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과 군대 전역 전후
누군가는 학생 시절이 아무것도 모르고 행복했다며 돌아가고 싶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런 생각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내 경험과는 거리가 있다.
중학교를 졸업하며 나는 근처의 꽤 괜찮은 일반고 남고에 진학했다. 남고에 적응하는 것은 어려웠다. 남학생들을 모아두니 더 무신경하고 충동적인 행동이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분위기였다. 예민한 성향의 나로는 적응이 쉽지 않음이 당연했다.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등교하는 것이 스트레스였으나 이유가 바뀌었다. 선생님께 혼날까 봐 보다는 주변 아이들로부터 받는 심리적 고통이 괴로웠다.
문제는 내 예민한 성향과 부족한 사회성이었다. 수업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시끄럽게 구는 아이들을 견디기 힘들었고, 몇몇 짓궂은 아이들은 직접적으로 공부를 방해하기도 했다. 큰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고 단지 심심해서 그런다는 것은 알았지만 방해받을 때마다 내 성적이 떨어져 부당한 피해를 준다고 생각했다. 조별과제를 할 때 도움이 되지 않는 친구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친한 친구들은 꽤 있었지만 즐겁지는 않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고립되는 것을 두려워했던 나는 타이밍이 안 맞아 밥을 같이 먹을 친구가 없으면 점심을 굶기도 했고 타인의 한 마디에 상처를 받고 홀로 곱씹으며 힘들어했다. 그리고는 공부에 지장을 받았다는 생각을 하며 또다시 괴로워했다.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내가 잘하는 것은 공부뿐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사회적 능력이나 다른 자산은 거의 없다고 느꼈고, 따라서 나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공부라고 여겼다. 타인으로부터 가벼운 조롱, 무시, 방해를 받을 때마다, 나는 그 대우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성적으로 입증해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 결과 공부는 불안의 근원이자 불안을 조절하는 수단이 되었다.
다행인 것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 불안의 강도는 원동력으로 이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미래의 불확실성과 주변의 평가, 나 자신의 가치증명에 대한 욕구를 원동력 삼아 공부를 했다. 운과 머리가 좋았고 신뢰할 수 있는 선생님을 만난 덕택에 서울대학교의 공과대학에 합격했다.
누군가는 서울대를 붙기만 한다면 인생이 피어 고민거리가 없을 듯이 말한다. 하지만 서울대생이 되어 행복한 나는 보름까지 일뿐이었다. 나는 20학번으로 입학하였다. 코로나와 함께. 집에만 박혀 온라인강의를 듣는 생활은 공부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대학 공부는 고등학교와 달리, 공부 시간의 총량이 성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나는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현실도피 수단으로 나는 소설을 많이 읽었다. 스스로가 우울하다는 생각은, 소설을 덮고 난 뒤 찾아오는 공허함을 반복해서 경험하며 처음으로 떠올랐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 줄 알았다. 이 순간 문득 깨달았다, 내가 남들과 달리 예민하고 불안해하며 우울해한다는 것을.
공부를 지금 상태로 더 할 수는 없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군대를 가기로 했고, 공군 행정병을 가기 위해 자격증과 봉사, 헌혈을 해가며 준비했다. 21년도 4월에 입대를 했다. 훈련소에서는 참 많이 몰래 울었다. 힘들었지만 행정병으로 자대를 갔고 잘 적응했다. 주변 사람들이 좋았고 친한 사람이 많이 생겼다. 공부를 안 해도 된다는 마음으로 꽤 여유롭게 지냈다. 억압받는 환경이 큰 스트레스였지만 꽤나 잘 지냈다고 생각이 든다. 우울감이나 불안감이 크게 체감되는 순간은 없었다.
그때까지는 괜찮았다. 전역 후 2개월까지는 말이다.
23년도 1월 전역 후 친구와 일본여행도 다녀오고, 다음 달에 그동안 모은 과외비와 군적금을 합쳐 학교 근처 원룸을 잡았다. 3월에 개강을 하며 새로운 친구들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나는 군대에서도 잘 지냈으니 사람대하는 것이 익숙해진 만큼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표면적인 대학친구 관계가 잘 맞지 않았다. 정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기가 두려웠다. 학교 공부도 1학년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은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다. 그렇게 3월 어느 날 밤부터 잠이 오지 않는 날이 며칠 이상 지속되었다. 우울증이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자가진단 체크리스트를 해보았고 병원 진단을 권장받았다. 그렇게 나는 4월에 병원에 진료를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