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민센터 발령 첫날의 기록
내일부터 OO동주민센터로 출근하세요.
2년 6개월 만의 복직, 복직 후 첫 발령지는 동주민센터였다. 그동안 구청에서만 근무해 왔던 터라 동주민센터 발령 소식이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문득 민원인으로 봐왔던 동 주민센터의 분위기가 떠올랐다. 등초본을 떼주고, 사람이 없을 땐 자리에 앉아 잠시 숨 돌릴 수 있는 곳, 창구 밖에서 얼핏 본 동주민센터는 무릉도원, 안빈낙도 같은 근무지였다.
하지만 그 기대가 깨지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출근 첫날 마주한 동주민센터는 안빈낙도와는 거리가 먼, 그야말로 시장통이었다. 설 연휴를 앞둔 탓인지 민원을 보러 온 사람들이 센터 안을 가득 매웠다. 앞으로 함께 일할 주임님들과 인사 나눌 틈도 없이, 창구 안의 공무원들은 보호 유리를 사이에 두고 민원인들을 한 명씩 상대하고 있었다.
번호대기판 숫자는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했다. 그 수가 너무 역동적이라 마치 파도의 밀물과 썰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앉아있는 민원대 공무원들은, 물이 창구 안으로 범람하지 않도록 온몸으로 파도를 막아내는 둑처럼 보였다. 그리고 창구 안에 앉아는 있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발령 첫날의 나는 그 둑 옆에 얹혀있는 작은 돌멩이 같았다.
동주민센터 민원대 공무원이 발령 첫날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시스템 권한'을 받는 일이었다. 민원인으로 방문했을 때는 신분증만 제출하면 등초본을 금방 떼주길래, 조회 시스템도 아주 단순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내 예상과 달랐다.
그날 받아야 할 시스템 권한만 열댓 개에 달했고, 사용하는 컴퓨터 본체만 두 개, 업무 중 켜놓는 시스템은 많을 땐 아홉 개였다. 게다가 신청서 종류는 왜 또 그렇게 많은지, 각종 서식이 종류별로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업무 시작 전임에도 알 수 있었다. 동주민센터는 단순히 등초본만 떼주는 곳이 아니었다.
다른 주임님들이 민원인을 상대하고 있을 때, 난 자리에 앉아 시스템 권한 요청 공문을 작성하고 있었다. 그때 어떤 한 민원인이 내 자리의 유리를 툭툭 두드렸다. "여긴 민원 안 봐요?"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어 번호대기판을 올려다봤다. 대기 민원인 수만 스무 명에 육박했다. "아... 네... 저는, 발령 첫날이라 권한이 없어서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던 무늬만 민원대 공무원이었던 난, 민원이 없을 땐 자리에 앉아있다가 민원이 몰릴 땐 선배들 뒤에 숨어 있었다. 그렇게 동주민센터에서의 첫날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