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 딸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아기 돼지 삼 형제>다. 아기 돼지 삼 형제가 각자 집을 짓는데 볏짚과 나무로 대충 지은 첫째와 둘째 돼지의 집은 늑대의 입김 한 두 번에 날아가 버리고, 벽돌로 튼튼하게 지은 셋째 돼지의 집은 늑대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튼튼하게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튼튼한 집을 지어야 나중에 화를 안 당한다 정도로 봤던 동화에서 최근 다른 게 보이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고효율의 시대다. 단순히 결과가 좋고 안 좋고를 떠나, 최소한의 비용과 노력으로 최대의 아웃풋을 내는 걸 미덕이라 여기는 시대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의 순서와 절차 하나하나 다 따져가며 FM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흔히 '비효율적이다. 융통성이 없다. 유난이다. 일머리가 없다'와 같은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마치 하루 이틀 만에 집을 다 짓고 빈둥빈둥 놀던 형님 돼지들이 몇 날며칠 동안 집을 짓는 셋째 돼지를 한심하게 바라봤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셋째 돼지가 가졌던 FM적 사고의 진정한 가치는 늑대의 등장과 같은 위기상황 때 빛을 발한다.
인생의 위기는 늘 무섭고 험한 얼굴로 찾아오지 않는다. 대체로 YES/NO 정도의 가벼운 선택지 형태로 우리를 시험한다. '술 한 잔밖에 안 마셨는데, 운전해도 되지 않을까?', '신호가 바뀌지 않았지만, 차가 없으니 그냥 지나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들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빠르게 성공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적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한 분야에서 탑까지 간 사람이라면 인내심과 절제심이 상당할 텐데도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모든 걸 잃는 걸 보면,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며 FM대로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 가를 체감한다.
'한 번쯤은, 한 잔쯤은, 그 정도는 괜찮아'하는 허용기준이 모든 걸 망친다,
성공은 운칠기삼이라고 한다. 좋은 운때를 만나 성공할 수는 있지만,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남들이 보든, 안 보든 상관없이 꾸준히 실천해 나가는 자신만의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현재 내 손에 쥐어진 성공은 곧 흩어져버릴 한 줌의 모래알에 지나지 않는다.
르네상스시대 대표 화가 미켈란젤로의 일화가 떠오른다.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고 있는 미켈란젤로에게 한 친구가 "왜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구석진 곳을 그리 정성스럽게 칠하는가?"하고 물으니, 미켈란젤로가 "남들은 몰라도 내가 알지 않는가"라고 했다고 한다. 그 작품이 바로 미켈란젤로의 대표작 '시스티나 천장화'다. 미켈란젤로가 거장인 이유, 그리고 무려 500년도 더 지난 일이 아직까지 후손들의 입에서 회자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고효율의 시대에서도 바보 같은 FM은 여전히 통한다. 희소해서 힙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