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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준 Aug 01. 2023

사랑이란 무엇인가?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일은

쉽지만 어려운 말, 사랑


 처음 어떤 언어를 배운다면 '안녕하세요' 다음으로 배우는 언어는 아마도 사랑한다는 말이리라. 영어로는 "I love you" 독일어로는 "Ich liebe dich" 라틴어로는 "te amo" 일본어로는 "愛してる" 중국어로는 "我爱你" 스와힐리어로는 "Ninakupenda". 언어를 처음 배우는 입장에서 과연 사랑한다는 말을 모국어 화자에게 할 일이 있긴 할까. 길거리를 배회하다 외국인이 나를 붙잡고 느닷없이  "사랑합니다" 말하면 당황스러울 것 같다. 사랑한다는 말은 거의 처음 배우는 말이지만, 그 말을 진정성 있게 구사하기 위해서는 문자와 발음을 외우는 것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 가운데에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물어보는 일도 포함되겠다. 토할 것 같이 느끼한 표정으로 '널 사랑해' 하고 말하는 애인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 물어보라. 아마 난처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기 시작할 것이다. 질문을 받은 이상, 사랑을 정의하려 들든 정의하기를 포기하든 난감한 결론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랑을 너무 범박하게 정의하려 들었다가는 오해를 살 것이다. "사랑이란... 서로 위하는 마음이야." "뭐? 엊그제 회식 자리에서 건배사로 '위하여' 했잖아! 당신 사장님과 사랑하는 사이야?" 매섭게 쏘아붙이는 애인으로부터 도망쳐 사랑을 정의하길 포기해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는다. "모르겠어..""그럼 당신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그동안 나한테 사랑한다고 한 거야? 너무해!"


사랑의 필수 조건이란?


 연애에서의 사랑만이 사랑은 아니다. 취미, 음식, 행동, 선생, 친구, 회사 등이 모두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 모든 맥락에서 사랑의 의미는 단일하지는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애사심 충만한 직원이 회사에 느끼는 감정이 육욕을 동반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그런 점에서 애사심愛社心의 애愛는 연애戀愛의 애愛와 다르다. 한편 연애 안에서도 사랑의 의미는 각기 다를 때가 있다. 이른바 플라토닉 러브를 지향하는 이와, 격정적이고 불같은 에로스를 지향하는 이가 말하는 '연애'의 의미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 실상이 이렇기에 "넌 날 사랑하지 않아" 혹은 "너는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어" 하는 말은 오만하고 시건방진 주장일 가능성이 높다. 발화자와 청자 사이에 공유되는 언어 '사랑'의 의미조차 제대로 합의되지 않았는데, 그 사랑에 대해 단정적인 가치평가를 해버리는 것이니까.


 "당신을 사랑해" "난 낚시를 사랑해" "냉면을 사랑해" "회사를 사랑해" "선생님 사랑합니다"에서 각각 사랑의 의미는 다르다. 이토록 사랑의 의미가 다양하여 하나로 합의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랑'은 사실상 유명무실할 뿐인가? 내 생각에, 그렇지는 않다. 사랑의 대상이 애인이든 취미든 음식이든 직장이든 선생이든, 그 전체를 관통하는, 공유되는 정신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몰입이다. 몰입만으로 세상 모든 사랑(들)을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몰입 없이는 어떤 사랑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다시 말해 사랑의 필수 조건으로 몰입이 있다. 당신에게 몰입하기에 당신을 사랑한다. 낚시에 몰입하기에 낚시를 사랑한다. 미각에 몰입하기에 냉면을 사랑한다. 직장에 몰입하기에 회사를 사랑한다. 배움에 몰입하기에 선생을 사랑한다. 반대로 그 대상에게 몰입하지 않는다면, 사랑이라 부를만한 깊은 정서 또한 생기지 않을 것만 같다. 사랑의 필수 조건 가운데 하나가 바로 몰입이라면, '어떻게 잘 사랑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어떻게 잘 몰입할 것인가?'의 질문과 공명한다.


몰입이란 무엇인가


 몰입이란 무엇인가. 몰입은 사랑에 비해 원초적이고 분명하며 보편적인 정신이다. "나는 사랑을 잘 몰라요" 하는 말은 들어본 적 있어도 "몰입이 뭔가요" 하는 말은 들어본 적 없다. 거의 모든 사람이 아주 어릴 적부터 몰입을 경험하기 때문이리라. 자아를 잊고 뭔가에 심취해,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가버리는 체험을 하는 까닭이리라.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몰입의 체험을 할 수는 없겠지만, 누구나 한 번쯤 몰입의 체험을 하게 된다. 상대성 이론의 주창자로 널리 알려진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을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남자가 예쁜 여자와 1시간을 함께 있으면 1분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뜨거운 난로 위에 1분 동안 앉아 있으면 1시간보다도 길게 느껴질 것이다. 그게 상대성이다.” 남자가 예쁜 여자와 1시간을 함께 있으면 1분처럼 느껴지는 체험, 여자가 잘생긴 남자와 1시간을 함께 있으면 1분처럼 느껴지는 체험, 바로 그것이 몰입이다.


 그러므로 몰입을 잘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노력에만 달려있지는 않다. 연애 대상이 예쁘고 잘생겨야 연애에 몰입할 수 있는 법. 1시간을 1분처럼 느낄 수 있는 법. 사람들은 대개 몰입하기 쉬운 대상에는 몰입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당신이 예쁘고 잘생겼다면 애인이 별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당신에게 몰입할 것이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애인이 예쁘고 잘생기지 않아도 몰입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마찬가지로 몰입하기 쉬운 것에만 몰입하는 일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허여되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는 법. 몰입하기 어려운 대상에도 몰입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주로 공부, 재미없는 영화, 잔소리, 헛소리, 충언(忠言) 등이 그 대상이다. 


몰입이 어려운 당신에게


  몰입하기에 영 어려운 대상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정신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이봐요 선생님, 정신의 집중력이라뇨, 못생긴 얼굴이라도 예쁘게 볼 수 있는 환각제라도 처방해 주시죠, 재미 없는 공부가 재미 있어지는 약이라도 처방해 주세요, 하고 떼를 써도 어쩔 수 없다. 그런 환각 작용을 불러일으키는 약은 세상에 없다. 있다면 나에게도 알려다오, 제발. 


 정신이 집중을 잘 하려면 일단 살아 있어야 한다. 시체는 집중할 수 없다. 병에 걸리지 않도록 체온을 잘 유지하고 아무거나 줏어먹지 않도록 하자. 생존에 성공했다면, 잘 먹고 잘 자야 한다. 너무 배고픈 상태로는 몰입할 수 없다. 너무 피곤하거나 졸린 채로는 몰입할 수 없다. 배고프고 졸린 나머지 한껏 예민해진 상태로는 몰입할 수가 없다. 


 이런 뻔한 조언들은 집어 치우라고?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해 달라고? 주제넘는 조언을 딱 한마디 하라고 한다면, '잘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권한다. 잔소리에 몰입하고 싶은가? 잘 듣기 위해 노력하라. 공부에 몰입하고 싶은가? 공부를 잘 하기 위해 노력하라. 일에 몰입하고 싶은가? 일을 잘 하기 위해 노력하라. 못생긴 애인에게 몰입하고 싶은가? 애인을 잘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라. 뭔가를 잘 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는, 그것을 억지로 하는 이와는 다르다. 공부를 억지로 해봤자 몰입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뭔가를 잘 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는, 그것을 습관적으로 하는 이와도 다르다. 밤낮으로 세수와 양치를 하는 일을 두고 세수와 양치에 몰입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뭔가를 잘 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는, 그것을 못 하기를 두려워하는 이와도 다르다. 내가 한때 심취했던 운동 파쿠르 훈련자들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격언이 있다. "넘어질 것이 두려우면, 그 두려움 때문에 넘어진다." 


 뭔가를 '잘 하기'를 희망하는 이, 즉 대상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고양과 상승/건설/ 발전/진보 등을 희망하는 이는 비교적 그 대상에 몰입하기 쉽다. 강제에 의해서/ 습관에 의해/ 도태로 인한 두려움에 의해 대상과의 상호작용을 이어가는 이들과는 다른 마음 상태에 놓이기 때문이다. 대상에 잘 몰입할 수 있게 되면, 그만큼 사랑하게 될 가능성도 높아지겠지. 대상을 더 잘 사랑하게 되면, 토할 것 같이 느끼한 표정으로 사랑을 입에 담는 빈도가 줄어들겠지. 더 잘 사랑하게 되면, 사랑한다는 말에 '사랑이란 무엇인가?' 되물어서 상대를 난처하게 만들지 않게 되겠지. 사랑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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