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우울해 보이던 엄마가 최근 활기를 되찾았다. 얼굴도 밝아지고 목소리에도 힘이 느껴진다. 무슨 좋은 일 있냐고 물으니 요즘 경로당에 다닌단다.
“우리 아파트에도 경로당이 있어?”
엄마와 같은 아파트에 산 지 10년이 넘었지만 경로당 가는 걸 한 번도 못 본 터라 이런 물음이 자연스레 나온다. 그런데 엄마 대답이 의아하다. 예전부터 경로당은 있었지만 갈 수가 없었다고. 아빠가 생전에 못 가게 하셨단다. 10여 년 전 이사 왔을 당시 경로당에서 떡국 떡을 나눠주는 행사가 있었고, 그걸 받으려면 주민등록번호를 적어야 했는데 (신분 노출에 민감한) 신경증 환자인 아빠가 그걸 알고 아예 경로당 출입조차 못 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아빠 때문에 평생 못 해본 게 얼마나 많았을까. 미처 몰랐던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빠가 엄마 행동을 얼마나 제약하고 간섭했는지, 그걸 엄마는 어떻게 견디고 사셨는지 안타까움에 할 말이 없어진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주위 사람들이 엄마에게 하는 말은 모두 같았다. 이제 아빠 그늘에서 벗어났으니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면서 편하게 살라고. 하지만 엄마는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렸고 여전히 아빠 그림자를 지고 사는 듯 보였다. 그런데 경로당이 그 그림자를 말끔히 걷어가고 엄마에게 새로운 빛을 비춰줄 줄이야!
아침 10시가 되면 엄마는 꽃단장을 한다. 말끔하게 씻고 옅은 화장을 한 뒤 화사한 옷으로 차려입는다. 경로당에 출근(?)하는 것이다. 엄마가 나가고 난 뒤 집을 둘러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매일 다른 옷으로 갈아입으시는 터라 소파에 여기저기 널브러진 옷이며 욕실 앞 수건들, 그리고 대충 먹고 제대로 치우지 않은 아침 식사 흔적들... 마치 도둑 든 집처럼 엉망이다. 그걸 보면 살림은 팽개치고 매일 놀러만 다니는 것 같아 짜증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엄마가 마음 붙일 곳을 찾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끔은 엄마가 집을 어질러 놓고 경로당에 출근하는 모습이 예전에 내가 회사 출근할 때 모습과 닮아 있어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거기 가면 그렇게 재밌어?”
참새 방앗간 들르듯 하루도 빼먹지 않고 경로당에 가는 엄마가 신기해 어느 날 물었더니 엄마는 의외의 대답을 한다. 가끔 행사가 있는 날 외에는 가서 점심 먹고 낮잠 자다 오는 게 다라는 것이다. 낮잠은 집에서 자도 되고 밥은 나랑 먹어도 되는데 굳이 경로당을 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다. 중요한 건 ‘말동무’였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비슷한 경험을 한 친구들. 엄마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딸이 주는 용돈이나 손주의 재롱이 아닌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었다. 실제로 경로당에 가고부터 엄마가 하는 말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주로 젊은 시절의 이야기, 그러니까 과거 회상 이야기를 무한 반복하셨다면 요즘 엄마의 이야깃거리는 꽤 새롭다. 경로당에서 들은 소소한 일상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어떨 땐 정보통이 되어 내가 모르는 최신 소식들을 좌르륵 풀어놓기도 한다. 한 번은 엄마와 우리 집에 있는데 아파트 바로 뒤에서 시끄러운 공사 소리가 들렸다. 무슨 공사인지 궁금해하는 내게 엄마는 배수로 공사하는 거라며 경로당에서 들었다고 한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는 그 소식을 다음 날이 되어서야 방송으로 알려준다. 우리 엄마 소식통이 관리사무소보다 빠르다니 놀라웠다. 그 외에도 엄마는 동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소식을 수시로 전달해 준다. 또한 평소 안 하던 정치 이야기까지 하기 시작했는데 이건 경로당 할머니들 영향을 받으신 게 분명하다. 엄마와 난 정치색이 다르니 그 이야기는 안 했으면 싶기도 하다.
엄마가 경로당에 가는 데는 먹는 재미도 빠뜨릴 수 없는 듯하다. 원래 남이 해 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고 하지 않던가. 매일 점심 한 끼를 공짜로 해결하는 즐거움과 더불어 친구들과 둘러앉아 같이 먹는 음식이니 얼마나 꿀맛일지! 도란도란 같이 점심을 먹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경로당 음식을 먹으면서 엄마의 식성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평소 싫어하는 음식, 입에도 못 대던 음식을 먹고 오는가 하면 난생처음 먹은 음식 자랑도 하신다. 처음 먹은 음식이라고 해서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고급 음식을 말하는 건 아니다. 예를 들면 카레 같은 음식이다. 어느 날 엄마가 카레를 먹고 왔다 하길래 그런 음식 못 먹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답이 더 놀랍다.
“꼬들꼬들한 밥을 돼지고기 숭숭 썰어 넣은 카레에 비벼 먹으니 얼마나 맛있던지...”
엄마가 못 먹는다고 한 음식들은 먹기 싫은 게 아니라 먹을 기회가 없었던 음식일지도 모르겠다. 자장면, 라면, 팥빙수, 피자... 모두 집에서 먹자고 하면 싫다 하신 음식들인데 경로당에서는 맛있게 드시는 걸 보면 말이다. 그것도 모르고 엄마가 진짜 싫어하는 줄 알고 우리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경로당에서 나이가 두 번째로 많아 ‘큰 형님’으로 불린다고 한다. 그 덕에 경로당 잡일도 하지 않아도 되고, 식사 준비 같은 일에서도 제외라고 좋아하신다. 그런 엄마를 보며 몸 안 움직이고 경로당에서 먹고 주무시기만 하면 살찐다고 농담을 슬쩍 던져 보기도 한다. 하지만 나로서도 엄마가 ‘큰 형님’ 대접을 받으니 한결 안심이다. 아빠한테서 제대로 된 대접 한 번 못 받고, 아빠 식사 챙기느라 외출도 마음껏 못하는 등 아빠 눈치만 보고 살아오신 엄마다. 이제 여생을 ‘큰 형님’의 모습으로 기죽지 말고 살았으면 싶다.
요즘 보는 엄마의 해맑은 모습이 참 보기 좋다. 경로당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떠드는 모습이 꼭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사춘기 아이 같다. 그럴 때 난 엄마의 엄마가 된 기분이 든다.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