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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준 Jul 15. 2023

우정이란 무엇인가?

끼리끼리 논다고 다 우정은 아니다.

 영어 속담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Birds of a feather flock together."(같은 깃털의 새들이 서로 모인다) 고사성어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유유상종(類類相從)" 속된 말로는 이런 말도 있다. "끼리끼리 논다."



끼리끼리 논다고 다 친구는 아니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처럼, 동질적인 것들은 떼지어 모여다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등산로 입구를 보라. 비슷한 등산복을 입은 중년들이 우르르 모여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을 것이다. 대학가 술집을 보라. 비슷한 느낌으로 꽃단장한 남녀가 우르르 모여 세상에서 가장 느끼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떼지어 모여다니다 보면, 그들 간에는 특정한 감정이 싹틀 가능성이 열리는 순간이 있다. 그 감정의 종류는 다양하다. 유대감, 소속감, 사랑, 우정, 분노, 질투, 시샘 등등. 그리고 이 감정은 대개 그들을 단지 떼지어 다니는 무리에서, 새로운 관계의 국면으로 이끌곤 한다. 예컨대 나도 학창시절 떼지어 다니던 아이들과 밥을 퍼먹고 뛰어놀기를 반복한 결과 그들과 친구가 되었고, 대학가 근처에서 느끼하게 서로를 쳐다본 결과 그 상대방의 애인이 되었다. 이처럼 떼지어 다니던 이와 새로운 관계의 국면이 시작되는 것을 자주 경험하는 탓인지, 끼리끼리 노는 이들이 연애나 우정같은 긴밀한 관계로 이어져 있으리라 속단하기도 쉽다.


  그러나, 새삼스럽지만, 끼리끼리 논다고 다 친구는 아니다. 가령 이해관계로 얽힌 계약관계, 직장에서의 불가피한 교류, 계급에 의한 상하관계 소위 '사회생활'을 보라. 그들의 관계 바깥에서, 그들을 얼핏 보면 끼리끼리 놀고 있다. 대기업에 출근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복장과 초췌한 얼굴로 출근하며 끼리끼리 논다. 군대의 군인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복장과 그슬린 피부를 뽐내며 끼리끼리 논다. 그러나 신입사원과 기업 회장이 친구가 아니듯, 이등병과 병장과 중대장이 친구가 아니듯, 끼리끼리 논다고 다 친구는 아니다.


친구라고 다 우정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끼리끼리 놀다 보면 친구가 되기도 한다. 게임 친구, 술 친구, 데이트 친구, 디저트 친구, FWB(Friend With Benefit; 잠자리를 가지지만 친구관계를 유지하는 관계) 등등. 이런 친구들도 가끔은 괜찮은 친구가 되기도 한다. 심심하면 게임 친구를 불러내서 게임을 하면 재미있다. 술을 퍼마시면 건강에는 다소 해로울지 몰라도 즐겁다. 친구와 데이트를 하거나 잠자리만 갖는다면, 애인에게 하는 것만큼의 감정적인 헌신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친구 관계들은 실로 우정을 나누는 친구라고 보기는 어렵다. 술을 끊으면 술 친구는 사라질 것이고, 게임을 그만두면 게임 친구도 사라질 것이다. 어느 한 쪽에 애인이 생겨버린다면 데이트 친구나 FWB도 불가할 것이다. 정치학자 김영민에 의하면, "고귀해지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 그와 같은 지향을 가진 타인을 보며 경탄하는 데서 우정이 성립한다." 다시 말해 "덕을 사랑할 우정이 성립한다." 그렇다면 우정이 끝나는 순간도, 덕을 사랑하지 않을 때일 것이다. 아무래도 덕을 사랑하기란 쉽지 않다. 우정의 성립 조건이 이토록 지난하기에, 김영민은 한국 사회에서 더이상 우정은 성립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우려한다.


  이렇듯 우정을 존립시키는 일이 겉보기만큼 만만한 게 아니라면, 실로 "끼리끼리 논다"며 그들 간에 우정이 싹트고 있으리라 억측하는 것은 얼마나 무용한가. 끼리끼리 논다고 다 친구가 아니며, 친구라고 다 우정이 아니다. 끼리끼리 노는 이들 사이에서도 우정 대신 경멸이 싹트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며, 끼리끼리 놀지 않아도 우정이 싹트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의 성품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아마도 우정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리라. 어떤 사람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가며 말한다. "저 사람은 친구가 맛이 가 있으니, 저 사람도 맛이 간 게 분명하겠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음과 같이 되묻자. 친구란 무엇인가. 우정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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