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를 출산하기 전, 산부인과 선생님께서 셋째 출산 계획을 물었다. 만약 셋째 출산 계획이 없다면, 이번에 제왕절개 할 때 같이 피임수술을 하거나, 남편 정관수술을 해야 한다고 일러주셨다.
선생님의 말씀에 피식 웃음이 났다. 결혼 5년 동안 피임은커녕 종일 붙어 지냈어도 자연임신을 해본 적이 없던 난임 부부에게 피임수술 제안은 마치 주소지를 잘 못 찾은 재미난 우편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난임 부부 중에서도 자연임신이 되는 경우도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우리에겐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직접 난임병원에 찾아가지 않는 한 우리 인생에 셋째는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둘째 출산 후 9개월 뒤 우리에게 셋째가 찾아왔다. 아무도 모르게 와서 뱃속에 예쁘게 집을 짓고 혼자서 무럭무럭 커가고 있었다.
셋째의 등장은 아무도 예상치 못 했다. 생리일이 늦어지고 소화가 잘 안 돼 혹시나 해서 한 임신테스트기에서 본 선명한 두 줄, 자연임신으로 찾아온 셋째는 우리 가족에게 당황스러움과 놀람, 즐거움 그리고 기쁨을 함께 줬다. 그렇게 찾아온 우리 집 5호는 깜짝 선물처럼 왔다고 해서 태명이 '깜짝이'가 됐다.
셋째 임신을 확인한 남편의 첫 두 마디는 "엇? 임신인가 봐?!!"와 "내 정자가 살아났나 봐!"였다. 임신 사실에 놀란 나와 달리, 자신의 남성성 회복을 기뻐하는 남편을 보니 어이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귀여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평소 기적을 잘 믿지 않는다. 아니, 기적에 기대하지 않는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기적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런 일들은 아주 소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다 보니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를 기다리면서도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 '때가 되면 온다', '마음을 비우면 온다'는 말이었다. 그 말들이 당시 내게는 지독한 희망고문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기적은 생각보다 자주, 기대보다 꽤 빈번히 일어난다. 셋째를 임신하고 주변 친구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그중 한 친구가 전화가 왔다. 자신도 최근 임신을 했다는 얘기였다. 그 친구는 최근 난임병원에서 자연임신이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던 친구였다. 그런데 시험관 시술 들어가기 전에 한 번만 더 노력해 보자고 한 시도에서 바로 임신이 된 것이다.
둘째를 낳고 간 산후조리원에서 알게 된 엄마도 이와 비슷했다. 시험관 시술을 꽤 오래 했는데도 아이가 생기지 않자 모든 걸 다 내려두고 제주도로 갔는데, 제주살이 한 달 만에 자연임신을 했다는 것이다. 이 얘기들을 들으니 병원에서 말하는 수치들은 그저 임신 가능성만 알려주는 숫자일 뿐, 아이는 삼신할머니가 점지해 준다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임은 병이 아니고, 기적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단지 아기의 발이 작다 보니 오는 속도가 더딜 뿐이다.한 아이의 부모가 되는 경이로운 기적이당신네 가정에게도 곧 찾아오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