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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이 Jun 18. 2023

행복의 뿌리

남자친구랑 다투고 어찌저찌 화해한 다음날이었다. 밤새 제대로 잠을  이루고 새벽부터 깨버렸다. 가만히 있기 불안해서 이러저리 방황했지만 딱히  데는 없었다. 그래서 패스트푸드점에 다녀왔다. 아침메뉴를 판매하는 곳이었는데 욕심을 내서 2인분을 사와 욱여넣듯이  먹어치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배달 어플을 켜서 3인분 가량을 주문하고 구역질이  때까지 먹고  먹었다.  쉬기가 힘들정도였고 포만감을 넘어서 불쾌감이 밀려왔다. 감정을 알아채고 나서는 기분이 걷잡을  없이 바닥으로 가라앉고 침체됐다. 화를 먹을걸로 풀고있던거다. 한껏 짜증을 내며 베어무는 햄버거는  주변에 잔뜩 묻거나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는데 그걸 지켜보며  화가 났다. 앞뒤 맞지도 않고 뜬금없지만 죽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지나친 생각이었다. 떠올려보니 먹는 사이에 잠시 잠이 들었고  먹는 시간을 놓쳐버린거다. 급하게 약을 털어먹고 압박감이 통증으로 느껴질만큼 부른 배를 깔고 누웠다. 토할까. 소화제를 먹어볼까.  조차 귀찮다.

이미 화해도 했고 대화를 통해 서로 이해도 했기에 앙금이 남아있는건 아니었다. 못다 한 말이 있기라도 한가. 그것도 아니다. 불안하고 화가나는데 이유가 뭐였을까. 그냥 이렇게 다투다가 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이대로 헤어져도 상대방은 잘만 살겠지만 나는? 제대로 한사람 몫도 못하고 여기저기 망가진 채로 어디가서 뭘 하면서 멀쩡하게 살 수 있을까. 갑자기 마음이 변해서 나를 버리면 어쩌지. 상대방 기분이나 결정에 내 인생이 걸려있는게 과연 정상인걸까. 싸우는 동안 스쳐지나갔던 온갖 생각들이 다시금 떠오른다. 혼자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이었다. 불안이 커지니까 화가 되는구나.

아무리 병이 있다지만 이렇게까지 쉽게 불안해지는건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이건 병 때문일까 내가 망가져서일까. 이정도는 망상이 아닐까. 내 뇌는 불안하기 위해 모든 자원을 아끼지 않는 듯 이상한데서만 성실했다. 마치 불안에 중독된 것만 같다. 자꾸만 내가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불안감을 더 증폭시킨다. 불안이 불안을 낳아 자가증식한다. 만약 병 때문이 아니라면 나한테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나에게 행복이랄건 별 게 없다. 소비는 재밌어하지만 물건에 쉽게 실증을 내서 소유욕은 별로 없다. 돈을 안쓰려면 전혀 쓰지 않고도 꽤 지낼 수 있다. 에너지 넘치는 타입도 아니라 운동이나 여행같은 야외활동에 큰 재미를 느끼지도 않는다. 갖고싶거나 하고싶은게 종종 생기기도 하지만 없어도 상관없는 정도다. 대신 타인을 기쁘게 하고 되돌아오는 애정에서 행복을 느낀다. 결국은 사람이라는거다. 그 중 가까운 사람에게서 안정감을 느끼는데 너무 소수다보니 안전하지가 않다.

이건 행복의 기반을 사람에게 둬서 생기는 부작용이구나. 그 사람과 사이가 좋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듯 마음이 풍족하지만 잠시 틀어졌을 뿐인데 감정이 모두 부정적으로 바뀌어버린다. 사람은 변덕스럽다. 나조차 통제 불가능인데 타인에게는 바랄 수 없다. 이렇듯 사람을 내 행복의 뿌리로 두는건 위험한게 아닐까. 게다가 잔뿌리가 거의 없는 한 줄기짜리 뿌리는 더욱 위태롭다. 이게 잘못된걸까. 건강한 상태는 아니니까 이렇듯 무너지는 거겠지.

지독한 애정결핍을 가진 내가 집착하는건 사람이다. 사람은 홀로 살 수 없고 타인을 통해 의미를 찾는게 잘못된건 아니다. 다만 내 것이어야할 감정의 손잡이를 타인에게 맡기는건 건강하지 못하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치명타를 받지 않으려면 내 행복의 뿌리는 내 안에 있어야한다.

왜 내 안에는 없을까. 오랜 시간을 나자신을 미워하느라 보냈는데 자기애나 자존감 같은게 있을리 없다.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생각한다는 말을 본적이 있다. 감정에서 도망가는 한 형태를 설명한 글이었다. 괴로우니까 생각으로 눈을 돌리는거다. 옳고그름까지는 모르겠고 현상을 설명한 부분만 기억에 남아있다. 책을 꺼내들었다. 자존감수업이라는 베스트셀러다. 불안을 잠재워줄 답을 얻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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