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번 주 토요일에 시간 돼? 우리 소고기 먹으러 가자."
엄마랑 같이 외식한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아빠가 살아계실 때에는 자주 먹으러 갔었는데 돌아가신 후로는 코로나 핑계에 이런저런 다른 핑계까지 덧붙이다 보니 같이 밥 먹으러 간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아이들도 '소고기' 하면서 노래를 부르니 시간 날 때 같이 먹으러 가면 좋겠다 싶었다.
"엄마, 토요일에 시간 되는 거 맞지?"
혹시 다른 일정이 있을까 싶어 재차 확인하는 내게. 엄마는 시간 된다며 같이 먹으러 가자고 하셨다.
토요일 아침, 고깃집에 가기엔 한참 이른 시간에 엄마가 옷을 차려입고 우리 집으로 건너왔다.
"엄마, 오늘 고깃집 예약 12시 30분이야. 아직 시간 많이 남았어."
"오늘 나 절에 가야 되는데."
"응? 뭐라고?"
"나 오늘 오전에 절에 가야 된다고..."
"오! 맙소사."
혹시 잊으실까 봐 재차 확인까지 했는데 엄마는 그새 말을 뒤집고 절에 꼭 가야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고깃집엔 안 가도 괜찮으니 우리 가족만 가라고 했다. 속에서 천불이 올라왔지만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고 다시 물었다.
"그럼 절에 갔다가 집에 몇 시쯤에 돌아올 수 있어?"
엄마는 12시 30분쯤이면 집에 올 수 있을 거라 했다. 평소 엄마의 말에 당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그 말에 믿음이 가진 않았다. 일단 식당 예약한 것부터 취소했다. 굳이 예약이 없어도 넓은 식당에 우리 가족이 먹을 자리쯤은 있을 거라 판단됐다. 12시 30분이든 1시든 엄마가 오시는 대로 바로 나가면 '점심 특선' 시간 안에는 갈 수 있겠다 싶어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1시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감감무소식인 엄마. 다년간의 경험으로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했다. 엄마가 어디쯤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했다. 역시나 전화까지 받지 않으셨다. 한숨이 푹푹 나왔다. 몇 번의 통화 시도로 애간장이 끊어질 만큼 전화벨이 울리자 겨우 전화를 받은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절에서 나왔어. 여긴 버스가 잘 안 와서 집까지 가려면 1시간 반쯤 걸릴 거야."
지금 문 앞까지 왔다 해도 점심 먹기에는 이미 늦은 시간인데, 1시간 반이나 더 걸린다니 아무리 뒤통수를 쳐도 이건 너무하다 싶다. 그래도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어쩌겠나? 고깃집의 점심 특선이 3시까지라 하니 (그 시간이 지나면 가격도 확 올라가고 냉면 후식도 못 먹는다) 그전에는 도착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상한 기분을 참아가며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다행히 엄마는 생각보다 빨리 도착하셨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상황을 끝내실 엄마가 아니다. 엄마는 또 한 번의 뒤통수를 날렸다. 이번에는 좀 더 세게!
"나 절에서 밥 먹고 왔어."
말문이 막혔다. 앞의 상황들 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겨도 고기 구워 먹으러 갈 걸 알면서 밥을 드시고 오는 건 좀 아니지 않은가. 그것도 배부르게 찰밥으로 드셨다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버리니 더 이상 배고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이러다 다음엔 같이 먹을 시도나 해 보겠나 싶었다. 상한 마음을 가지고 고깃집으로 가니 고기맛이 제대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후식 시간. 물냉면과 비빔냉면 중 뭘 드시고 싶냐고 물으니 엄마는 배부르다며 한사코 먹지 않겠다고 했다. 어차피 인당 한 그릇씩 나오는 거 일단 시킨 뒤 조금만이라도 드시라 하니 그럼 비빔냉면으로 할 테니 우리더러 다 먹으라 하신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뒤통수를 치는 우리 엄마! 못 먹겠다고 하던 비빔냉면을 한 그릇 싸악 비운 것이다. 게다가 디저트로 아이스크림까지 한 통 깔끔하게 다 드셨다. 자꾸 뒤통수치는 엄마 때문에 미치겠다. 그래도 마지막은 기분 좋은 뒤통수라서 다행이다.
아무래도 다음에 엄마와 같이 갈 때는 고깃집 말고 냉면집으로 가야겠다. 그리고 미리 예약하지 말고 번개로 가야 할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