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해야만 밥 잘 먹나요?
"5살이면 이제 한글 공부를 시작해야 할 것 같아, 다른 집은 OO학습지 시킨다던데, 우리도 한 번 알아볼까?"
"아무래도 아이들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으니, 학군지로 이사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공부는 유전이야
김이 팍 샜다. 삼 남매를 향한 교육열로 가슴이 활활 끓어오르던 엄마의 열정이 아빠의 말 한마디에 바로 진압돼 버렸다. 남편의 말이 앞길 창창한 아이들의 앞날에 소금을 뿌리는 것 같아 속이 부글부글 끓기도 했지만, '공부도 재능'이라는 그의 말이 딱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이야기처럼 보통 사람은 천재로 태어난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 IQ는 유전이고, 공부는 예체능과 같은 재능의 영역이니 말이다. 일각에서는 공부는 머리가 아닌 엉덩이 힘으로 한다고 하는데, 사실 그 엉덩이 힘 또한 '성실'이라는 재능에서 나온다.
나와 남편은 100~120 사이 보통의 아이큐를 가졌다. 그러니 우리 삼 남매 중 천재가 나올 확률은 극히 드물다. 남편은 수영을 좋아하고, 나는 글 쓰고,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하지만 이 또한 취미생활 수준이라 우리 아이들에게 예체능적 재능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럼 이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는 게 최선일까?
우리도 발견하지 못했던 숨어있는 재능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것저것 다 시켜야 할까? 아니면 다수의 사회 분위기를 따라 우리도 좋은 대학을 목표로 한 달에 몇 백씩 사교육에 돈을 쏟아부어야 할까? 글쎄, 돈도 돈이거니와, 결국 잘~ 돼야 명문대 간판을 노후자금으로 사는 건데... 사실 이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
예체능적 재능도 없고, 그렇다고 서울에 노른자 땅을 줄 만큼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최고의 IQ도 물려주지 못하는 보통의 부모로서, 내가 내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이 무언이지 고민해 봤다.
자기 앞가림만 잘해도 원이 없겠네
성인이 되면, 자기 먹고 살 거 본인이 벌어먹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 우리는 참 쉽게 '본인 앞가림이나 잘하면 좋겠다'라고 말하며, '앞가림'을 별 거 아닌 것처럼 생각하지만, 사실 앞가림만큼 대단한 역량이 어디 있을까 싶다. 양육의 목표점인 '자립'의 다른 말이 결국 앞가림이니 말이다.
난 우리 애들이 '자기 앞가림을 잘하는 어른'으로 크길 바란다. 자기 앞가림을 잘하는 사람들은 비교대상이 남이 아닌, 과거의 나 자신이라 전에 비해 조금씩 나아지는 자기 모습에 성취감을 느끼고, 쉽게 행복감을 느끼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가림을 잘하는 어른으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부도 예체능도, 말하는 스피치도, 글 쓰는 방법도, 심지어 돈 버는 방법까지 사교육 시장이 꽉 잡고 있지만, 앞가림만큼은 가정에서 가르쳐야 한다. 적당한 결핍을 통한 성장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긍정적인 회복탄력성,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센스력과,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 하나가 열린다는 지혜는 모두 부모를 통해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천재는 혼자의 힘으로 0에서 100까지 금방 올라간다. 하지만 둔재는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재능으로는 50까지밖에 올라가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둔재가 100까지 못 올라간다는 뜻은 아니다. 재능으로 메꾸지 못 한 50의 차이는 다른 방식으로 따라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방법이 인맥이 될 수도 있고, 조금 돌아서 가는 방법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전혀 다른 새로운 기회를 잡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앞가림을 잘한다는 건 현실의 벽 앞에 주저앉아 좌절하지 않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계단을 만들어 올라갈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비록 천재에 비해 속도는 더딜지라도, 방향성만 맞다면 보통 사람도 충분히 자신만의 100에 도달할 수 있다.
성실함은 있었지만, 공부 머리가 없던 나는 전문대를 나왔다. 하지만 그 안에서 꽤 높은 학점을 받아 졸업도 전에 대기업 인사팀에 취업을 했다. 학교에는 플래카드가 붙었고, 부모님은 동네잔치를 열었다. 그땐 대기업에 들어가기만 하면 인생이 탄탄대로 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초대졸은 고졸 취급을 받았다. 연봉도 고졸과 동일했고, 하는 일도 대졸의 서브 역할밖에 안 됐다. 승진체계도 달라, 대졸은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임원이 됐지만, 초대졸은 사원 3-사원 2-주임-전임-선임이 끝이었다. 절대 대리가 될 수 없었고, 프로젝트를 담당하지도 못했다. 10년 이상 일해야 대졸 초임연봉과 비슷했다.
현실의 벽 앞에서 다른 길을 택했다. 부모님의 자랑이었던 회사를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봤다. 공무원 내에선 학벌을 묻지 않았다. 서울대를 나온 사람이나, 전문대를 나온 사람이나, 같은 시험을 보고 들어온 우린 다 똑같은 동료였다. 학벌이 아닌, 능력으로 인정받고, 평가받았다. 주변 환경을 바꾸니, 내 모습도 전보다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결혼 후 자산을 늘려나간 것도 '앞가림의 힘'이 컸다. 주위에선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조금씩 받아 신혼집을 마련한다고 하던데, 우린 양가 부모님의 도움 없이 1억으로 시작했다. 남들보다 작게 시작하긴 했지만, 오히려 그 결핍 덕분에 또래 친구들보다 더 빨리 재테크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1억으로 시작한 우리 부부는, 결혼 10년 차가 된 지금 서울 집 4채의 집주인이 됐다.
인생을 길게 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서른 중반 정도 되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고, 성공도 성적순이 아니라는 걸 실감한다. 머리가 좋고, 부모의 재산이 많으면 인생살이가 수월하긴 하겠지만, 결핍 없이 살아온 삶이 좌절에 쉽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 똑똑하고 돈 많은 게 꼭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시련에 대한 내성이 강한 사람들이 끝에 웃는 경우가 많다. 한 번이라도 현실의 벽을 깨 본 사람들은 그 벽이 망치로 때려도 뚫리지 않는 시멘트 벽이 아닌, 발차기 한 방에도 무너지는 가벽인 것을 아니깐 말이다.
이제 보니 아이를 잘 키우는 방법을 찾는 건 아이만 들여다봐서 될 게 아니었다. 그보단 엄마나 아빠의 지난 삶을 유심히 들여다봐야 했다. 스스로 앞가림을 하며 걸어온 지난 발자취를 돌아보며, 그 안에서 아이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유산 같은 지혜를 찾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부모가 실패와 좌절을 많이 겪어봐야, 아이들이 앞으로 겪을 수많은 좌절에 웃으며 든든히 받쳐줄 수 있다. 네 실패는 별 거 아니라는 듯, 엄마의 지난 흑역사를 경쟁하듯 이야기하며 말이다. 별 거 아닌 듯, 툭툭 털어낼 줄 알아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한때는 학력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그 결핍이 육아에 좋은 재료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비록 최고의 IQ는 물려주지 못해도, 보통의 아이큐로 최고의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알려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