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랑 운동 삼아 아파트를 걷고 있는데 노란 어미 고양이와 새끼들이 풀밭에서 한가로이 뒹굴거리고 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 어미의 보호를 받으며 자기들만의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새끼 고양이들을 보니 귀여워서 자꾸 시선이 간다.
"이 아파트 사람들이 고양이를 잘 보살펴 주나 봐, 고양이들이 참 편해 보여"
"맞아. 우리 아파트에 캣맘이 있어 저녁마다 고양이들을 잘 챙기더라고"
친구와 이런저런 고양이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다 캣맘이 화제에 오르자 고양이를 좋아하는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시골에 살던 시절 동네 고양이들 밥을 늘 챙기셨던 엄마가 바로 원조 캣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가면 엄마는 꼭 생선 가게에 들렀다. 생선 몇 마리를 산 후 대가리와 꼬리, 내장 등을 가득 얻어 오셨는데 집에 오면 그것들을 커다란 솥에 넣고 먹다 남은 밥이랑 같이 푹푹 삶으셨다. 그건 사료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의 고양이들 밥이었다. 솥채 마당 한 켠에 내놓으면 마당에 늘 상주하는 몇 마리 고양이들은 물론이고 우리 집 소속이 아닌 길고양이들도 슬며시 와서 먹고 가곤 했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부터 우리 집에는 고양이가 없었던 적이 없었다. 바깥 고양이들의 짧은 수명 탓인지 고양이의 무늬와 크기는 계속 바뀌었지만 대를 이어서 고양이들은 마당을 지켰고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쥐 잡이 고양이가 필요해서 키운 거야"
엄마는 마당에 터를 잡은 고양이들의 존재 이유를 쥐잡이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먹을 것이 풍부한 고양이들이 쥐를 잡을 리가 있나. 엄마는 그냥 고양이가 좋아서 밥을 주고 마당에서 넉넉하게 품으신 거다. 고양이들 역시 엄마를 좋아했다. 엄마가 밭에 가면 졸랑졸랑 따라가고, 마당에서 채소를 다듬을 때면 엄마 등에 올라타서 가만히 앉아 있기도 했다. 마당에서 고양이를 품에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도 수시로 목격되는 장면 중 하나였다.
"새끼 고양이 한 마리 키우면 참 예쁘고 좋을 텐데. 아니다. 새끼 때나 이쁘지 그걸 어떻게 키우겠노."
작년 말부터인가 엄마가 고양이 키우면 좋겠다는 말을 슬그머니 흘리셨다. 그러고는 아니라고, 못 키울 거라고 곧바로 흘린 말을 주워 담으시는 걸 반복했다. 처음에는 엄마가 많이 외로우신가보다 하고 그냥 넘겼다. 엄마가 키우고 싶다고 했지만 결국 우리집에서 키워야 할테고, 나 또한 고양이를 18년 동안이나 키웠지만 마지막 고양이가 떠나고 난 뒤는 다시 키울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말을 여러 번 듣다 보면 없던 생각도 다시 하게 되는 걸까. 오랜 고민 끝에 결국 태어난 지 한 달 정도 된 새끼 고양이를 동물 보호소를 통해 입양했다.
고양이가 우리 집에 오고 난 후 엄마는 틈만 나면 우리 집으로 건너오신다. 어떤 날은 아침 일찍 잠 깨자마자 고양이 보고 싶다고 오시기도 한다. 고양이의 재롱을 보는 엄마의 얼굴에는 웃음이 한가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