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조건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란 뭘까, 사람들은 다 똑같이 나이를 먹는데, 왜 개줌마 개저씨, 할저씨, 할줌마라는 비하 발언이 생기고, ‘나잇값 못한다’라는 말이 왜 떠오르는 걸까.
먼저 생각하기 전에 사전적 정의부터 살펴보자.
1. (명사)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명사)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3. (명사) 결혼을 한 사람.
이라고 네이버 국어사전에는 명시되어 있다.
뭐, ‘결혼을 한 나이 많은 사람’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항상 그렇지만 첫 번째가 가장 중요하고, 나머지는 부차적인 문제이므로 첫 번째 정의를 받아들여 보겠다.
다 자란 사람. 우리 국가는 법적으로 만 19세 이상을 성인이라고 부른다. 성인이라 함은, 자라서 어른이 된 사람을 일컫는다. 만 19세가 몸과 마음이 다 자라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어른이 아닌 성인아이가 많이 보인다. 경륜과 지혜가 풍부해 타인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 아닌, ‘나는 너보다 나이가 많으니 어른이고 공경을 받아 마땅하다.’라는 사고를 가진 사람들 말이다.
성인아이는 몸만 자랐지, 정신적으로 많이 미성숙한 성인을 일컫는 단어라고 하자. 느껴지는가, 내가 의식적으로 ‘성인’과 ‘어른’을 구분 짓는 것을.
나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나와 같이 ‘어른’이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나의 생각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기준이 무엇일까.
우선 어른이 되기 위해선 자신의 언행에 책임질 줄 아는 것이다. 즉, 자신이 결정하고 실행하고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결정-실행-책임’ 이 세 가지가 하나로 묶인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보자면, 우리가 아이였을 때, 부모는 우리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딸기우유 먹을래? 초코우유 먹을래?’ 우리는 그 좁은 선택폭 안에서 나름의 신중한 선택을 하고, 그 선택받은 우유를 마시며 실행을 했다. 그러고 나서 그 우유를 먹고 일어나는 일들은 대부분 처음에는 부모가 책임졌다. 예를 들면 먹고 남은 쓰레기나 컵의 설거지 같은 부분 말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성인이기에, 더 넓은 폭을 가질 수 있다. 우유 종류뿐만이 아니라 커피도 마실 수 있고, 가끔은 시원한 맥주도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넓은 폭 사이에서 우리는 선택을 하며, 실행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세 가지가 하나로 묶이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으며, 책임을 온전히 져야 한다는 것이다.
행동뿐만 아니라 말에도 동일한 성질을 가진다. 어쩌면 더 강할지도 모른다. 행동은 실행이 동반되기에 조금 더 느릴지 모르지만, 언행은 우리의 입 밖으로 나온 순간,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큰 책임이 필요하며, 더 신중한 선택을 불가피하게 필요로 한다.
선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책임이 더 중요하기에, 책임을 더 생각해 보도록 하자.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할까. 나의 언행과 행동은 당연할뿐더러, 자신의 일과 가정, 심지어 사회까지 본인의 인생의 전반적인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
막말로, 나만 생각하는 사람이 어찌 주변의 존경을 받을 수 있겠는가. 거기에 책임까지 지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아이라 부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어른의 두 번째 조건은, 자신의 개인적인 것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포함한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는 것이다.
이걸 쓰면서도 드는 생각이지만, 가장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가정을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 그것이 아니라면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나의 부모, 나의 형제, 친구 정도랄까. 그래도 그들을 보았을 때 ‘책임’이라는 감정이 그렇게 크게 들지 않는다. 물론 ‘내 사람’이라는 자각은 있지만, 나의 부모가 나를 볼 때 느끼는 책임과는 다른 감정이겠지.
그래서 어른의 세 번째 정의가 ‘결혼을 한 사람’인 것일까. 나는 대게 결혼이라는 제도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가정을 이루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긍정적인 사람이다.
죽기 전에는 모성애라는 감정을 느껴보고 싶다. 그리고 나를 여자로서 바라봐 주는 한 사람과 사랑을 주고받는다는 감정을.
각설하고, 인간은, 세상 모든 만물은 한 번에 성숙해질 수 없다. 만약 그게 가능한 사람이 있다면 ‘성인군자’의 성인이겠지. 아무리 아이가 조숙하다 한들, 어른이지는 못할 것이다. 그저 또래보다 조금 성숙한, 그저 아이일 뿐. 분명 아이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본래 인간은 이기적이기에, 타인을 생각하려면, 보다 더 성숙해야 한다.
마지막 어른의 조건은 경륜과 지혜가 풍부해 존경을 받는 사람이다. 경륜이란 단어가 참 생소한데, 경륜은 일정한 포부를 가지고 일을 조직적으로 계획하는 것을 일컫는다. 또는 그 계획이나 포부. 다른 의미로는 세상을 다스리거나 그 능력을 말한다. 세상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의미하듯,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자기를 포함한 모든 것을 세상이라 보자.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 그리고 그 능력.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지혜를 쌓아나가며 이가 쌓여 타인이 존경심을 가질 만한 사람이다.
본인이 살아가며 직간접적으로 겪은 것들에 대해, 스스로의 세상에 대한 원칙이 세워지며 그를 통해 이를 다스리는 능력이 생겨, 본인의 세상을 잘 운용하는 것. 그리고 그 세상이 점점 넓어져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어른 아닐까.
내가 추구하는 어른이란 이런 것이다.
커서 무언가 되겠다는 것보다는, 번듯하게 어른으로 성장하여 나를 성장시키는 것. 어쩌면 나의 꿈이겠다.
아이는 아이일 때 가장 아름다우며, 어른은 어른일 때 가장 아름답다. 아이가 어른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매우 혼란스러우며 고통스럽다.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할 것이다. 허나,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바른 길로 갈 수만 있다면 누구나 어른은 된다. 어른은 그 과정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며, 실수를 하더라도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