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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d Aug 01. 2016

마와리 견문록 #2

끝없는 암기의 괴로움 _1

나는, 구시대적인 조직일수록 신입 회원에게 부과하는 '암기'의 무게가 무거워진다고 생각한다. 처음 만난 상대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 할 필요는 동등할 텐데, 유독 위계질서가 강하고 비민주적인 조직일수록 그 무게를 신입 회원에게 더 지운다는 말이다. 이는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기존 회원이 익숙함을 무기로 신입 회원 위에 군림하는 것, 그것이 선을 넘을 때 폭력은 형체를 드러낸다. 군대에서의 후임병 폭행, 대학에서의 신입생 폭행 등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폭력이다. 위계질서에서 둘째라면 서러울 경찰팀에 들어서면서 나는 '암기의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신입사원 교육을 모두 마친 주의 금요일, 우리는 다가오는 일요일에 '마와리' 준비를 갖추고 출근하라는 명령을 전해 들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하는 마음에 금요일 퇴근길부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일요일에 출근하라는 말은 앞으로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꼼짝없이 경찰서에서 먹고 자야 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주5일 근무가 상식이 된 지금, 주 120시간이 넘는 노동에 시달릴 생각에 눈 앞이 캄캄했다. 토요일엔 입대를 앞둔 심정으로 커다란 여행용 가방에 짐을 하나 둘 씩 챙겼다.


일요일. 여행용 가방을 끌고 회사에 도착했다. 아무도 출근하지 않아 조명도 채 켜지지 않은 사무실은 어두웠고 적막으로 가득했다. 나와 동기들은 회의실의 한 구석에 여행용 가방을 모아놓고 조용히 경찰팀 기자들을 기다렸다. 이름으로만 만났던 경찰팀 기자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다. 상상대로라면 험악하고 신경질적인 얼굴을 하고 나타나리라.


경찰팀 기자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그들은 무표정이었고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우리를 흘깃 쳐다보지도 않았다. 입도 굳게 다문 상태였다. 마주 보고 일렬로 놓인 책상을 따라 한 쪽에는 우리가, 한쪽에는 경찰팀 기자들이 앉았다. 그들은 노트북을 꺼내놓고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우리는 얼음이 되어 그들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내 경찰팀의 수장, 캡*이 나타났고, 폭풍은 시작됐다.


경찰팀 기자와의 만남이 시작된 지 5분 만에, 고성이 쏟아졌다. 지극히 정상적 데시벨(dB)이었던 우리의 목소리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미소는 '실실 쪼갬'으로 질타받았다. 그 와중에 우리에겐 깨알 같은 글씨의 '경찰팀 매뉴얼'과 경찰팀 기자(이하 '선배**'로 칭함)의 신상정보가 던져졌다. 암기 대회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선배들의 이름과 기수, 담당라인을 외워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동시에 시시콜콜한 수습기자의 행동강령을 외워야 했다. 매뉴얼은 선배의 전화는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내가 배치된 라인에는 어떤 경찰서가 있고 어떤 특징이 있는지, 어떤 사건이 많은지, 따라서 어떻게 마와리를 돌아야 하는지 등 수습기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규정했다. 짧은 첫 만남을 마치며 캡은 말했다.


이동 중에 틈틈이 외워라. 시험 본다. 불시에 물어봤는데 모르면 가만 안둔다.


외울 것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0포인트 글씨로 빽빽하게 채워진 A4용지 십수장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암기 속도보다 암기할 것이 쌓이는 속도가 더 빨랐다. 긴장의 끈을 조금이라도 놓칠새라 선배들은 기습 질문을 멈추지 않았고, 말문이 막혔을 때 돌아오는 것은 욕 뿐이었다.


-2편에 계속



*캡 : 언론사에서 사회부 내 경찰 담당 취재 조직을 지휘하는 직위. 캡틴(Captain)의 첫 글자를 따왔다고 한다. 부팀장은 '바이스'라고 하는데 '부(副)·차(次)'의 의미를 가지는 영어의 접두사 'vice-'를 뜻한다


**선배 : 언론사에서는 호칭에 '님'을 붙이지 않는 풍습이 있다. 부장님도 부장이고, 국장님도 국장이다. 심지어 사장님도 사장이다. 따라서 가장 보편적인 호칭인 선배님도 자연히 선배라고 해야 한다. 기자는 누구 앞에서든 쫄지 않아야 한다는 이유에서 이런 풍습이 생겼다는 설과, 직위에 붙는 '-장(-長)'이 이미 높임의 의미를 가져 '부장님' 등으로 부를 경우 이중 높임이 되기 때문에 '님'을 뺀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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