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고 나니 아들 바보가 되었습니다.
혹시 아들 낳으려고 셋째를 가진 건가요?
딸 둘에 아들 하나가 있다. 아들이 막둥이로 태어난 탓에 나는 종종 주변에 오해를 산다. 혹시 아들을 낳으려고 셋째까지 임신한 거 아니냐는 오해 말이다. 아마 둘째가 아들이었다면 이런 오해는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들이 셋째로 태어난 덕분에(?), 난 졸지에 아들 낳는 데 성공한 엄마가 됐다.
셋째를 낳고 들어간 산후조리원에는 셋째 산모가 나 포함 3명이나 됐다. 하지만 그중 아들이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리원에 있는 동안 축하를 정말 많이 받았다. 원장님은 내게 '성공했다'며 어깨를 두드리셨고, 식사를 챙겨 주시던 이모님은 '장하다'며 반찬을 더 주시기도 했다. 그리고 마사지 실장님은 축하 선물이라며 서비스 마사지를 해주셨다.
요즘은 딸이 대세라고 하는데, 이미 사회적 대세인 딸이 둘이나 있던 우리 집에선 아들이 대세였다. 셋째 임신 소식에 걱정부터 쏟아냈던 시어머니는 셋째가 손자라는 걸 알고, '정말 아들이냐며' 몇 번이나 되묻고는 너무 좋아서 동네 이웃들에게 밥을 사셨다. 그리고 평소 무뚝뚝하던 시아버지는 내게 너무 잘했다며 격려를 멈추지 않으셨다. 원래도 이쁨 받는 며느리였는데, 아들 손주까지 낳으니 난 시댁에서 (어머님 표현에 따르면) 눈에 넣어도 안 아픈 그런 며느리가 됐다.
아들이던 딸이던 상관없다는 남편도, 정작 셋째가 아들이니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나중에 함께 목욕탕도 가고, 수영장도 가야겠다며 한껏 기대감을 내비쳤다. 주변 언니들을 통해 아들의 든든함을 익히 들어왔던 나는, 모빌을 보며 발을 동동 거리는 아들을 보며 나중에 아들과 함께 데이트하는 상상을 했다.
딸 엄마에게 아들은 신세계였다. 딸에게는 없는 그곳을 보기 위해 애꿎은 기저귀만 열고 닫았다. 애를 둘이나 키워봤지만 고추는 처음이니 얼마나 신기했겠는가. 고추를 보며 나는 아기 새 부리 같다고 하고, 남편은 아기 코끼리의 코 같다고 하며 서로 낄낄 대며 웃어댔다. 조리원 퇴소 교육도 패스했던 육아 고수 셋째 부모건만, 아들 응가의 첫 뒤처리 할 때는 마치 첫 아이를 키울 때와 같이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아들은 딸과 확실히 달랐다. 뼈대가 굵어서 그런지 안으면 묵직한 맛이 났다. 태어난 지 6개월밖에 안 됐는데 목소리도 굵고 음역대도 낮았다. 울음소리가 집 전체에 울리는 것 같았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울긋불긋하게 접힌 살들을 보면 듬직하니 장군감이 따로 없었고, 무표정으로 있다가 나를 보며 씽긋 웃을 때면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72cm에 9.7kg이 뭐가 그렇게 든든한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싶었다.
딸 엄마로만 살 때는 몰랐던 감정들을 아들을 키우며 자주 마주했다. 딸들은 엄마의 분신이고, 아들은 말 잘 듣는 남편의 미니미라고 하던데, 우리 아들은 남편과 꼭 닮아 더 이뻐 보였다. 예전에는 아들 엄마들이 자기 자식을 이름이 아닌 "아들"이라고 부르는 게 눈꼴시다 생각했었는데, 정작 아들을 낳고 나니, 내가 그러고 있었다. 난 오히려 한 술 더 떠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아들 너무 잘생기지 않았어요?"라며 묻는 팔불출 엄마가 됐다. 내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너무 잘생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끔 세 아이가 거실에 모여 복닥복닥 뒹구는 모습을 볼 때면, 왜 딸 둘에 아들 하나를 금메달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쪼꼬미 셋이서 서로를 챙기는 모습이 어찌나 이쁘던지, 딸은 딸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부모를 웃게 했다. 아들을 낳으려고 셋째를 임신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딸바보에 이어 이렇게 아들 바보까지 된 걸 보면, 아들을 낳으려고 임신이 된 것 같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