 아닐 것이라 추측하셨다. 나는 지난날들의 몇몇 에피소드가 떠올라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약을 처방해 줄 것이며, 최저 용량부터 효과를 보는데 자신의 생각에는 조금 빠르게 일주일 간격으로 2단계까지는 늘려보자고 하셨고 나는 그저 빨리 낫고 싶다는 생각에 동의했다. 약효는 2주 정도 걸려야 나온다고 하셨다. 이것 또한 이미 찾아본 내용이라 2주간 더 괴로워야 한다는 사실에 좌절하진 않았다. 카운터에서 수납하며 약을 받고 나왔다. 받은 약은 정기적으로 복용하는 약과 불안할 때 먹는 필요시 약, 두 가지였다.

집에 가서 약을 먹으며 나아질 것만 남았다는 생각을 했다. 공부가 안 되는 것도, 친구들과 지내는 것이 불편한 것도, 남의 말과 행동에 예민한 것도 괴로운 일상도 모두 나아질 것이라고. 괜찮은 일상을 회복해 낸 나를 상상하며.


약효를 처음 보기 시작한 것은 2주가량 이후였다. 이때는 약효가 확 느껴져서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산다니 정말 부럽다' 거나, '이 정도 컨디션으로 살 수 있다면 살만 할 것 같아' 같은 생각을 했다.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정말 컨디션이 가시적으로 나아졌던 순간이었다. 비극적 이게도 그다음 주 자가기록을 읽어보면 '약을 처음 먹을 때보다 우울감이 약간 있는 것 같음', '무기력감', '증상이 갈수록 악화되는 것 같음' 같은 내용이 나타난다. 약효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내게 주어진 환경이 지속적으로 불안과 우울의 트리거가 되었고 내게 맞는 약을 찾기까지의 여정에서 시행착오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약을 두세 번 정도 바꿨고, 한 약으로 정착하기까지 4개월 정도가 소요됐다. 그동안 9월, 2학기가 시작되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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