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은 애뿐만 아니라, 엄마도 다시 태어나게 한다.
손이 어쩜 이렇게 빠르세요?
매주 월요일마다 듣는 수채화 수업 중에 선생님께서 내 그림을 보더니 손이 빠르다며 깜짝 놀라셨다. 완성까지 한 달도 더 걸리는 작품을 2주 만에 끝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제 채색에 들어가는 수강생도 꽤 있었다. 주변에서 손이 빠르다며 치켜세워주니, 괜히 쑥스럽고 머쓱했다.
사실 난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그리 빠릿빠릿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인 느린 자 중 상 느린 자였다. "제발 좀 빨리빨리 움직여라, 왜 이렇게 행동이 굼뜨니"라는 잔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듣던, 저혈압 엄마의 혈압을 상승시키는 주범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굼벵이도 아이를 하나 둘 낳다 보니, 엉덩이가 가벼워지며 손과 발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일어나서 잠들기 전까지 엄마만 찾는 아이들의 니즈를 채워주며, 5인 가족의 집안 살림까지 책임지다 보니, 내 손과 발은 세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의 역할에 완벽 적응을 하며 자연스럽게 빨라졌다.
그렇게 거북이 아가씨는 아이를 셋 낳더니 날쌔고, 꽤 많은 토끼 엄마가 됐다. 20분 내 세 아이를 씻기기가 가능해졌고, 20분 내로 반찬 2~3개를 뚝딱 만들 수 있게 됐으며, 한 시간 내에 난장판 된 집을 새 집으로 바꾸는 경지에 이르렀다. 또 빨리 움직일수록 내 자유시간이 늘어나니, 우리 애들은 어린이집에 가장 먼저 가는 어린이가 됐다. 과거 나의 거북이 시절을 기억하는 친정 부모님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180도 변할 수 있냐며 볼 때마다 매번 놀라셨다.
A행동을 하며, 다음 해야 할 B행동을 생각하는 건 기본이고,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그 방법을 인터넷이나 유튜브로 찾아보기도 했다. 또 아이가 많다는 게, 아이들의 준비물과 예방접종 일정을 까먹어도 된다는 핑계가 되고 싶지 않아, 매달, 매주, 매일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십여 년 간 한결같았던 MBTI까지 바뀐 걸 보면, 출산은 애뿐만 아니라, 엄마도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내 주변의 미혼인 사람들 중에는 결혼과 출산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기차가 배 위를 지나가는 것 같다는 출산의 고통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출산 후 달라질 자신의 몸매와 탄력 등을 걱정하기도 한다. 또는 아이를 낳으면 줄어들 자신만의 시간이나, 중단될 커리어를 걱정하기도 한다.
출산의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걱정 마세요. 출산은 여러분의 생각과 다르답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사실 그들의 걱정은 사실이 맞다. 자연분만을 하던, 제왕절개를 하던 출산의 고통은 지금껏 자신이 알고 있는 아픔 중 최상급이고, 출산 후에 다이어트를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전과 같은 탄력을 기대하긴 어렵다. 또 시간은 어쩜 이렇게 쏜살같은지, 아이를 한 명씩 낳을 때마다 엄마의 인생은 10km씩 가속도가 붙는다. 밥 하고 설거지한 것밖에 없는데 벌써 한 해가 지났다는 푸념도 심심찮게 들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면서 엄마는 돼 봄직하다. 왜냐하면 엄마가 되면 자신의 최상급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관상의 모습은 전보다 못할지라도, 그 안의 내실만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깊고 단단해진다. 아이를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는 옛말처럼, 나이가 같아도, 아이를 낳아본 사람과 아닌 사람의 대화에는 생각의 깊이와 성숙도의 차이가 느껴지기 마련이다.
나 역시도 엄마가 되기 전보다 후인 지금의 모습이 훨씬 더 마음에 든다. 비록 몸은 전보다 둥그스름해지긴 했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감으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이 행복은 사랑하는 가족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된 자기 효능감과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자존감에서 비롯된 거기도 하다.
김미경 강사가 강의 중에 했던 말이 기억난다. "아침에 여러분 힘으로 일어나는 것 같아? 택도 없다. 여러분 결혼 안 했어봐 마흔두 살 계속 잤을 거야. 12시까지. 여러분 힘으로 일어난 게 아니야. 애들이 코파고 눈파고, '엄마 일어나, 배고파, 엄마 나 양말 뭐 신어?' 이래서 일어난 거야. 그러니깐 여러분 걔네 때문에 잘 사는 줄이나 알고 있어요." (MKTV 김미경 TV, 20분 인생명언 中)
어쩌면 이 시대 최고의 자기 계발은 바로 부모가 되는 것 아닌가 싶다. 좀 더 부지런해지고 싶나요?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그럼 아이를 낳으세요.
당신도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